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비밀 감옥이 남긴 깊은 상처 (1)
2016년 10월 20일  |  By:   |  세계  |  No Comment

수감한 적군 포로나 생포한 테러리스트를 심문할 때 잔혹한 방법을 써도 좋다고 승인하기에 앞서 미국 정부는 ‘고문’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이 충격적이고 잔인한 방법이 미국이란 나라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에 맞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런 비인간적인 심문이 수감자들에게 오랜 정신적 상처를 남길 거라는 점은 외면했죠.

뉴욕타임스가 전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비밀 감옥’에 수감된 시절의 공포에 떨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피해자들을 만났습니다. 잠을 재우지 않고 계속해서 얼음물을 끼얹으며 수감자를 벽으로 밀쳐놓고 구타하고 관 같은 좁은 상자에 가둬놓는 등 고문 방식은 다양했습니다. 깜깜한 감방 안에 사나운 개를 풀어놓아 공포에 떨었던 기억에 시달리는 사람, 매일 밤 깊은 우물 아래 떨어져 질식사하는 꿈을 꾸는 사람, 귀청이 찢어질 듯한 음악에 노출돼 청각이 손상되고 어떤 소리만 들으면 헛것을 보는 사람 등 피해자의 상처는 다양합니다. 악명 높은 관타나모 기지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사람은 길을 가다 관타나모의 교도관과 생김새가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을 보면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최근 기밀해제된 의회 보고서와 의료 기록, 판결문과 미군의 조사 보고서 등 정부 문서는 CIA가 운영한 이른바 ‘비밀 감옥(black sites)’에서 자행된 고문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수감됐던 이들과 군, 민간 의사 등 총 100명이 넘는 사람을 인터뷰해 수감자들이 얻은 정신적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본 결과, 과거 비인도적인 독재 정권이나 악명 높은 게릴라들의 손에 잡혀 고문을 당했던 미군들이 겪은 증세와 비슷한 정신적 문제가 발견됐습니다. 이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피해망상, 편집증, 우울증 등 거의 모든 정신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피해자 가운데는 미군과 정보당국이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잡아들인 뒤 고문을 가했다가 풀어준 이도 있고,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부역자라는 이유로 잡혀들어갔다가 나중에는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풀려난 이도 있습니다. 물론 9.11 테러를 비롯해 미국에 큰 타격을 가한 테러 공격의 배후에 있던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법한 절차를 밟아 신병을 구속당한 경우는 없습니다. 전시 혹은 준전시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전 세계 곳곳에 운영했던 CIA의 비밀 감옥은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되는 비밀 시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 기지의 포로수용소를 점진적으로 폐쇄하겠다고 밝히고 포로들을 석방해 왔지만, 석방된 포로 가운데 일부가 다시 테러조직에 가담하는 것으로 밝혀지는 등 반발이 거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 대통령 후보 트럼프는 물고문 등 국제법으로 금지된 심문 방법을 부활시키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논란과 별도로 정확히 CIA가 운영한 비밀 감옥에서 자행된 고문이 어느 정도였고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실이 기밀문서로 분류돼 공개되지 않았고, 의사나 변호사를 만날 기회도 없이 고문을 당해 죽었거나 심각한 장애를 안게 된 이도 많을 겁니다.

“이런 고문 방법이 미국의 가치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고문으로 인한 상처와 피해는 앞으로 미국 정부와 여기에 가담한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백악관 안보 부보좌관인 벤 로즈는 말했습니다.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잔인한 고문 방법이 정신적으로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과 피해에 관해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고문을 당한 수감자의 장기적인 정신적 피해에 관해 미군이 수감한 포로나 죄수들은 인도적인 처우를 받고 있다는 틀에 박힌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CIA 대변인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자문한 연구진은 다만 과거 수감됐던 이들이 현재 안고 있는 정신적 장애가 반드시 수감 시절 당한 고문 때문이라고 확신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줬습니다. 원래 장기적인 정서 장애에 취약한 성격이거나 그런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죠. 개인차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훨씬 수월하게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을 떨쳐냈습니다. 하지만 잔인한 고문을 당한 이들에게서 장기적으로 정신 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이 월등히 크다는 데는 대부분 전문가와 의사들 사이에 이견이 없습니다.

관타나모에서 일했던 미군 군의관들은 수감된 포로들이 환자로 왔을 때 대개 어떻게 된 일인지 구체적으로 묻지 않습니다. 일종의 불문율이죠. 하지만 관타나모 군 병원에서 일했던 해군 대위 출신 앨버트 심쿠스 씨는 묻지 않아도 심각한 정신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게 명확해 보이는 환자가 종종 왔다고 말합니다.

