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시티, 축구, 스포츠, 자본주의, 그리고 경쟁과 평등 (1)
2016년 6월 7일  |  By:   |  경제, 스포츠  |  No Comment

* 옮긴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레스터시티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미 우리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습니다. 5,000대 1의 배당률을 뒤엎고 차지한 약팀의 우승은 말 그대로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미국 프로스포츠 리그와 달리 오히려 구단 간 전력 균형을 맞추려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는 유럽 축구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파드캐스트 프리코노믹스(freakonomics)가 레스터시티의 우승과 그 이면에 담긴 유럽과 미국 스포츠 비즈니스의 차이, 나아가 스포츠 리그를 운영하는 가치와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수십 년간 연례행사처럼 반복해온 일을 깜빡했다가 1억 원 넘는 돈을 잃은 이의 안타깝지만, 행복한 사연도 있습니다. 대담을 편집한 형식의 오디오 파드캐스트라서 기존의 뉴스페퍼민트 글과는 다른 방식으로 옮겨 보았습니다. 프리코노믹스 웹사이트에 올라온 대본을 바탕으로 내용을 옮기되 텍스트로 접하는 독자분들이 읽기에도 불편하지 않도록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맥락상 원래 대사를 그대로 소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부분은 의역했다는 점도 미리 말씀드립니다.

레스터시티 축구팀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지만 축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기에 제목을 일부러 거창하게 붙였습니다. 원문의 제목은 “The Longest Long Shot”, 번역하면 “진짜 진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 정도가 됩니다. 오디오 원본은 프리코노믹스 제작을 지원하는 뉴욕 공영라디오(WNYC) 홈페이지에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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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더브너, Stephen J. Dubner, 진행자 – ‘축덕’ 아들을 둔 아빠) – 이하 스덥

> 사실 이 동네 지명을 전에 들어보신 분 별로 없을 거예요,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모르는 분도 많았을 것 같아요.

(로저 베넷, Roger Bennett, 게스트1 – 영국 리버풀 출신. 미국에 사는 축구 전도사. 에버튼 팬) – 이하 로베

> 정말 영국 한 가운데 있는 아무 특징 없는 동네죠. 인구요? 캔자스 주 위치타 시 정도 될까요? (옮긴이: 약 34만 명 – 강원도 원주시, 경상남도 진주시, 서울시 강북구 인구와 비슷)

(스덥) > 다른 유명한 거 뭐 없냐고요? 리처드 3세가 여기에 묻혀있다는군요. 그거 말고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로베) > 한때 영국 가죽 제조업의 중심지였어요. 지금은 영국 포테이토칩 대부분을 여기서 만들고요.

그런데 지난 몇 달 사이 이 도시 이름 안 들어보신 분 거의 없을 겁니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약팀의 반란’이 일어난 바로 그곳이니까요.

레스터(Leicester). 오늘 나눌 이야기는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이 된 레스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이 이름이 생소하신 분을 위해) 레스터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 레스터시티가 잉글랜드 1부리그인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로베) > 레스터시티라는 팀이 어떤 팀이냐면요, 영화로 치면 엑스트라, 극의 대본으로 치면 ‘행인3’ 정도에 해당하는, 그러니까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런 팀이란 말이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팀이 정확히 열두 달만에 리그 순위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말 그대로 수직 상승을 해버렸습니다. 글쎄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제 눈에는 36경기 내내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옮긴이: 프리미어리그 한 시즌은 팀당 38경기를 치르는데 레스터시티는 36라운드를 마친 뒤 남은 두 경기에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잠깐, 그 전에 좀 뻔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레스터시티의 우승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있을까요?

(로베) > 간단합니다. “레스터시티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 당신도 뭐든 해낼 수 있다!”는 뜻이 되는 거죠.

(스덥) > 지난 몇 년간 사실 저는 끊임없이 축구의 모든 것에 노출되었습니다. 바로 이분 때문인데요,

(솔로몬 더브너, Solomon Dubner, 게스트2 – 자칭 미국에서 손꼽히는 축구 전문가) – 이하 솔로몬 > 안녕하세요, 솔로몬 더브너입니다.

(스덥) 저희는 그러니까…

(솔로몬) 아빠와 아들이에요. “부자가 나누는 축구 이야기(Footy for Two)”라는 파드캐스트의 공동 진행자이기도 하죠.

(스덥) 맞아요. 저희 둘이 축구 파드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죠.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축구에 관해 알게 된 거의 모든 지식은 아들한테 배운 것이에요. 솔로몬 더브너 씨는 축구에 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솔로몬) 제 입으로 이렇게 말하기 좀 그렇지만, 축구 관련 지식만 놓고 보면 제가 미국인들 가운데 5백 등에서 1천 등 사이에 들 겁니다. 미국인 전체는 좀 그렇고, 청소년들 중에서요. 저 정말 ‘축잘알’이거든요. 좀 슬픈 얘기지만 지금 제 삶에는 오직 축구밖에 없어요.

