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 남자(2/2)
2017년 8월 22일  |  By:   |  과학  |  No Comment

73세의 서스킨드는 뉴욕 브롱크스의 유대인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집은 정확히 노동 계층에 속했습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마친 배관공이었습니다. 친구들 역시 배관공이거나 엔진 수리공이, 아니면 굴뚝 수리공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하고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이들이 할 일은 둘 밖에 없었죠. 노동자가 되거나 아니면 갱단이 되는거죠.”

서스킨드는 자신을 “모든 면에서 가난이 특징인 학생”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때는 내가 노동자 계급이라는 사실 때문에 모든 일에 화가 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반항했고 선생님에게 반항했습니다. 비뚤어진 아이였습니다. 6학년때(아마 11살이나 12살 때 쯤) 나는 5학년으로 유급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종종 벌을 받았고 부모님은 항상 학교로 와야 했습니다.”

형제가 없던 서스킨드는 침실이 하나인 좁은 아파트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아야 했습니다. “그 집은 세 사람이 지내기에는 너무 좁았죠. 부모님은 내가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리에서 보냈습니다. 우리 골목에만 아이들이 500명 정도 있었고, 아이리쉬, 이탈리안, 유대인 등으로 파가 나뉘어 있었죠. 행복한 어린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방인 같았지요.”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친구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를 식탁위 대학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야기했고 한 분은 내게 ‘충돌하는 세계’(이마뉴엘 벨리코프스키의, 목성이 금성을 튕겨내고 지구의 공전 축과 자전 축을 바꾸는 등의 성경에 나오는 재난을 묘사한 책)를 빌려줬습니다. 나는 이 책에 흠뻑 빠졌지요. 여기에는 전자기파 같은 다양한 과학 용어들이 있었고 어쨌거나 내 상상력을 부쩍 자극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발견했고, 미적분을 스스로 배웠습니다. “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수학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수학 책을 숨기곤 했습니다. 나는 물리학은 몰랐고, 사실 수학과 물리학이 다른 과목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가 열 네살 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병에 걸렸습니다. “나는 점점 배관 작업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계공학을 배우러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일하던 브롱크스 지역의 건물들에 지을 화로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댔지요. 나는 물리학 과목 두 개를 들었고, 물리학이 내가 진짜 원하는 공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때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아이까지 있었지요.”

아버지는 처음에는 그의 결심을 들었을 때 놀랐지만 곧 그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 물리학과 수학을 매우 흥미로워하며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여러가지 과학적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단지 수학을 알지 못했던 것이죠.”

대학원을 졸업한 후, 서스킨드는 뉴욕 예시바 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텔 아비브 대학으로 옮겨갔습니다. 1978년 스탠프드로 온 그는 2000년, 펠릭스 블로흐 정교수가 됩니다. 1998년에는 그의 “강입자 끈 이론, 격자 게이지 이론, 양자 색역학, 동적 대칭 깨짐”에 대한 공로로 JJ 사쿠라이 상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보통 사람에게 복잡한 이론을 설명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뒤 그는 책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그는 첫 책으로 끈 이론에 관한 “우주의 풍경(Cosmic Landscape)”를 펴냈습니다. 그는 매우 쉽게 글을 쓰는 듯이 보입니다. “사실 나는 상당한 공을 들입니다. 어떨때는 물리학 내용보다 글쓰기 자체에 더 신경을 씁니다.”

그의 일반인을 위한 야간 물리학 강의는 큰 인기를 끌었고 누군가가 그의 강의를 녹화해 인터넷에 올리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이제 전 세계의 사람들이 내 수업을 듣고 있죠.” 그도 약간 감동한 듯 말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서스킨드는 자신이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19세기 사람이고, 어쩌다 20세기를 살았습니다. 이제 무려 200년이나 맞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의 원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합니다.

그는 미래의 인류에게 한 가지 궁금한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500년 뒤의 사람들이 양자 역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지를 너무나 알고 싶습니다. 아직은 두 개의 이론인, 중력에 대한 상대성 이론과 다른 것들에 대한 양자 역학이 훨씬 더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고 거의 하나의 이론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래가 궁금한 이유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 문제를 꼽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물리를 하다 질려서 지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 질문을 자신의 스타일로 답합니다. “자신이 해온 일을 돌아보게 되면 때로 조금 지치고, 몸이 안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기타를 치거나 영화를 보는 식으로 잠깐 다른 일을 하면 됩니다. 며칠만 그러고 나면 다시 의욕이 돌아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는 어떤 종류의 신도 믿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내게 ‘세상이 어떤 지적 존재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되려 ‘그 지적 존재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을까요? 양자 역학을 만족할까요?’라고 물을겁니다. 물론 이 질문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겠지요.”

그는 우주에 대한 더 큰 질문을 생각할 때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면 나는 내가 제일 잘 하는 일로 돌아옵니다. 바로 물리 문제를 푸는 일이죠. 나는 여기에서 끝없는 힘을 얻습니다. 비록 나이를 먹어가고 언젠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겠지만 믿음을 통한 힘을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아내와 음악, 물리학이면 충분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1978년 세상을 떠났고, 이제 서스킨드는 증손자를 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존재를 느낍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물리학을 가르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버지가 물리학을 배우려 노력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죽기 전까지 계속 물리를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아버지 주변에서 물리를 직접 가르쳐 드리지 못했어요. 그 이후로, 나는 사람들에게 물리를 가르칠때마다, 아버지에게 물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텔레그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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