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펀딩] 폴 크루그먼, “트럼프, 그 무지와 몰상식의 기원을 찾아서”
2016년 6월 2일  |  By:   |  정치, 칼럼  |  3 Comments

뉴스페퍼민트는 다음 스토리펀딩에 뉴욕타임스 기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의 인기기사 목록에서 흥미로운 기사 몇 편을 골라 독자 여러분께 어떤 기사가 가장 우리말로 읽고 싶은지 여쭌 뒤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기사를 번역해 스토리펀딩에 연재합니다. 후보로 선보인 기사 가운데 몇 편은 스토리펀딩에서 뉴스페퍼민트를 후원해주신 분들에게 뉴스레터로 편집해 보내드리며, 스토리펀딩과 시차를 두고 뉴스페퍼민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첫 번째 후보 일곱 편의 글 가운데 가장 많은 독자 여러분이 골라주신 글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시립대학교 교수인 폴 크루그먼이 쓴 칼럼 “The Making of an Ignoramus”입니다. 이 글은 지난 5월 19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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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트럼프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트럼프가 정책에 무지할 거라는 가정을 하고 보더라도 정책에 관한 한 트럼프의 머릿속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깨끗할 겁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무식은 근본 없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트럼프는 공화당 내에서, 혹은 여론을 주도하는 계층 사이에서 널리 지지를 받는 터무니없는 정책을 긁어모아 이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 변조한 뒤 요란스럽게 떠들어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믿기 어렵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사실상 공화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예약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선거 구호인 “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를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 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한마디로 평가하면, 트럼프는 미국이란 나라를 망해가는 카지노 운영하듯 끌어가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즉, 괴상한 자신의 경제성장 공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미국에 돈을 빌려준 채권단과 담판을 짓겠다고 주장한 겁니다.

경제나 금융에 관해 기초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정책 결정자도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믿을 만한 채무국이라는 평판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자고 제안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평판은 알렉산더 해밀턴 시대, 즉 건국 초기부터 공을 들여 쌓아온 것입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안전 자산이 갈수록 귀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경제 정책은 세계 경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국채의 지위를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물론 트럼프는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안타깝게도 트럼프의 참모진 중에도 트럼프에게 사실이 이러이러하다고 말해줄 사람은 없어 보이고요. 하지만 그냥 트럼프가 멍청하다고 놀리기 전에, 아니 이미 비웃고 계시겠지만요, 그 전에 잠깐만 도대체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과 억지 논리가 어디서 온 건지 한 번 같이 짚어봅시다.

우선 트럼프 후보는 미국이 자칫하면 부채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아주 낮은 이자율에 미국에 돈을 빌려주는 투자자들은 미국의 부채 위기를 전혀 우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 국채를 사는 이들이 미국의 부도를 걱정하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미국이 매년 부채에 대한 이자로 갚는 돈은 GDP의 1.3%,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봐도 6%로 높지 않습니다.

이 1.3%와 6%가 무슨 뜻이냐면, 미국이 빚더미에 앉아 허우적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채무 수준은 별로 높지 않다는 것, 그리고 부채를 완전히 없애서 이자로 갚는 돈을 아낀다고 당장 정부가 쓸 수 있는 돈이 확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트럼프는 이 문제를 줄기차게 물고 늘어지는 걸까요? 우선, 소위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진지한 사람들이 벌써 지난 몇 년간 연방 정부 부채가 지나치게 높아 머지않아 큰일이 날 것처럼 말해 온 데 트럼프가 주목했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틈만 나면 “부채 위기가 임박”했다고 경고했습니다. 라이언 의장뿐 아니라 워싱턴 DC 정가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빚이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보웰스-심슨주의자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뉴스페퍼민트: 보웰스-심슨주의(BowlesSimpsonism): 2010년 국가 부채를 줄이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출범한 국가 재정 건전성 및 개혁 위원회(The National Commission on Fiscal Responsibility and Reform)의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공화당 상원의원 앨런 심슨(Alan Simpson)과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수석보좌관 출신의 어스킨 보웰스(Erskine Bowles)의 이름에서 따온 말로 국가 부채를 줄이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자는 주장을 일컫는다)

부채 위기를 부각하려 안간힘을 쓰는 이들의 저의는 분명합니다. 각종 복지 혜택과 65세 이상에 주어지는 의료보험 제도 메디케어(Medicare)를 축소하려는 겁니다. 자신을 점잖게 “재정적 강경론자(fiscal hawks)”라 부르는 이들이 실은 부자 감세에 목을 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후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고 정말 부채 위기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합니다. 답답할 따름입니다!

트럼프가 재정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미국이 파산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어쩌면 트럼프는 사업가 시절 빚을 지고 기업을 경영하다가도 위기가 오면 그 사업에서 손을 뗐던 경험에 비춰 국가 경제도 그런 식으로 운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국가 부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기류가 공화당 전체에 팽배해 있는 것도 분명 사실입니다. 앞서 부채 한도를 늘려달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을 거듭 거절한 의회 내 공화당 지도부는 국가 부도 사태를 불사하겠다며 대통령이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때 공화당 의원 상당수는 국가 부도 사태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릴 수 없게 되면 정부가 다른 데 돈을 쓰지 않고 빚을 갚는 데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그리고 (미국의 파산으로 발생할) 금융 시장 여파도 그리 크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논리를 폈죠.

트럼프 개인의 경험과 공화당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면,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가 왜 미국이 채무를 다 갚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트럼프가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할 때마다 트럼프 개인의 성향만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적잖은 경우 트럼프는 공화당 안에서 두루 지지를 받는 주장을 자기식으로 소화한 뒤 선정적으로 풀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 트럼프의 입에서 나오니 더욱 터무니없어 보일 뿐 비슷한 주장을 4년 전에 밋 롬니 후보가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알면 다들 놀라실 겁니다. 실업률이 정부 발표보다 훨씬 높다는 아니면 말고 식 주장부터 중국과 당장 무역 분쟁을 시작해 미국의 위상을 다시 드높이겠다는 선동까지 롬니 후보도 다 했습니다.

롬니가 했던 말이라고 해서 트럼프가 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트럼프는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아무것도 모릅니다. 게다가 트럼프는 자기가 지금 무얼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결국, 트럼프의 무지와 몰상식의 근원은 그를 대통령 후보로 뽑아준 공화당의 태평스러운 무지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죠. 반대쪽 당의 사정은 분명 다릅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클린턴이 내놓은 공약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클린턴 후보와 클린턴 캠프는 적어도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어느 한쪽만 반드시 옳고 더 현명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한쪽 당이 무식해도 너무 무식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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