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제, 대통령 덕도 대통령 탓도 아닙니다
2017년 1월 20일  |  By:   |  경제  |  No Comment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GDP만큼 영향을 주는 지표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누구는 경제를 살리거나 호황을 이끈 대통령, 누구는 경제를 망치고 그래서 재선에도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억됩니다. (중임제인 미국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에게 집권 1기 경제 상황은 재선의 난이도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는 시기에는 으레 떠나는 대통령의 경제 성적표가 언론에 등장합니다. (이 글을 쓴 닐 어윈 기자도 자신이 워싱턴포스트에 있던 8년 전이나 뉴욕타임스에서 일하는 지금이나 비슷한 기사를 썼다고 고백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를 망쳐 경기 침체, 나아가 금융 위기가 올 거라는 예측을 한 경제학자도 있습니다. 어느 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경제 지표가 실제로 달라질까요? 다르다면 그 원인이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있다는 분석이 정확한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통령이 경제 전반에 실제로 미치는 영향력은 별로 없습니다. 대신 우리가 보는 대통령의 경제 성적표는 순환하는 경기의 어느 시점에 취임하고 퇴임하느냐에 따라, 순전히 운(運)에 따라 결정됩니다. 인구 구조나 노동 계층의 기술 숙련도 등이 경제 지표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사실 이런 구조나 환경은 대통령이 단기적으로 바꿔낼 수 없기도 합니다.

물론 대통령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분야가 분명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이 있고, 그 권한을 활용해 국민이 기대하는 부분도 있죠. 대통령은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이사를 임명하고 재정 정책과 규제 전반을 총괄하며 위기나 외부적인 충격에 대책을 세우는 등 나라 경제를 운용하는 중요한 주체이자 기관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경제 지표가 나왔을 때 이를 순전히 대통령의 정책 결정 덕분이라고 하기도, 반대로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이나 빌 클린턴에 대한 다른 평가는 갈리지만, 어쨌든 경제 호황을 이끈 대통령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호황의 원인을 따져보면 레이건과 클린턴의 정책보다는 두 대통령이 운이 좋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미 카터나 아버지, 아들 부시 모두 좋지 않은 경제 성적표 탓에 욕을 먹었지만, 누가 대통령이 됐더라도 어느 정도 경기 침체를 막기 어려웠을 상황에 집권했습니다.

금융 시장이 경제 상황을 확대해, 재빨리 반영하는 볼록 거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금융 시장은 대통령의 경제 성적표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까요? 이런 생각으로 투자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경제 정책을 펴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당장 경제에 문제가 생기고, 주식 시장이 먼저 반응해 주가가 내려갈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정치적인 성향과 연동해 투자했다면 손해를 피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를 망칠 거라고 우려해서 갖고 있던 모든 주식을 처분한 보수주의자는 지난 8년간 182% 오른 주가 앞에서 뭐라고 말할까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미국 경제가 전례 없는 리스크를 안게 됐다며 주식부터 팔아치운 진보주의자도 머쓱한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오늘은 대통령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좀 김빠지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결과가 나타난 원인이 대통령의 정책인지, 순전한 운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경기 순환과 집권 시점

첫 번째는 타이밍입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1989년 1월 취임하던 당시 실업률은 5.4%였고, 1980년대 내내 이어진 호황의 열기가 식기 시작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부시의 재선을 막고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한 1993년 1월의 실업률은 7.3%로 4년 전보다 높았지만, 고용은 다시 늘어나는 추세였습니다. 미국 경기는 부시 집권기였던 1989~92년의 짧은 불황에서 회복하고 다시 뻗어 나갈 준비를 마친 뒤였습니다.

집권하는 그 순간의 경기가 저점이냐 고점이냐, 따라서 임기를 침체기 속에 보내느냐 회복기나 성장기 속에 보내느냐는 우리가 지금 각각의 대통령을 평가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시가 재선에 실패한 원인도, 클린턴은 쉽게 재선에 성공한 원인도 경제 성적표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으니까요.

