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비밀 감옥이 남긴 깊은 상처 (3)
-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관타나모의 악몽
오바마 행정부는 관타나모 기지를 궁극적으로 폐쇄하겠다는 약속을 더디지만 이행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이튿날 오바마 대통령은 강압적 심문 수사를 금지하는 대통령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한때 700명에 이르렀던 관타나모 기지의 포로 수를 61명까지 줄였습니다. 고문도 사라졌습니다. 기지 내 모처에 수감한 소위 요주의 인물 몇 명을 빼면 나머지 수감자들은 콘크리트 감옥에 있습니다. 관타나모 기지 총사령관인 피터 클라크 해군 소장은 “과거에 일어나던 잘못된 일은 이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관타나모 관리들은 수감자들을 심문할 때 CIA의 전형적인 수법을 빌려 쓰기도 했습니다. 정신적으로 이들을 압박하며 물리적인 압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국제 적십자사는 이를 두고 “고문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예전에는 언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던 것이 수감자들을 더욱 무력하게 했다면, 현재 수감자 가운데 20여 명은 머지않아 석방될 예정입니다.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석방 시 다시 테러에 가담할 우려가 있어 석방하기 어려운 수감자도 있습니다.
관타나모에서 석방되더라도 수감자들의 끔찍했던 기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모로코 출신으로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던 중 알카에다와 관련이 있다는 혐의를 받고 체포된 체쿠리 씨는 칸다하르에 있는 군 교도소에서 미군에게 수도 없이 구타를 당했습니다. 자신의 남동생이 똑같이 폭행을 당하는 걸 강제로 지켜봐야 하기도 했습니다.
체쿠리 씨는 이슬람교 안에서도 신비주의 소수 교파로 분류되는 수피교도로 알카에다나 다른 테러조직에 핍박받는 집단 소속이었습니다. 관타나모에서도 그는 따로 분류돼 구금됐습니다. 관타나모의 미군 조사관은 끝없이 그를 모로코 당국에 넘기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모로코에서의 고문은 훨씬 잔혹할 것이라며 틈만 나면 머지않아 모로코로 가게 될 거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지난해 석방된 뒤 미국 측은 그에게 달랑 편지 한 장을 보내 체쿠리 씨와 알카에다는 관련이 없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혐의를 벗었지만, 모로코 당국은 일단 그를 구속하고 몇 달 동안 구치소에 가뒀습니다.
갖은 고생을 다 하고 나서야 혐의를 벗은 체쿠리 씨에게 남은 건 수많은 정신 질환입니다. 그는 우울증약, 불안증약을 먹고 있고, 거의 매일 악몽과 발작에 시달립니다. 가끔은 대소변을 보지 못하기도 하는데, 그는 관타나모에서 한 번 쇠사슬에 묶여 몇 시간씩 갇혀 심문을 당했을 때 정신을 잃고 자기도 모르게 바지에 대변을 본 뒤 종종 그렇게 됐다고 말합니다. 의사도 딱히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제 상태는 정상이라고 해요. 다만 제 뇌가 아직 그때를 기억하는 거죠. 정신적으로 아직 관타나모를 벗어나지 못한 거예요. 두려움이 남아있죠.”
관타나모에도 정신과 의사들이 있었지만, 체쿠리 씨는 그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수감자들은 오히려 의사들이 환자의 의료 정보, 기록을 조사관들과 공유해 암암리에 고문을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에게 향정신성 약물인 올란자핀을 처방한 뒤 약의 부작용으로 생길 수 있는 식욕을 심문에 활용해 자백을 받아내도록 조사관에게 정보를 공유하는 식이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관타나모에는 수감자들의 정신 상태를 예의주시하는 팀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들도 있었지만, 치료 이외의 온갖 목적을 달성하는 데 환자의 정신 상태를 활용한 행동과학협의회(Behavioral Science Consultation Team, BSCT, 비스킷이라고 발음)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 비스킷 팀은 수감자의 정신 상태를 분석한 뒤 그를 효과적으로 심문하고 추궁해 자백을 받아내는 전략을 세우곤 했는데, 결과적으로 고문을 통해 받은 자백이라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 고문의 전모, 당사자는 모르쇠
관타나모 수감자들의 정신 건강 문제가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가늠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하물며 그 가운데 어떤 사례가 수감생활 중 일어난 가혹 행위나 고문 때문에 불거졌는지 밝혀내지는 더욱 어렵습니다. 여전히 대부분 의료 기록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사례가 산발적으로 알려졌습니다.
