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브룩스 칼럼] 판단력이 정말 중요할까요?
2016년 12월 5일  |  By:   |  과학  |  No Comment

유대인인 다니엘 카네만은 어린 시절 2차대전 당시 독일 치하의 프랑스에서 산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파리에서 통금시간을 지나 나치 친위대에게 잡힐 뻔한 적도 있습니다. 그와 그의 가족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길 바라며 프랑스 시골 마을들을 도망 다녔습니다. 마이클 루이스는 그의 새 책 “완화 계획(The Undoing Project)”에서 카네만이 다른 이들을 피해 다님으로써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이주했습니다. 카네만은 이스라엘군에서 심리 평가 부대에 배속되었고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아모스 트버스키는 오랜 기간 군인으로 복무한 어머니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그는 1956년 전쟁에서 낙하산 부대로 참전했고 기절한 동료를 폭탄이 터지기 직전에 구출한 공로로 최고 훈장을 받았습니다.

트버스키는 괴짜였습니다. “아모스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너무 큰 비용을 치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트버스키의 한 친구가 루이스에게 한 말입니다.

트버스키는 달리기를 하고 싶을 때면 그저 바지를 벗고 속옷만 입고 달렸습니다. 모임이 지루해지면 그는 그저 자리를 떴습니다. 트버스키는 자신이 어떻게 심리학을 하게 되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 경로를 설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은 거의 무작위적입니다.”

카네만과 트버스키는 공동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수년 동안 단짝이 되어 붙어 다녔습니다. 그들은 파티에 가서도 곧 그 자리를 떠나 두 사람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같이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둘은 거의 물리적으로 하나의 인격체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루이스는 그들이 같이 앉아 하나의 타자기를 치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 이상이었습니다.” 트버스키 부인의 말입니다. 같이 논문을 쓸 때면 그들은 어떤 내용이 누구의 생각인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서로의 연구 주제를 뒤섞어 같이 이를 토론했고, 상대의 문장을 서로 완성해 주었습니다.

“창조적 과정이란 무언가를 말한 다음 한참 뒤, 때로는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말했던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카네만의 말입니다. “우리 사이에서 이 과정은 쉽게 단축되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말하면 아모스는 이해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 내용이 어색한데 말이지요.”

이들의 놀라운 우정은 곧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혁명적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카네만과 트버스키는 마이클 루이스의 다른 책 “머니볼”과 “빅 쇼트”에 나오는 이들과 비슷했습니다. 곧, 현실을 꿰뚫어 보기 위해, 다른 이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오직 최선의 노력을, 거의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지적 반항아들이었습니다.

모든 경제학 모델이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할 때, 카네만과 트버스키는 인간의 의사 결정에는 본질적이면서 예측 가능한 오류가 있음을 보였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편향인 손실 회피(loss aversion),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 사후판단 편향(hindsight bias), 닻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는 이제 잘 알려져 있으며 카네만의 훌륭한 책인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뒤엎은 진정한 지적인 거인들입니다. 루이스는 이들의 학문적인 삶을 흥미롭게 묘사했고, 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오류를 발견한 그들은 스스로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카네만과 트버스키는 흔히 도박장에서의 결정이라 불리는, 다양한 확률이 주어졌을 때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내용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카네만과 트버스키의 삶을 볼 때, 그들이 실제로 커다란 결정을 많이 내린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삶은 역사적 사건, 우연한 기회, 심리학에 대한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열정 등에 의해 이끌려 갔습니다. 이 책을 통틀어 중요한 결정으로 보이는 것은 단 하나, 트버스키가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정한 부분입니다.

그들의 삶은 판단력보다는 열정에 의해 더 지배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상대방의 지성에 몰두했고, 그들 앞에 놓인 문제에 몰입했습니다. 그들의 성공은 그들이 훌륭한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열정을 발휘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열정을 따라 차근차근 전진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인지과학과 관련해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잘하든 못하든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타고납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라 행동합니다. 어떤 것이 더 재미있어 보이는지, 더 아름다워 보이는지, 더 궁금하게 느껴지는지, 더 중독적인지가 중요해집니다.

충동적인 몰입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본 적이 있나요?

우리는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크게 보아 판단은 호기심과 몰입 이후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진정 인생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판단력보다 호기심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왜 흥미를 느끼는 그 문제에 흥미를 느끼는 것일까요? 왜 어떤 이들은 열정에 사로잡히고 광적으로 빠져드는 것일까요?

이제 우리는 인간의 판단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 영역은 욕망입니다. 제2의 카네만과 트버스키가 나타난다면 그들은 무엇이 인간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지배하는지를 설명해줄지 모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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