오늘 퇴임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운은 아버지 부시만큼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클린턴만큼 좋지도 않았습니다. 오바마는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경기 침체의 한 가운데 첫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미 안 좋은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었죠. 그래도 2008년 시작된 최악의 경기 침체의 어느 지점에 오바마의 임기가 시작됐는지를 보면 오바마가 시기상 최악은 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집권 기간 일자리가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평가하는 고용성장률을 통해 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집권 8년간 미국의 고용성장률은 8.4%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오바마가 13개월 앞선 2007년 12월에 취임했다면? 8년 임기 내 총 고용성장률은 3.4%에 그쳤을 것입니다. 반면 13개월 뒤인 2010년 2월, 고용지표가 밑바닥을 쳤을 때 취임했다면 오바마는 8년간 14%라는 경이적인 고용성장률을 남기고 떠나는 대통령이 됐을 겁니다. (2017년 일자리 창출이 2016년 추세를 따른다는 가정하에 계산한 수치)

다시 말해 경기가 안 좋고 실업률이 높을 때 집권하면 자연스러운 회복기와 함께 임기를 시작하고 성장을 이끌게 됩니다. 반대로 경기가 최고조이고 실업률도 낮을 때 집권하면 더는 오를 곳이 없다 보니, 임기 내 성적표는 신통치 않을 수밖에 없죠. 지난달 미국의 실업률은 4.7%로 대단히 낮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취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의미에서는 운이 없는 편입니다.

 

인구 구조나 경제 상황의 구조적인 변화, 운명

세계 2차대전이 끝난 뒤 여성이 대거 노동시장에 진출합니다. 1948년만 해도 25~54세 미국 여성 가운데 일을 하거나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은 33%에 불과했지만, 2001년 1월 이 비율은 77%까지 높아집니다. 여성이 일하고 돈을 벌면서 경제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했습니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20세기 후반부 내내 가파른 경제 성장을 이끈 근본적인 동력입니다. 수백만 명이 노동 인구에 가세하면서 GDP 증대에 엄청난 기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닉슨, 레이건, 클린턴까지 ‘경제 대통령’이란 칭송을 들었던 대통령 누구도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라는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진 않았습니다. 장기적인 사회 변화의 덕을 당시 대통령이 본 셈이죠. 운이 따랐던 겁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에 관한 거의 모든 상황에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노동 인구의 중추를 담당했던 베이비붐 세대는 이제 대부분 퇴직했습니다. 이제 노동력은 점점 밀레니얼 세대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특정 대통령의 임기 동안 경제성장률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노동력과 인구 구조 같은 요인인데, 이는 정치인이 조절하거나 취사선택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8년 동안 미국에도 저성장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이 또한 정책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구 구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큽니다. 오바마 대통령 임기 8년간 노동 인구는 연간 0.4%씩 성장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할 4년간 노동 인구는 매년 0.5%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던 1990년대에는 노동 인구가 매년 1.2%씩 늘어났습니다. 인구 구조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한 저성장 기조는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도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흐름입니다.

 

통화 정책(monetary policy)은 연준의 몫

자, 이제 그럼 대통령이 경제 전반에 더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분야를 살펴보도록 하죠. 안타깝게도 그 영향력도 생각만큼 직접적이진 않습니다.

이자율을 조정해 경기 침체나 지나친 경기의 과열을 막는 일은 미국의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연방 준비제도(연준)가 하는 일입니다. 연준 총재를 비롯해 연준 이사 일곱 명을 임명하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상원에서 인준)

대통령은 자신과 경제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을 임명할 수 있습니다. 총재나 이사의 능력과 업무 수행에 대한 책임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어느 정도 지게 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연준 제도 자체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행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지키며 일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사의 임기도 14년으로 대통령 임기보다 훨씬 깁니다. (연준 총재의 임기는 연임이 가능한 4년) 대통령 한 명이 연준의 이사진 가운데 다수를 임명하게 되는 일은 거의 일어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고용을 늘리고 물가와 금융 시장 전반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통화 정책을 지혜롭게 운용할 수 있는 훌륭한 연준 관리를 임명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한 경제 성장의 공 가운데 일부는 대통령에게 돌아가도 좋을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이 임기 동안 임명할 수 있는 이사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임명권자,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연준이므로 견제 장치가 존재하고, 그만큼 대통령의 영향력도 제한되는 겁니다.