“간호사들이 자세히 묻지 않고도 고문을 당했거나 잔혹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추궁당한 이들이 겪는 문제를 치료하는 매뉴얼대로 환자를 돌보곤 했죠.”

심쿠스 씨가 관타나모에서 일하던 때는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였습니다. 심쿠스 씨도 두 가지 정체성에서 오는 갈등을 피하기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의사로서 환자를 최선을 다해 돌보고 치료해야 하는 의무가 있죠. 하지만 제게 오는 환자들은 국가의 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군인이기도 했고요.”

많은 수감자가 미군에 납치되거나 생포된 뒤 고문을 받다가 별다른 설명 없이 풀려났습니다. 가족의 품에 돌아온 수감자들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속은 곪을 대로 곪아 만신창이가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고문, 심문, 독방에 갇힌 기억, 강제로 옷을 다 벗긴 뒤 사진을 찍고 성적으로 학대하며 억지로 기저귀를 채우는 등 모욕을 당했던 기억에 몸서리쳤습니다.

 

  • 인간 대걸레

2008년 12월, 관타나모 기지에서 한때 취조실로 쓰였던 차가운 방에서 스티븐 제나키스 씨는 한때 알카에다의 소년병이었던 오마르 카드르와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캐나다 국적의 카드르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의 은신처에서 벌어진 교전 중 부상한 채 생포됐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15살이었습니다. 카드르는 알카에다 조직원이었던 아버지의 부름에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해외에서 모집한 전투병들의 통역으로 일했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뒨 카드르는 미군 위생병을 살해한 폭탄 공격 등에 가담한 점이 인정돼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됐습니다. 수감자와 포로를 통틀어 가장 어린 나이였습니다.

제나키스 씨의 아버지는 공군이었고, 제나키스 씨 자신도 준장으로 예편하기까지 의사보다 항상 군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의무를 우선시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라를 위한 일인지를 항상 스스로 묻던 제나키스 장군은 카드르의 변호사들에게 미군 소속 관타나모 기지 병원장이 아니라 의사 개인의 사견임을 전제로 소견을 전합니다.

카드르의 변호사들은 이미 카드르로부터 그가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전해 들었습니다. 교도관이었던 군인들은 카드르를 재우지 않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으며 그를 강간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한번은 정신과 전문의인 제나키스 장군과 마주 앉아 있던 중 실내가 무척 추웠는데도 카드르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더니 답답한 듯 셔츠 단추를 풀었습니다. 제나키스 장군은 한눈에 불안발작이 왔음을 알아봤습니다.

카드르는 제나키스 장군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습니다. 한 번은 군인들에게 취조를 받다가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쌌는데, 군인들이 그를 끌고 나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방에만 오면 그가 불안해지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저를 인간 대걸레처럼 써서 이 방을 청소했거든요.”

제나키스 장군은 몇십 년 전 캘리포니아의 한 육군 병원에서 새내기 정신과 의사 일을 시작하던 시절 비슷한 환자를 봤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 병원은 베트남전쟁에서 포로로 잡혔던 이들이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가기 전 정신과 치료를 받던 곳이었습니다. 비인간적인 고문과 협박을 견뎌낸 이들은 대개 공황 발작이나 심각한 두통 등 정신병을 호소했습니다.

카드르와의 면담 뒤 제나키스 장군은 다른 포로, 수감자들의 상태를 더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관타나모에 수감 중이거나 수감됐던 적이 있는 이들의 의료기록 50여 건을 검토했고, 포로 15명을 직접 진료하고 면담했습니다. 의사 한 명이 접한 사례로는 독보적인 숫자입니다.

제나키스 장군은 카드르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내렸습니다. 미군 측은 동의하지 않았죠. 이밖에 제나키스 장군이 다른 환자에게 내린 진단은 여전히 기밀문서로 남아있거나 재판 중인 사안이라 법원이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제나키스 장군은 전반적으로 미군의 가혹한 심문, 고문과 환자들이 얻은 정신병 사이에 드러나는 뚜렷한 관계를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예편 후 버지니아에 있는 집에 머물고 있는 제나키스 장군은 가혹 행위가 남긴 장기적인 영향에 관해 개인적인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9.11 테러 직후 미국 정부가 테러리스트에게 자비란 없다는 주장에 따라 고문 관련 규정을 새로 만들 때는 거들떠보지 않거나 애써 외면했던 연구들을 차례차례 살펴봤습니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뒤 참전 군인 가운데서도 전쟁포로로 잡혔던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많은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드러납니다. 2차대전이나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에게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죠. 단지 포로로 잡혔다고 반드시 만성 정신 질환을 호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고문이나 가혹 행위를 당했던 이들에게서 정신 질환이 나타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집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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