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바마의 작별 선물, ‘희망’을 ‘힘’으로
2017년 2월 8일  |  By:   |  세계, 정치, 칼럼  |  No Comment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대통령 취임식은 8년 전 버락 오바마의 취임식이었습니다. 당시 아내와 저는 빈털터리 신세였지만, 대선 6주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망 보험금을 쪼개 여비를 마련했죠.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날씨밖에 모르는 세 살, 다섯 살 난 아이들에게 옷을 껴 입히고, 수프와 코코아를 보온병에 담고, 손난로까지 챙겨, 북극 탐험에라도 나서는 기세로 길을 떠났습니다. 취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영하의 추위 속에서 장장 8시간을 야외에서 떨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무척이나 힘들었던 하루였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고생했을 것이고, 아내와 티격태격 말다툼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날은 다 같이 많이 웃고 옆 사람과 장갑 낀 손을 맞잡았던 날로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아내와 번갈아 가면서 아이들을 목말 태우고, 아들은 미셸과 버락의 얼굴이 새겨진 깃발을 흔들었죠. 혼잡스러운 지하철 안에서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도 다 같이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합창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우리가 느낀 것은 희망이었습니다. 물론 그 희망은 우리가 지금껏 국민의 다수를 구조적으로 괴롭히고 존엄을 되찾으려 한 이들을 벌한 국가에서 살아오면서 매일같이 느꼈던 공포와 괴로움, 좌절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희망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모든 감각에 거칠게 가해지는 끊임없는 공격을 견뎌내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자신의 정신적, 지적 소멸을 막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러스트벨트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보냈습니다. 주민은 대부분 백인이었죠. 중학생이 되자, 낮에는 나를 “깜둥이”라 놀리는 아이들과 싸우고 밤에는 남몰래 백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피부색이 검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쁜 것,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게 하는 무언가,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도 곧 깨달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열두 살 때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차를 몰고 지나가던 백인 남자가 던진 밀크셰이크를 뒤집어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검은 피부가 멀쩡한 성인으로 하여금 낯모르는 어린아이를 폭행하게 할 만큼 나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내가 병을 앓고 있어서 사람들이 나를 해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인종주의자들을 두려워하면서 자랐습니다. 안락한 내 집 안에 있을 때도 문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면 나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백인 친구들이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제안할 때면 거짓 핑계를 대며 빠지곤 했습니다. 인종 문제가 대화 주제로 등장하면, 입을 다문 채 화제가 바뀌기를 기다렸죠. 이것이 바로 인종주의의 작동 방식입니다. 공포와 통제를 통해 당하는 사람을 두려움에 떠는 순종적인 존재로 만들고, 자신의 존엄성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식을 보러 갔던 우리에게는 그런 나날도 이제 끝날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미국인들이 정부가 나라 밖의 위협으로부터 어느 정도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이제는 나라 안의 위협에서도 안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바마 정부 초기, 우리는 그가 인종 문제라는 지뢰밭을 조심스럽게 밟아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대통령 자신의 피를 쏟아내야 했죠. 하버드대학교의 한 흑인 교수가 자신의 집에 들어가려다 체포되었을 때 오바마가 지역 경찰을 질타하자, 대통령 지지율, 특히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의 지지율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대통령이 “화이트 아메리카”의 민감한 부분을 잘못 건드린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8년간 우리는 대통령이 서로 점점 더 큰 이질감을 느끼게 된 국민들을 앞에 두고 모두의 마음을 똑같이 울린다는 불가능한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트레이본 마틴과 에릭 가너, 존 크로포드, 타미르 라이스, 레키아 보이드, 산드라 블랜드의 죽음이 저항 운동으로 번지자,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주장을 테러 위협이라 낙인찍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 어두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인종 전쟁이라는 말이 양지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바마 재임 기간, 많은 미국인의 마음속에서 분노와 공포는 커졌고, 방어적인 자세는 한층 강화됐습니다. 문밖에는 야만인 천지라는 메시지에 힘입어 탄생한 트럼프 현상이 이를 증명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지난 8년은 전혀 다른 8년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저를 공포에 떨게 했던 백인들의 인종주의가 없었더라면, 제가 오바마 취임식에서 느꼈던 기쁨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바마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무리였습니다. 미국이 앓고 있는 병은 한 사람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8년은 놀라운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인종주의에 대한 제 인식이 달라진 것입니다. 오바마는 흠잡을 데 없는 대통령이자 정치인이었습니다. 소양이 깊고,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었으며, 지적이고, 솔직했죠. 대통령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어울리는 진지함으로 주어진 업무에 임했습니다. 그가 내린 정책 결정 가운데는 동의할 수 없는 것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그가 일관성을 가지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최대선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수많은 비난에 시달렸고, 반대파로부터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의 출생지와 종교가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대통령과 의견을 같이하느니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고 말겠다는 태도로 달려들었습니다. 언론도 그가 대통령의 자질을 갖췄는지를 집요하게 따져 물었습니다. 이런 반작용이 너무나 거세어서 오히려 우스울 지경이었죠. 한때 제가 두려워했던 백인들의 인종주의가 점점 더 유치하고 불쌍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서로의 곁을 지키며 냉철하고 우아한 태도를 잃지 않았던 버락과 미셸 오바마의 모습에서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속한 집단을 대표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백인 친구들 사이에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저는 늘 나에게도 힘이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일까 고민했습니다. 미셸과 버락 오바마는 나 자신을 의심하던 어린아이에게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여전히 매일같이 파멸의 날을 상상합니다. 최후 심판의 날이나 공포가 현실이 되는 날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가치를 분명히 알고 있고, 개개인이 가치 있는 인간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인종주의라는 악마가 깨어나지 않을까 마음 졸이지 않습니다. 나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난 후 얻은 깨달음입니다. 어떤 대통령, 어떤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되돌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의 차이를 아는 인간입니다.

오바마가 처음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었을 때 그는 ‘희망’을 외쳤습니다. 희망이란 두려움을 가진 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가 백악관을 떠나면서 남긴 것, 그것은 ‘힘’입니다. (더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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