2003년 7월부터 10월까지 관타나모 기지의 정신과 과장으로 복무했던 해군 대위 앤디 데이비슨은 수감자들의 건강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크고 작은 문제가 너무 많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분명해 보이는 환자가 있었고요.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사람,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쟁신경증을 앓는 사람,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 갖가지 사례가 다 있었어요.”
2006년 한 의학 저널에 관타나모 수감자들의 정신 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글 한 편이 실렸습니다. 군 소속으로 관타나모 기지에서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가 쓴 글인데 관타나모 수감자의 11%가 정신과 진료 혹은 정신 건강 문제로 상담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1%는 사실 민간 감옥이나 전쟁포로로 붙잡혔던 미군들 가운데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들의 비중보다 낮은 것입니다. 저자들은 다만 이는 관타나모에서 특히 의사와 수감자들 사이에 신뢰가 대단히 낮아 정신 질환이 명백해 보이는데도 진료를 거부하거나 솔직히 상태를 털어놓지 않는 이들 때문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5년 뒤, 기사 머리에 소개한 제나키스 장군과 인권을 위한 의사 모임(Physicians for Human Rights)의 빈센트 이아코피노 박사가 미국 감옥에서 잔혹한 심문 방식에 따라 추궁을 당했던 수감자 아홉 명의 정신 질환 증세를 분석한 연구를 발표합니다. 그들은 호스를 강제로 입에 물리고 살해 위협을 받았고 머리를 변기에 처박고 구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두 연구 모두 관타나모에 수감됐던 이들의 사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두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구속된 적도 없고 혐의가 입증돼 기소되고 형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잡혀 와 사실상 고문을 당하고 있던 수감자들을 진료한 기록에는 정신 질환과 심문 기법 사이에 관계가 있어 보인다는 소견은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
모로코의 탄지어에서 식당 두 곳을 운영하는 아흐메드 에라치디 씨는 관타나모에 수감됐다 석방된 지 10년이 되어 갑니다. 미군 측은 그가 2001년에 알카에다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를 붙잡았습니다. 그는 인권단체 리프리브(Reprieve)가 2001년 내내 런던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었다며 당시 받은 급여명세서까지 뗀 뒤에야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다른 사례가 그렇듯 에라치디 씨도 이미 고문으로 마음이 다친 상태였습니다.
에라치디 씨는 특히 관타나모에 수감되기 전부터 양극성 장애 병력이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뒤 신경쇠약 증세가 심해졌는데, 그는 조사관들에게 자신이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이고 최고사령관이라며 전 세계가 거대한 눈덩이에 휩쓸릴 거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습니다.
아직도 탄지어의 시장 어딘가에서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라도 들리면 에라치디 씨의 눈앞에는 불면증에 지독한 고독과 두려움이 뒤섞여있던 관타나모의 끔찍한 기억이 펼쳐집니다. 쌀쌀한 밤이 되면 그는 항상 차디찬 독방에서 아무런 옷도 입지 않은 채 추위와 공포에 떨며 다음 조사관을 들어오길 기다리던 기억에 몸서리칩니다.
“아직도 언제 그들이 저를 또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관타나모 초창기에는 특히 수감자들의 정신 상태를 분석하고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해 이들에게서 정보를 캐내거나 원하는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 흔한 수법이었습니다. 이집트인 타렉 엘 사와 씨의 사례는 조금 특이합니다.