 

재정 정책(fiscal policy)은 대통령 손에 달렸다지만…

사실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라고 하면 주로 재정 정책을 뜻합니다. 대통령은 조세 제도를 정비하고 정부 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등 재정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입니다. 하지만 여기도 정교한 견제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 의회입니다.

조세 및 정부 지출에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의중이 반영되는 건 당연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09년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을 썼고, 두 번째 임기 첫해인 2013년에는 부자 증세를 시행에 옮겼습니다. 반대로 레이건 대통령은 엄청난 감세 정책으로 유명하죠. 선거 결과의 차이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재정 정책일 겁니다.

하지만 사실 조세와 정부 지출에 있어 대통령보다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기관이 의회입니다. 매년 연말 대통령이 이듬해 예산안을 발의하면 야당 의원들은 내용을 보지도 않고 “일단 반대”를 외치고 협상을 시작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의회를 통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세금을 걷거나 예산을 집행할 수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몇몇 정책은 자기 뜻대로 시행했지만, 끈질긴 저항에 막혀 양보하고 타협안을 찾은 적도 많습니다. 정부예산 자동 삭감(sequestration)이란 단어는 야당인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이 된 2010년부터 뉴스에 수도 없이 등장했습니다.

조세나 정부 지출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작지 않습니다. 이런 재정 정책 전반을 이끌어가는 건 분명 대통령의 일이지만,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대통령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거의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곧 이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

대통령의 재정 정책 외에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사실 어느 분야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결정이 영향을 미치고 이는 경제 지표로 나타나기 마련이죠. 의료 보건, 에너지, 기술 혁신, 금융 규제, 노동 정책, 무역, 교통 인프라, 농업 정책 등 분야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외교 정책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정학적 안정은 경제 성장에 꼭 필요한 조건입니다.

문제는 지금 언급한 분야에서의 영향력이 대단히 점진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융권에 대한 잘못된 규제를 무리하게 강행한 경우, 그 부작용과 문제는 즉각 나타나지 않고 대개 약 10년 정도 시차를 두고 나타납니다. 인프라에 투자하면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빨라야 몇 년 뒤입니다. 교육 정책을 개혁하면 국민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는 잘 배운 학생들이 더 훌륭한 인재로 자라나 경제 활동을 시작할 때 비로소 나타납니다.

보수주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 보호를 이유로 에너지 생산을 규제한다고 유가가 당장 폭등하지는 않습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규제는 기업 활동이나 경제에 당장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전반적인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성장을 저해합니다.

미국 의회 예산처는 오바마케어라 불리는 건강보험 개혁안(Affordable Care Act) 때문에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미국 사회 전체의 노동 인구는 230만 명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사람들이 직장을 갖는 이유가 직장인 의료보험 때문이라는 가정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230만 명은 어마어마한 숫자지만, 의회 예산처가 예측한 시점을 잘 봐야 합니다. 2021년. 의회 예산처는 건강보험 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한 지 11년이 지나서야 이런 부작용이 점진적으로 드러나리라고 내다본 겁니다.

경제학자들이 어떤 정책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는 많은 경우, 이렇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정책이나 변화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의 진행 속도가 무척 느리기도 하고,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며, 분석에는 정파적 이해타산도 포함되기 마련입니다. 정확한 예측을 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죠. 우리는 그저 우리가 선호하는 정책이 경제를 활성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가정 아래 어차피 증명하기 어려운 사안에 예측을 덧붙이는 건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토대로 대통령은 국가 경제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리면 곤란합니다. 단지 대통령의 정책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효과로 나타나는 데까지 긴 시간이 걸리며,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원인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 돌리기 어렵다는 점을 언급한 겁니다.

동시에 운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타 요인이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그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사건에 단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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