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기업의 건물 청소부를 통해 보는 불평등 (2/3)
2017년 9월 14일  |  By:   |  경제, 세계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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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핵심 인력을 제외한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고용하거나 하청업체에 외주를 주는 식으로 직원 규모를 줄이고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도 사실입니다. 비용 절감이 지상 과제가 된 뒤 일어난 일이죠. 청소부나 경비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운영 체제의 버그를 잡아내는 일, 소셜미디어에 이용 원칙에 어긋나는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는지 확인하는 일, 수천 장의 입사 원서를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간접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실리콘밸리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물론 애플 같은 회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데 비해 특히 직원 규모가 작은 아주 독특한 사례이긴 합니다. 페덱스 유니폼을 입고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 기사는 대개 페덱스와 계약을 체결하고 일하는 개인사업자입니다. 페덱스가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죠. 씨티은행이나 JP모건 등 대형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상담해주고 각종 벌금을 대납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계약직입니다. 어떤 회사의 고객 상담실에 전화를 걸면 열에 아홉은 회사 본사가 아닌 다른 주, 혹은 다른 나라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계약직 상담원들이 전화를 받습니다.

애플은 애플 제품이 잘 팔릴수록 애플 외에도 수많은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제품에 쓰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데 관한 경제를 총칭하는 “앱 경제” 종사자 숫자만 1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애플은 추산하고 있습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44개 주에 애플 스토어가 있는데, 애플 스토어 직원들은 분명 다른 소매점에서 일하는 직원들보다 월급을 더 잘 받고 각종 혜택도 많은 편입니다. 애플의 눈부신 성장세에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예를 들면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도 평균 연봉이 7만7천 달러나 되는 일자리 6천 개가 창출됐습니다. 애플은 직접 고용하는 직원 외에도 미국에서만 애플 제품을 공급하는 이들에게 연간 500억 달러를 쓴다고 밝혔습니다.

애플 측은 애플이 미국 50개 주 전체에서 총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말했습니다.

“건설, 고객 관리, 소매, 엔지니어링, 앱 개발, 제조, 판매 및 물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포함한 집계입니다. 전일제 정규직이든 시간제 직원이든 모든 애플 직원들은 직원 혜택과 주식 보상을 받습니다. 유능한 계약직 직원들의 노력이 없다면 애플 제품과 서비스를 매일 최고 수준으로 제공하기 어려울 겁니다. 미국 전역에서 애플 제품과 서비스 공급에 힘써주는 9천여 공급 업체와도 애플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혁신을 거듭해 성공을 거둔 기업들이 대기업이 된 뒤 무사안일에 빠지고 자신들의 자리보전에 급급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사진 분야에서 처음에는 혁신을 선보이며 두각을 나타낸 코닥에도 그러한 옛날 기업의 폐단이 어느 저도 남아있었습니다. 파산 뒤 몇 년간 잇단 구조조정과 인원 감축을 거듭한 끝에 현재 코닥의 직원 규모는 미국 2,700명, 전 세계 6,100명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세계 곳곳의 많은 산업체에서 직업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계약직과 외주 업체에 위탁이 늘어난 건 분명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거나 적어도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요인이었습니다. 2010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외주를 맡긴 경우 청소부의 임금은 4~7%, 경비원의 임금은 8~24% 깎였습니다.

임금이 늘지 않다 보니 자연히 전반적인 불평등은 증가했습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경영대학원의 제이 아담 콥과 텍사스 대학교의 켄후 린은 1989~2014년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 불평등이 심화된 원인의 약 20%는 저숙련 노동자 혹은 중간 단계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주던 관행이 사라진 데서 비롯했다고 분석했습니다.

1980년대 코닥과 오늘날 애플의 차이는 블루칼라 노동자뿐 아니라 화이트칼라 사무직 노동자들이 부닥친 상황을 설명하는 데도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지게차 대(對) 3D 지도

필 한든은 1970년 해군에서 전역한 뒤 코닥에 입사 지원했습니다. 바로 채용돼 물류창고에서 지게차 운전을 시작했죠. 그가 처음 받은 급여는 시급 3달러,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시급 20달러 정도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소프트웨어를 테스트하는 계약직 직원이 처음 받는 급여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물론 말끔한 애플 사무실에는 지게차 같은 중장비가 없다는 점도 다르긴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면 직업의 영속성일 겁니다. 한든 씨는 1986년 플로리다로 이주할 때까지 16년 동안 지게차를 운전했습니다. 10년 뒤 코닥으로 돌아왔을 때도 바로 다시 채용돼 같은 일을 했으며 회사 근속 연수에 비례해 받는 혜택도 다 받을 수 있었죠.

