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은 미치지 않았다. 지극히 합리적이다.
옮긴이: 박근혜 대통령은 다섯 번째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대해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 불능”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며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식 벼랑 끝 전술을 고집하는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체제 보장을 가장 우선으로 여겨 온 북한 정권이 그간 택한 전략은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뉴욕타임스의 막스 피셔(Max Fisher) 기자가 쓴 칼럼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앞서 지난 1월, 4차 핵실험 이후 존스홉킨스대학 한미 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조엘 위트가 쓴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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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미친 걸까? 아니면 미친 척하는 걸까?
북한의 행보를 보면 이런 궁금증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긴 하다. 매번 전쟁을 불사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실제로 한국군과 교전을 벌이거나 국지적 도발을 벌이기도 한다. 정치 지도자는 괴짜에 기관 언론이 하는 말은 늘 분노에 찬 메시지뿐이다. 핵보유국이 되고자 안간힘을 기울여 온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진척을 보여 왔다. 지난주 5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북한을 둘러싼 우려는 증폭됐다.
정치학자들도 오랫동안 저 질문에 답을 찾아 왔다. 그런데 분석을 거듭할 때마다 학자들이 내놓는 답은 거의 똑같다. “북한의 행동은 미친 짓과는 거리가 멀고, 지극히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먼저 북한의 호전성은 실제로 역사의 힘 앞에 굴복해도 이상하지 않을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인 북한 정권이 체제를 지키고자 내세운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라고 학자들은 생각한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지만, 북한은 항상 대대적인 반격이나 체제 전복 작전을 불러올 만큼 험악한 수준으로 상황을 몰고 가지는 않는다.
정치학자 데니 로이(Denny Roy)는 아직도 인용되는 1994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광기 어린 국가라는 인식과 무모해 보이는 도발, 폭력은 결과적으로 훨씬 강력한 적국의 공격을 억제하고 저지하는 데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미치광이 북한’이라는 이미지는 사실 북한에 대한 오해와 북한을 향한 흑색선전이 만들어낸 허상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북한이 실제로는 합리적이라는 사실이 북한이 이성을 잃은 통제 불능의 상태일 때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북한이 (승산 없는) 전쟁을 원하지는 않지만,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긴장 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만에 하나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참패를 면하게 해줄 억지력을 발휘할 만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해 온 것이라면, 그 위험이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훨씬 중대하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이 북한의 전략을 합리적이라고 믿는 이유
정치학자들이 한 나라를 합리적이라고 말할 때는 반드시 그 나라의 지도자가 최고의 선택을 하거나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지도자들의 정신 상태가 남들의 귀감이 될 만큼 건강하거나 훌륭하다는 뜻도 아니다. 그보다 한 나라가 합리적이라는 건 그 나라가 국익에 따라 전략적 선택을 내리고 행동에 옮긴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라의 존망이 달린 문제에서 나라를 지키는 것보다 더 큰 국익은 없다.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국가라고 해서 반드시 가장 중요한 국익을 좇아 행동하거나 장기적인 이익과 단기적인 이익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노력한다. 그런 국가는 국익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국익에 비추었을 때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략을 짜 행동한다.
반대로 국익을 추구하지 않는 나라는 비합리적인 나라가 된다. “정신 나간” 나라의 지도자는 자기 나라의 이익이 무엇인지 판단조차 못 하는 대단히 비합리적인 상태에 빠져 있다. 그나마 “덜 정신 나간” 나라는 교조적인 사상이나 지나친 권력 투쟁 등 국내 정치 요인 때문에 목표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때때로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나라의 행동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정치학과의 데이비드 강 교수는 2003년 발표한 논문에서 북한의 행동이 혐오스럽기는 해도 어쨌든 북한이란 나라의 합리적인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들이었다고 평가했다. 국내 정치든 국제 정치든, 북한 지도자들은 나라에 이익이 되는 방향이 무언지 철저히 분석한 뒤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최근의 행동을 보더라도 그런 분석은 여전히 통한다고 답했다.
측근들부터 국내, 국제정치에 관련된 수많은 현안을 분석해 대단히 복잡한 결정을 오차 없이 내리는 능력을 보면 북한 정권과 지도부를 비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목표를 어떻게 세우고 그에 필요한 수단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지도부가 비합리적인 지도부일 텐데 북한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위원회에서 아시아 지역 담당으로 일했던 조지타운대학교의 빅터 차 교수도 북한 지도부가 합리적이라고 거듭 주장한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야만적인 횡포를 일삼는 지도자가 냉철한 계산을 할 줄 모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두 가지 특징을 모두 갖춘 독재자가 적지 않다.
비합리적인 나라는 냉혹한 국제 사회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모든 나라는 나라를 지키고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목표 아래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계속 비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나라라면 도태되고 몰락하는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이 분명 지구상의 다른 어떤 나라와도 구별되는 별난 나라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대단히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결정과 행동도 실은 북한의 국익에 최적화된 합리적인 행동일지도 모른다.