(스덥) 아들아, 이 시점에서 하나만 물어보자. 도대체 왜 아버지에게 축구를 ‘가르쳐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거니?

(솔로몬) 아버지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게 가르쳐주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에 대한 보답이랄까,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가르쳐드려야겠다 생각했죠.

지난해 봄방학 더브너 부자는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축구 경기를 경기장에서 직접 보고 오는 것이 여행의 목표였습니다. 그 가운데는 레스터시티가 북런던 원정에서 토트넘 핫스퍼에 3:4로 패한 경기도 포함됐습니다.

(솔로몬) 사실 저희는 그때 레스터시티가 “위대한 탈출(great escape)”을 시작하기 직전 게임도 ‘직관’했죠. 토트넘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레인에서 펼쳐진 4:3 난타전이었어요.

(스덥) 아, 그 일곱 골 나온 경기, 저도 기억나요. 잠깐, 그게 레스터시티였구나!

(솔로몬) 제이미 바디가 골을 넣었죠. 당연한 일이지만. 그 경기 지고 나서 시즌 마지막 아홉 게임 중에 일곱 게임인가 여덟 게임을 이겼습니다. 한 번도 안 지고요, 그 결과 승점 41점, 순위 14위로 당당히 강등을 면하고 잔류하게 되었죠.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자에 섹스 스캔들까지 터진 문제아 피어슨을 감독직에서 잘라버리고 팔색조 전술 장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를…

솔로몬이 너무 앞서가네요. 천천히, 하나하나 풀어가겠습니다. 위대한 탈출이 무언지, 강등은 뭐고 잔류는 무언지. 섹스 스캔들에 라니에리까지 전부 다요. 하지만 일단 유럽 축구리그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낯선 분들을 위해 배경지식으로 알고 넘어가야 할 것부터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레스터시티의 우승 신화는 그저 또 하나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득 불평등에 관해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이야기이자, 축구계에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을 불러온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마 전 세계 수많은 경영대학원이 레스터시티의 성공 사례를 분석하고 또 분석해 비결을 추려내고 이를 지침서로 삼아 골리앗을 떼로 상대해야 하는 다윗을 키워내려 할 겁니다.

오늘의 첫 번째 게스트 로저 베넷은 무엇보다 영국 축구가 미국의 스포츠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베넷은 마이클 데이비스와 함께 파드캐스트이자 TV쇼인 “멘인 블레이저(Men in Blazers)”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멘인 블레이저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에 베넷은 “프리미어리그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의 필수품”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넷은 영국 리버풀에서 자랐습니다.

(로베) > 우리나라의 보석과도 같은 곳이죠.

(스덥) > 아름다운 도시죠.

(로베) > 잉글랜드의 볼티모어 같은 곳이에요.

리버풀하면 먼저 떠오르는 축구팀은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린 명문 리버풀FC죠. 하지만 베넷이 응원하는 팀은 리버풀FC보다는 조금 덜 유명한 에버튼입니다. 구단의 역사만 놓고 보면 에버튼이 더 오래 됐습니다. 베넷에게 왜 에버튼을 응원하는지 묻자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이 나왔습니다.

(로베) > 그렇게 태어났어요. 아버지 때부터, 할아버지 때부터 그랬죠. 그냥 제 몸에 그 피가 흐른달까요? 저는 자식을 키우는 가장 훌륭한 방법도 응원하는 축구팀을 물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겪는 우여곡절을, 인생의 쓴맛 단맛을 어려서부터 겪게 해주니까요.

아무튼 베넷이 지적한 대로 잉글랜드 축구리그가 미국의 프로스포츠 리그와 다른 식으로 운영되는 점부터 같이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로베) > 저는 아마 미국에서 뜻밖에도 유일하게 공산주의 식으로 구조가 짜여진 게 있다면 아마 프로스포츠 리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국 스포츠에는 드래프트도, 연봉 상한제도 없어요. 리그 수입을 구단이 나누어갖고 그런 것도 전혀 없죠. 한마디로 영국 스포츠는 구단끼리 동등함을 추구하지 않아요. 프리미어리그 팀들도 기본적으로 각자 살 길을 찾죠.

미시건 대학교에서 스포츠 경영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스테판 지만스키(Stefan Szymanski) 교수도 그 점에 동의합니다. 지만스키 교수는 경제학자로 지난 25년간 구단 경영 등 프로스포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지만스키 교수의 대표적인 저서로 축구 칼럼니스트 사이먼 쿠퍼(Simon Kuper)와 함께 쓴 <사커노믹스>가 있습니다.

(스테판 지만스키, 미시건 대학교 교수) – 이하 지키

> 간단히 말해 돈으로 구단의 성공을 살 수 있다, 성공한 명문 구단은 그렇지 않은 구단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리고 그 돈으로 훌륭한 선수과 스태프를 사 모아 성공가도를 계속 달린다는 겁니다. 유럽 각 리그를 보면 이런 경향은 50여 년 전부터 공통적으로 나타나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프리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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