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새롭게 부상한 민주당 성향 풀뿌리 시민운동
2017년 6월 7일  |  By:   |  세계, 정치  |  2 Comments

수요일 정오, 피츠버그 북부 교회 공화당 소속 의원 키스 로스퍼스의 사무실 밖에는 지역구 주민 40여 명이 모여 있습니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지만 트럼프 정부와 로스퍼스 의원을 비판하는 내용의 손팻말과 성조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칩니다. “러시아 게이트를 수사하라”, “진짜 뉴스, 가짜 대통령”과 같은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딸의 할로윈 의상을 입고 엉클 샘으로 분장한 55세의 애널리스트 캐롤린 깁스 씨는 “시위가 즐거우면서도 애국심을 잘 표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로스퍼스는 어딨나 수요집회”는 여성행진 때 버스에서 만난 여성들의 의기투합으로 지난 2월 시작되었습니다. 깁스 씨는 평생 이런 활동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정치인을 후원한 것도 지난 7월의 일입니다. 트럼프가 무슬림 참전 용사의 부모를 모욕하는 것을 보고 분노해 클린턴에게 100달러를 후원했죠. 이후 그녀는 지역구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여하면서 “인내심의 포트럭 파티”도 주최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중도와 진보주의자들”이 모여 시사 이슈를 논하고 공화당 의원들에게 항의 편지를 쓰는 모임입니다.

이는 현재 미국 내 435개의 지역구 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미국 사상 최대 규모의 정치 집회였던 여성행진의 에너지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로스퍼스 의원이 여유있는 승리를 거뒀던 피츠버그 북부 교외에서조차 중도좌파, 진보 단체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집니다. 800만 회원을 자랑하는 온라인 단체 무브온(MoveOn)의 정기 후원자는 트럼프 취임 후 3배 늘었습니다.

신생 시민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가운데, 전직 민주당 당직자 두 사람이 시작한 단체 “인디비저블(Indivisible)”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입니다. 현재 미국 전역에 6000개의 소모임이 있고, 로스퍼스 의원의 지역구에도 15개의 모임이 있습니다. 이들은 공화당 의원 사무실로 편지를 쓰고, 전화선이 마비될 때까지 항의 전화를 넣고, 공개된 행사를 찾아가 직접 만나고, 집회를 조직합니다. ”로스퍼스는 어딨나 수요집회“의 자매 집회인 ”투미와 함께 하는 화요일“은 펜실베니아 주 공화당 상원의원인 팻 투미의 사무실 앞에서 매주 화요일 열리는 집회입니다.

“미국은 대의 민주주의 국가이고 의원이라면 누구나 목표는 재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구 유권자들의 힘이 대단한 것이죠,” “인디비저블” 창립자인 에즈라 레빈의 말입니다. “인디비저블”은 기존 공화당 강세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의외의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의원이 트럼프 내각에 발탁되어 공석이 된 조지아의 한 지역구에서도 민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년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빼앗아올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실이 된다면 공화당에게는 큰 충격일 것이고,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현재의 “신 진보 시민운동”은 공화당 뿐 아니라 양 당에, 나아가 정당의 본질 자체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큽니다.

오바마 당선과 오바마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났던 보수주의 풀뿌리 운동 티파티와 비교해보면 그런 가능성이 좀 더 분명해집니다. 티파티가 개척한 다양한 전술들을 “인디비저블”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티파티에서 인종주의와 부정적인 가치관들을 제거해보면, 운동 자체로는 상당히 스마트한 전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빈의 평가입니다. 하지만 티파티 운동은 절정에 달했을 때도 650개 정도의 소모임이 전부였고, 구성원은 대부분 중산층 백인 중년 남성들이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죠. 또 풀뿌리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리버테리언 계열 단체나 부호들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트럼프의 부상에 필요한 밑그림이 되었을 뿐 아니라, 공화당 지도부의 골칫거리로 자리잡은 40여 명 티파티 정치인들의 하원 당선으로 이어졌습니다.

“인디비저블”의 잠재력은 더 커보입니다. 민주당이 그 어느 때보다 약화되어 있는 시점에서, 이 단체는 티파티가 공화당에 행사했던 영향력을 초월해, 아예 민주당을 능가하는 존재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야망을 숨기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 선거 담당 조직을 출범시키고, 후보 발굴에 직접 나섰죠. 민주당 경선에서 후보지지 선언도 하고,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거나, 트럼프 정부에 제대로 대항하지 않는 후보에게는 압력도 넣을 계획입니다.

트럼프 덕분에 빼앗긴 땅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를 얻은 민주당에게 이러한 상황은 양날의 검과도 같습니다. “인디비저블” 같은 단체의 압박 하에서 좌파 진정성 증명 경쟁에만 몰두하다보면 중도 유권자들을 잃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실제로 공화당 텃밭인 네브레스카 주의 한 시장 선거에서 선전하던 강력한 민주당 후보가 낙태권 반대를 주장하다가 민주당 내부의 공격으로 낙마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희망을 가질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행진 이후 탄력을 받은 시민운동의 공동 분모는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입니다. 진정성 넘치는 힙스터 진보주의자들만 참여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죠. “로스퍼스는 어딨나 수요집회”를 조직한 린다 비숍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화당원이었던 전직 금융계 종사자였으니까요. 또 다른 시민 단체를 이끌면서 집회를 공동 주최하고 있는 스테이시 버날리스도 스스로를 재정적 보수주의자로 소개하는 은퇴한 변호사입니다.

새롭게 부상한 세력에게 어필하려는 민주당 정치인들은 우선 이데올로기보다 톤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민주당에 원하는 것은 의회에서 조용히 던지는 한 표가 아니라,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큰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니까요. (이코노미스트)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