북한의 합리적인 비합리성
냉전이 끝나면서 동북아시아의 정치 지형은 북한에 대단히 불리하게 변했다. 북한이란 나라의 생존이 위협받을 정도였다. 일견 정신 나간 행동처럼 보이는 북한의 정책 결정은 여기서 비롯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첫째는 군사 문제다. 휴전 상태가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힘의 균형은 소련과 미국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던 냉전 시기에는 오히려 팽팽했을지 모르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모두 한국이 북한에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됐다. 소련이라는 방패막이 사라지고 북한이 기댈 수 있는 우방은 중국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중국마저 서구 국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치중하고 있다.
둘째로 정치적인 문제도 있다. 남북한 모두 헌법상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이 한국(Korea)을 대표하는 적자라고 주장한다. 분단 이후 한동안 남북한의 발전 정도는 엇비슷했지만, 남한이 북한을 국력에서 앞질렀고 1990년대 들어 국민이 누리는 자유의 정도나 경제 지표 등에서 두 나라의 격차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벌어졌다. 대표성을 놓고 봤을 때 북한 정부는 있을 필요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북한이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며 들고나온 정책이 바로 선군(先軍)정치였다. 북한 사회 각계각층은 전투하듯 일상을 살게 됐다. 선군정치 기조 아래 인민의 의식주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많은 국방비가 정당화됐고, 강압적인 내부 반역자 색출이 일상이 되었다. 당과 지도부의 정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전시를 방불케 하는 수준으로 강화됐다.
물론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다른 나라들은 많은 소련의 위성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도 그대로 고립시키면 스스로 붕괴하리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전쟁이 임박한 것 같은 상황을 스스로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온갖 호전적인 단어를 동원해 엄포를 놓고, 도발을 감행하며 가끔 실제로 공격을 가해 오기도 한다. 불규칙하게 진행해 온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도 실패하기도 하지만 매번 위기 상황을 고조시킨다.
군사화가 계속될수록 북한 지도부의 권력은 공고해진다. 적대국들도 갈수록 북한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자꾸 신경 쓰게 된다.
북한은 겉보기보다 더 약할 수도 있다. 껍데기만 요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한은 더 큰 위험도 감수할 각오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갈등을 고조시키면서 북한은 남한에 끊임없이 책임을 전가하고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 있다.
멀리서 지켜보면 북한이 하는 행동은 정말 정신 나간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부 선전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끊임없이 지어내기 바쁘고, 전쟁이 나면 참패할 게 뻔한데도 전쟁을 불사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하지만 북한 내부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일련의 행동에는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심지어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의 이러한 비합리적인 행보는 일종의 자산이 되었다.
학자들은 이런 행동을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이라고 부른다. 이 전략을 처음 쓴 건 다름 아닌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었는데, 닉슨은 미국 정부가 과도하게 호전적이고 예측불가능하다는 이미지를 심어 적대국들이 미국과의 문제를 푸는 데 더 조심스레 임하게 하려고 했다. 로이 박사도 비슷하게 분석했다.
“북한은 일부러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적대국을 긴장하게 하고자 당장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전략이 먹히는 이유는 호전적인 태도가 보여주기에 그치는 으름장일지 몰라도 북한이 실제로 조성하는 위험 요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북한이 더욱 위험한가?
그런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면 북한 정권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이 훨씬 더 위험하다. 즉, 현재 북한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방법은 한반도에서 끊임없이 전쟁 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판단해 북한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무엇보다 우발적인 사고나 계산 착오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도 그런 위험이 없지 않다는 걸 모를 리 없지만, 이 방법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믿는 것 같다. 여기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 나토를 위시한 서방 세계가 리비아의 카다피를 축출하는 것을 목도한 북한은 진심으로 미국이 언제 어떻게 정권을 전복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듯하다. 이런 정세 판단도 합리적이라고 봐야 한다. 강대국과 적대 상태에 놓인 약한 나라는 두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외교적으로 화평한 상황을 만들거나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수준에서 유지하며 체제를 지키는 쪽이다. 사회주의 북한의 정치적 정당성을 상당 부분 훼손하지 않고서는 미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건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이는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결국, 남는 건 적정 수준의 갈등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쪽이다.
몇몇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개발한 목적이 애초에 한국에 있는 미군 기지와 항구 등 주요 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미국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미국과 담판을 짓겠다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아직 북한이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 안에는 기술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자포자기 이론’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을 빌리면, 여기서 북한의 합리성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이 이론에 따르면 벼랑 끝에 몰린 나라가 두 가지 선택지를 받았을 때 (보통은 어떻게 해서든 둘 다 택하지 않고 제삼의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그 가운데 그나마 덜 나쁜 차악수를 택한다.
질 게 뻔한 전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 북한의 차악수에 해당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패배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그때 가면 보유하고 있을 핵무기를 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상대방의 핵무기는 훨씬 강하다. 북한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다. 핵무기를 쓰면 더더욱 그렇다.
북한 지도부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계속 전쟁을 불사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건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을 제외한 우리는 모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주 낮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이 0은 아닌 위험을 안고 지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뉴욕타임스)
* 뉴욕타임스는 또 “중국이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는 제목의 뉴스 분석을 싣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중국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마당에 중국이 대북 정책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