라스베이거스 참사 후, 변하는 것은 없다
2017년 10월 13일  |  By:   |  세계  |  No Comment

58명이 숨지고 489명이 다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 대표들의 관심은 온통 총기규제 여론을 잠재우는 데 쏠려 있습니다. 만약 스티븐 패독이 만달레이 베이 호텔 32층에서 무장 드론과 같은 신기술로 사람들을 죽였거나, 혹은 총격범이 중동 출신 이민자였다면 미국 의회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키고 국경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겠죠. 하지만 스티븐 패독은 자신이 합법적으로 소유한 49정의 총기 중 일부를 사용한 은퇴한 백인에 불과했기에 라스베이거스 참사는 자유의 대가(the price of freedom)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미국에서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은 그 어떤 부유한 나라보다 자주 발생합니다. 미국 사회는 이미 해묵은 총기규제 논쟁과 대형 총기 난사 사건 때마다 이어지는 의례적인 절차에 지쳐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00~2014년 사이에 14개국에서 발생한 총 166건의 대형 총기 난사 사건 중 133건이 미국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 이유는 일부분 전미 총기협회(NRA)와 같은 단체 때문입니다. 한때 무장 보이스카우트 정도로 인식됐던 전미 총기협회는 이제 미국 내에서 모든 개인이 자기방어를 위해 무장해야 한다는 견해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전미 총기협회는 워싱턴 의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는 예를 들어 반자동 소총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범프 스탁(완전자동 소총처럼 연사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장치 -옮긴이)을 규제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6세 어린이 20명과 어른 7명이 사망한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총기규제 개혁을 이루지 못한 미국입니다. 이번이라고 다를까요? 그리고 엄격한 총기규제법이 당장 내일부터 도입된다고 해도 미국인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총기만 3억 정에 이릅니다.

하지만 절망과 체념은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입니다. 이번 라스베이거스 참사는 단순히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을 넘어서 “총을 든 악인을 막을 수 있는 건 총을 든 선인뿐”이라는 전미총기협회의 케케묵은 주장이 그 무엇보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총기소지 허용은 미국 스스로 내린 국가적 결정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많은 희생자가 생겨서는 안 됩니다. 살인과 자살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무기 소지 자체를 아주 조금만 어렵게 바꿔도 대부분 우발성 범죄인 살인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총기소지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손쉽게 대량살상이 가능한 무기 및 개조장치를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분명 가능한 일입니다. 대부분 미국인은 이러한 법에 찬성하며, 미국 내에서 총기소지권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총기규제를 외치는 목소리보다 거세긴 하지만, 총기 구매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신원조회를 거치는 방안(universal background checks)에 대부분 동의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조치들이 취해지더라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총기로 인한 살인 사건과 자살, 치명적 사고가 비일비재하겠지만, 다른 나라와의 비정상적인 격차가 조금은 줄어들 것입니다.

라스베이거스 참사, 그 이후

미국 의회의 행동을 기다리다 지친 몇몇 도시는 자체적인 규제를 도입했습니다. 뉴욕주 북부에서는 사냥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총기 소지가 허용되지만, 뉴욕시 내에서는 같은 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개인이 뉴욕시 내에서 총기를 소지하려면 반드시 뉴욕 경찰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뉴욕주는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총기규제를 강화하며 현재 공격용 무기 판매를 금지한 상태입니다. 뉴욕 외 다른 4개의 주도 이처럼 총기규제를 강화한 반면, 16개 주에서는 총기 구매 및 소지를 오히려 더 쉽게 만드는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총기규제가 가장 허술하다고 알려진 네바다주에 있는 라스베이거스 또한 자체 규제법을 재검토해야 합니다. 평소 지역적 문제는 지역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목청 높여 주장하는 보수 진영도 이에 반대할 리 없겠죠. 물론 총기규제를 강화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카고처럼 총기 소지를 허용하는 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도시의 경우에는 여전히 총기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매년 총기 폭력으로 3만 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이를 어림잡아 계산하면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시점부터 이 기사가 발행되는 시점까지 미국에서 약 320명이 추가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셈입니다. 이런 나라에서는 아주 작은 변화로도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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