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린폴리시, “한국, 독재 시대로 돌아가나?”
2016년 7월 19일  |  By:   |  칼럼, 한국  |  1 comment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가 “Is South Korea Regressing Into a Dictatorship?”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자유를 억압하며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을 번역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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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불법 시위를 주도한 죄’로 유죄가 선고됐다. 이는 한국에서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얼마만큼 퇴보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서울중앙지법은 한 위원장에게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를 비롯해 2012년부터 여러 크고 작은 시위에서 불법 행위를 주도했다며 징역 5년 및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을 두고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한국에서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가 줄어들었다”고 비판했다.

때론 폭력으로 번지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활발한 거리시위는 한국 사회의 오랜 특징 가운데 하나다. 권위주의 독재 정권들은 40년 넘도록 이러한 시위를 힘으로 억압하고 짓밟았다. 1990년대 초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나아지기 시작한 한국의 상황은 지난 몇 년간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여러 기준에서 퇴보했다. 지난 2013년 집권한 뒤로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 새누리당은 기자들을 고소하고 노동조합 간부와 야당 정치인을 잇달아 감옥에 넣었으며, 언론을 검열하고 정당을 해산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파 단체는 왕성히 활동하고 있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수백만 건의 트윗과 댓글을 작성해 박 후보의 당선을 돕기도 했다.

대개 박 대통령의 이런 독재적인 성향은 그의 출신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1961년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1963년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박정희 장군의 딸이다.

박정희가 집권한 18년간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며 동시에 자유는 심각하게 억압됐다.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임의적인 체포와 구금이 일상이었고, 고문, 사형이 빈번했으며 계엄령이 선포되기도 했다. 자신의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1979년 살해되고 나서야 박정희의 집권은 막을 내렸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관해서는 여전히 첨예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나이 든 기성세대는 대개 박정희를 대한민국의 부국강병을 이뤄내 그 전까지만 해도 뒤처졌던 북한을 국력에서 앞지르게 한 구세주로 추앙한다. 반대로 특히 젊은 세대에게 박정희는 독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952년에 태어난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격동의 환경에서 자랐다. 북한 공작원이 (원래는 박정희 대통령을 노리고) 쏜 총에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잃은 뒤, 박근혜는 22살의 나이에 대중 앞에 나섰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은 박근혜는 대학교수가 되고자 했던 꿈을 접어야 했다. 아버지마저 목숨을 잃은 뒤 박근혜는 20년 가까이 공적 영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99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복귀한 박근혜는 2007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패했다. 그러나 5년 뒤인 2012년에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유권자 가운데는 박근혜 대통령을 “마음씨가 곱고 차분하며, 신뢰가 가는 인물”이라고 평가한 이도 있었고, “나라를 구할 것”이라며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이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이는 선진국 가운데서도 성평등 지수에서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한국에 대단한 소식이기도 했다. 다만 보수 성향의 남성 유권자 가운데는 여성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강압적인 통치를 그리워하는 보수적인 유권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대단히 껄끄럽고 골치 아픈 이웃인 북한은 박 대통령을 향해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비방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과 남조선 괴뢰를 괴멸하겠다는 위협을 계속했고 유엔 제재를 어겨 가며 핵실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노동당에 맞서기 위해 더욱 단호히, 강하게 국정에 임하겠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북한의 위협은 대개 공허한 말뿐인 경우가 많고, 한국인들도 대개 북한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을 누차 강조하면서 나라 곳곳에 숨어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신통하게도 걸러내고 찾아냈다. 한국에서 조금만 진보적인 견해를 피력하면 북한을 맹종하는 배신자라는 뜻의 ‘종북’이라는 딱지가 붙었는데, 이러한 ‘종북몰이’는 박근혜 정권 들어 정점을 찍었다.

2014년 12월,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의 친북 행위를 문제 삼아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통합진보당은 당시 국회의원 다섯 명이 속한 소수 좌파 정당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의견 8:1이라는 압도적인 결정으로 통진당을 해산했다. 이는 1958년 이승만 정권이 진보당을 강제 해산한 뒤 처음으로 정당이 정부의 손에 해산된 사건으로 기록됐다. 통합진보당은 남북한의 화해, 협력을 위해 애썼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법무부는 통진당 핵심인사 두 명의 내란음모 혐의를 내세워 통진당이 위험한 세력임을 강조했다. 두 명 가운데 한 명인 이석기 전 의원은 법원에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은 통합진보당에 대해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종북 세력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모든 독버섯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는 역사학자들 가운데도 공산주의자들이 잠입해 있다고 생각했다. 보수 세력은 현재 역사 교과서가 박정희를 비롯한 독재자들의 고문 행적이나 친일 전력을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독재 정권에서 고문이 광범위하게 자행됐다는 사실이나 독재자들의 친일 전력과는 상관없이 박 대통령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올바른 역사적 관점과 가치”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 여기서 올바른 관점과 가치란 박 대통령 자신의 관점과 가치를 의미한 것 같다.