엘 사와 씨는 탈레반 군사였습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피해 도망치던 중 붙잡혔고 2002년 5월 관타나모로 이송됐습니다. 원래 정신 질환이 전혀 없었지만, 관타나모에 들어온 엘 사와 씨는 매일 밤 환각, 환청에 시달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할 만큼 정신 상태가 피폐해졌지만, 기지 교도관으로 있던 미군은 그가 똥오줌을 쌀 때마다 다른 수감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냥 호스로 물을 뿌려 대충 씻어내고 말았습니다. 엘 사와 씨는 강제로 향정신병 약물을 복용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신경쇠약이 온 뒤에 엘 사와 씨가 말이 많아졌다는 걸 눈치챈 조사관들은 계속해서 말을 시키려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엘 사와 씨는 끝없이 먹을 것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맥도널드 햄버거부터 서브웨이 샌드위치 등을 한 아름 가져다주면 엘 사와 씨는 그걸 다 먹으면서 쉬지 않고 말을 했습니다.
엘 사와 씨가 말한 내용의 진위가 종종 논란이 되었지만, 엘 사와 씨는 미군에 계속 정보를 주고 그만큼 대우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는 모든 이야기를 다 날조한 거라고 말했지만요. 원래 약 95kg 정도였던 엘 사와 씨의 체중은 거의 180kg으로 두 배 가까이 불었습니다. 자연히 관상동맥 질병이나 당뇨, 호흡곤란 등 몸에 문제가 생겼죠. 관타나모의 의사는 몸무게를 줄이라고 누차 경고했지만, 조사관들은 엘 사와 씨로부터 계속 정보를 얻고자 끝없이 음식을 가져다줬습니다.
2013년 제나키스 장군이 엘 사와 씨를 진료합니다. 제나키스 장군은 엘 사와 씨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견을 냈습니다. “엘 사와 씨의 정신 건강은 이미 나빠졌고, 그에게서 삶을 향한 의지를 거의 읽기 어렵다.”고 지적했죠. 미군 측은 그에게 지속해서 치료를 권했지만, 엘 사와 씨가 거절했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58세인 엘 사와 씨는 현재 보스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두통과 조울증이 심하고, 의사에게 매번 항우울제를 처방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살은 예전보다 빠졌지만, 폭식하는 습관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라마단 기간이라 낮의 금식이 끝난 뒤 기자와 함께 먹은 저녁 식사에서 그는 어마어마한 양을 순식간에 먹어치웠습니다.
“삶과 생활에 전혀 균형이 잡혀있지 않아요. 보호와 치료가 필요해요.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도요.”
뉴욕에 사는 엘 사와 씨의 형은 말했습니다. 엘 사와 씨는 미군 병사들을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도 저를 두려워했을 거예요. 관타나모에는 창살 안팎을 가리지 않고 모두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사람들뿐이에요. 그저 죽지 않으려 발악하는 삶이죠.”
- 심문의 그림자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CIA 비밀감옥 염전에 갇혀 고문을 당했던 살리 하디야 알대이키 씨는 집중력 부족, 기억상실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식의 이름이 종종 헷갈리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도 괴로워 자꾸 혼자만의 시간을 찾곤 합니다.
뉴욕타임스가 만난 피해자들과 비슷한, 하나같이 끔찍한 경험을 알대이키 씨도 했습니다. 발가벗겨진 채로 얻어맞고, 성적 모욕을 당하고 귀청이 찢어질 만큼 큰 음악에 노출되고. 리비아에 살고 있는 그는 밤에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가까스로 잠이 들면 이번에는 꿈속에서 조사관이 그를 추궁하고 괴롭힙니다.
“무언가 나를 목 졸라 죽이려 하거나, 아니면 계속해서 어딘가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때로는 유령이나 망령이 저를 쫓아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난해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의 아들 사디가 고문을 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사디의 눈을 안대로 가려놓은 이들은 사디의 맨발을 막대기로 세게 때리고 강제로 시끄러운 음악을 듣게 했으며 옆방에서 누군가 구타를 당해 내는 비명을 듣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영상에 뜻밖의 인물, 알대이키 씨가 등장합니다. 화면 속 알대이키 씨는 직접 구타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전체 과정을 감독하고 지시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동영상에 관해 묻자 알대이키 씨는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 했던 것인데 조금 도가 지나쳤던 것 같다며 구타는 실수였다고 태연히 말했습니다.
고문 피해자 알대이키 씨는 고문 가해자로 새 삶을 시작한 겁니다.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