실리콘밸리 테크 업계에서는 이른바 임시 문화가 흔하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한 회사에 오래 머무는 경우는 흔치 않고, 몇 달마다 새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일하다가 또 옮기는 경우가 잦습니다. 한 회사에서 한 번 체결하는 계약 기간이 18개월을 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실리콘밸리 여러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29살 크리스토퍼 콜은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콜은 애플 지도의 품질 보증 업무를 맡은 적도 있습니다.

“매년, 길어야 1년 반마다 새 일거리를 알아보는 일이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실리콘밸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이들은 업무에 따라 보수는 많이 받을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정규직에 밀려나는 처지임을 깨닫게 될 때가 왕왕 있습니다. 대개 계약직에게는 스톡옵션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직 회사의 높은 자리에 오르기도 전에 꽤 많은 부를 쌓은 이들 가운데는 스톡옵션으로 받았던 주식 덕을 본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계약직에게는 이런 가능성이 애초에 차단된 셈입니다. 계약직은 또한 유급 휴가나 병가, 육아 휴직을 쓸 때도 차별받습니다. 직장 의료보험에도 가입이 된다지만, 대기업들이 정규직 사원에게 들어주는 최고 수준의 의료보험보다는 단계가 낮은 경우가 보통입니다.

별것 아닌 차이와 차별이 유난히 도드라질 때도 많습니다. 애플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한 기술자는 새로운 버전의 애플 운영 체제를 발매하기 전에 몇 달간 시험하고 개선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성공적으로 운영 체제를 발매한 뒤 애플의 정규직 직원들은 모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근사한 파티에 초대받았습니다.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계약직 직원들은 그저 동네의 작은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조촐한 자축연을 갖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몇 달 동안 일할 때는 정규직과 계약직 나눌 것 없이 모두 함께 열심히 일했지만, 마지막에 받는 대우는 이토록 달랐습니다.

화이트칼라 계약직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미국 전체로 보면 딱 중위 소득 정도에 해당합니다. 뛰어난 기술을 갖춘 이들이라면 연봉 10만 달러 이상 받는 일도 있죠. (천정부지로 치솟은 베이 에이리어의 집값을 생각하면 그 돈도 부족합니다.) 컨설팅 업체의 집계를 보면 애플이 현재 본사가 위치한 산타클라라 카운티에서 간접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는 약 18,000명, 이들의 평균 연봉은 5만6천 달러입니다.

물론 급여 명세서에 드러나지 않는 혜택이나 장점도 있습니다. 계약직으로라도 애플이나 구글에서 일하면 맛있기로 유명한, 외부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구내식당도 이용할 수 있죠. 친구들에게는 어쨌든 세계 최고의 기업에서 일한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고용 형태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대기업일수록 근무 여건도 좋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초과 근무가 잘 없는 편인 것도 장점이죠. 계약직으로 일하다가도 잘 해서 눈에 띄면 승진할 수도 있습니다.

테크 업계의 계약직 일자리를 주선해주는 업체에서 일하는 프라딥 차우한은 계약직의 삶이 끔찍한 것은 물론 아니라고 말합니다.

“일자리가 있고 일한 만큼 보상을 받고 일하는 거예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상적인 건 아니죠. 특히 계약직인 이상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회사로서는 노동 계약을 언제까지 맺어야 한다는 의무가 없죠.”

바로 이 점이 예전 대기업 중견 사원들이 누린 혜택과 가장 큰 차이입니다. 즉, 예전에는 일자리의 영속성이라는 것이 보장됐고, 직원들은 회사와 명운을 같이하기에 자연히 높은 충성심을 갖고 회사를 위해 일했죠.

한든 씨도 자신이 코닥에서 일하며 힘들었을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회사 자체는 정말 훌륭한 직장이었죠. 오랫동안 제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코닥 덕분이에요.”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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