한국 정부는 현재 여덟 개 검인정 교과서를 단일 국정 교과서로 대체하려 한다. 교육부는 모든 학교가 국정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직 국정 교과서의 초고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이 내용이 2013년 보수 성향의 역사학자들이 쓴 교과서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교과서는 교육부의 검인정을 거쳐 현재 여덟 개 검인정 교과서 중 하나로 등록됐지만, 지나치게 편향된 시각에 입각한 기술 탓에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거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에서 자신과 정부를 향한 비판적인 논조를 지우려 애썼다. 이 과정에서 언론 자유는 후퇴했다. 2014년 한국 정부는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인 가토 타츠야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가토 지국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이 제기됐다는 기사를 썼다. (이후 법원은 가토 지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인터넷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언론인 김어준, 주진우 씨도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씨의 살인 사건 연루 의혹을 보도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2015년 1월 항소심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좌파 성향 한겨레신문의 세월호 조문 사진 연출 의혹 보도도 정부의 고소를 피하지 못했고, 한국에서 가장 큰 일간지인 조선일보도 정부 고위직 임명자들에 관해 보도했다가 정부로부터 고소당했다. 정부는 통일교가 소유하고 있는 언론 세계일보가 박 대통령 측근의 국정개입 의혹을 보도한 데 대해서도 고소를 진행하고 있다. (옮긴이: 포린폴리시의 글이 발행된 날 고소를 제기했던 정부 인사들이 소를 취하해 사건은 종결됐다)

박근혜 정부의 잇단 고소전 속에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 순위는 180개국 가운데 70위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10계단 떨어진 순위로 2002년 국경없는기자회가 언론자유 지수를 취합해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한국이 기록한 가장 낮은 순위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한국 정부는 점점 더 비판을 용인하지 않고 있으며, 이미 양극화된 언론 시장에 계속 간섭하며 언론 독립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사의 논조나 내용에 따라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기자들이 보도국, 편집국 내에서 자체 검열을 점점 강화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적극적으로 거리에 나서 저항하는 시위 문화는 분명 (매일 먹어야 하는) 김치처럼 한국인들에게 당연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지난 3년간 그런 기본적인 권리마저 빼앗아가려 했다. 지난해 11월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는 지난 10년간 있었던 반정부 집회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데 결정적인 이유로 든 그 불법 집회가 바로 이 민중총궐기였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8만 명으로 추산되는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 모였다. 정부는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최루 가스와 물대포를 쏘며 이들을 진압했다. 나중에 시위 참가자를 가려내기 위해 시위대를 향해 색소탄을 쏘기도 했다.

당시 새누리당 김영우 대변인은 시위대를 종북 세력으로 규정하고 해당 집회의 불순한 의도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복면을 쓰고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면은 IS 같은 테러리스트들이나 쓰는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반면 박 대통령은 진보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시위대를 거칠게 위협하는 맞불 시위에 나서는 보수단체 회원들의 과격함이나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는 유족들 앞에서 대놓고 피자를 먹는 이들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규모로 보면 보수 시위대가 진보 시위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한국의 좌파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아버지인 박정희의 독재 정치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계속해 왔다. 사실 그런 비판은 지나치다. 박근혜 대통령은 쿠데타로 민주 정부를 찬탈하지 않았다. 민주적인 선거로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 집권 하에서는 독재 정권에서 일상적으로 자행되던 고문이나 사형 집행도 없었다. 고문이나 사형은 없지만, 정부가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망령은 되살아난 것으로 보인다.

자유를 억압해도 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건 공산주의 북한의 위협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북한을 그렇게 큰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불평등, 일자리, 삶의 질을 개선하는 문제다. 이런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 박근혜 정부는 책임을 전가할 누군가를 찾아왔다. 정권을 비판하는 진보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은 책임을 돌리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포린폴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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