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턴 총격 사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
2015년 6월 22일  |  By:   |  세계, 칼럼  |  1 comment

(역자 주: 지난 16일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찰스턴(Charleston)에서 백인 인종주의자 딜런 루프(Dylann Roof)가 총기 난사로 9명의 흑인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정황상 백인우월주의 선언문을 준비하는 등 사전 계획된 인종 증오 범죄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래는 에스콰이어에 오른 사설입니다.)

지난 수요일 밤 찰스턴에 있었던 사건에는 많은 의미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이 사건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누군가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습니다. 누군가 총에 장전하는 것까지 생각했죠. 누군가 교회를 떠올렸습니다. 누군가 몇 번이나 수요 성경 공부에 참석해 조용히 생각합니다. 누군가 일어나 사람들을 쏘고, 목사를 포함해 9명을 살해하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누군가 여성 한 명을 살려주어 그녀가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게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거기서 도망치는 것까지 생각합니다. 이날 이 교회에는 많은 일이 있었지만, ‘생각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밤 찰스턴에 있었던 사건에는 많은 의미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이 사건이 ‘논해서 안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좀 더 자주 이에 대해 논해야 합니다. 더 활발히 논해야 합니다. 테러인 사건을 두고는 테러로서 논해야 합니다. 인종 증오였던 사건을 인종 증오로서 논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역사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논해야 합니다. 이 교회는 1822년 노예 해방을 주도한 덴마크 베세이가 설립한 교회입니다. 그는 고문을 받은 끝에 자백한 증언을 채택한 비공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를 목 매단 후 군중이 교회를 불태웠고, 그의 아들이 후에 다시 설립한 교회입니다. 지난 수요일 밤, 누군가 이 교회를 학살의 현장으로 바꾸어놨습니다.

우리는 이를 미국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아프리카의 부두부터 미국 남부 항구까지 이르면서 수없이 일어났던 피로 물든 사건들의 연장선상에서 논해야 합니다. 역사가 우리 안에 숨쉬면서 우리 핏속에 흐르는 살아있는 것이라면 이 일은 결코 역사와 동떨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논해야 합니다. 이날 이 교회에는 많은 일이 있었지만, ‘논할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이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배신입니다. 이를 논하지 않는 것은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지사 니키 할레이가 어떻게 이런 일이 안전한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성명을 발표하는 게 아니라, 조기를 내리고, 이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논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젭 부시, 이 문제투성이인 나라를 이끌고 싶어하는 리더들은 참모진에게 이 도시를 방문하는 게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표를 얻는 데 유리할지를 논하기에 앞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논해야 합니다.

이들을 쫓아다니는 엘리트 정치 언론은 찰스턴의 거리를 바라보고,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것이지 사람들의 엔터테인먼트 용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지식인들과 네티즌들은 도날드 트럼프가 전국구 방송에 나와 그의 머리카락 문제를 논하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논해야 합니다. 이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배신입니다. 이를 논하지 않는 것은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일어난 사건에 대해 생각하세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보세요. 일어난 사건에 대해 논하세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논하세요. 다시, 그리고 또 다시 생각하고 논해야 합니다. 국가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철없는 순진함에 빠져있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새삼스럽고 놀라운 일이라고 받아들이면 편하겠지만 이에 저항해야 합니다. 이는 미국 역사에 걸쳐 흐르고 있던 지독한 불씨입니다. 다시 폭발할 때까지 조용히 숨어있죠. 이 불씨는 1822년 덴마트 베세이의 죽음 때 되살아났고 지난 수요예배 때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이는 논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다. 세 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인 실비아 존슨이 증언합니다. “그녀는 그가 다섯 번이나 재장전했다 말했어요… 그리고 말했죠. ‘난 이 일을 해야만 해요. 당신들은 우리 여성을 강간하고 이 나라를 점령하려 해요. 당신은 사라져야 합니다.'”

이 나라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이는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이 아니라는 겁니다. 비록 역겹지만, 범죄자는 깊이 생각해보고 저지른 사건입니다. 은행 강도나 컴퓨터 해킹처럼요. 사람들이 이를 생각하거나 논하고 싶지 않아 한다면,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겠죠. 사람들이 알고 싶지 않은 이유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덴마크 베세이까지 논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수요일 밤 찰스턴에 있었던 사건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대량학살은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죠. (에스콰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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