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위한 변명
2016년 3월 31일  |  By:   |  경제, 문화  |  3 Comments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는데, 근무시간 중에 몰래 농구 경기 챙겨보는 얄미운 옆자리 동료는 커피 한잔 하고 오겠다고 나가면 함흥차사입니다. 이런 속 타는 경험 있는 분들 많으시죠. 앨리슨 램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디애나 주 피셔에 있는 회사에서 통계부서 직원으로 일하는 램 씨는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일도 열심히 합니다. 반면에 일을 제대로 하는 꼴을 본 적이 없는 옆자리 동료는 램 씨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어떻게든 일 안 하고 시간 때우러 회사에 나오는 사람 같으니까요. 동료는 핸드폰을 붙들고 온종일 사적인 통화에 문자, 게임까지 합니다. 마치 근무 시간에 일 안 하는 걸 어디에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냥 의자에 삐딱하게 등을 기댄 채 자기 핸드폰만 보고 있다니까요? 일을 안 하면 일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조차 안 하는 거죠.”

램 씨는 상사에게 이야기도 해보고 친구들에게 상의도 해봤습니다. 달라진 건 없었고, 동료가 하지 않고 미루는 일은 대개 램 씨가 나눠 맡아야 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해서 저의 업무 처리 능력을 회사에 증명했어요. 저 같은 사람이 게으름을 피우면 당장 표가 날 거예요.”

홋카이도 대학교의 하세가와 에이수케 교수는 사람만 게으름을 피우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개미 군집에서 발생하는 게으름을 연구한 하세가와 교수는 개미들을 관찰하면 언제든 무리의 절반가량은 겉보기에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게으른 개미’들은 몸을 청소하거나 하릴없이 거닐거나 그조차도 안 하고 그냥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좀 더 관찰 기간을 늘려봤어요. 그래도 여전히 20~30% 개미들은 소위 일이라 부를 만한 걸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게으른 개미가 이렇게 많으면 군집이 곧 망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네이처>에 발표된 하세가와 교수의 연구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즉 아무것도 안 하는 개미가 많은 군집이 오히려 더 번창했다는 겁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일하던 개미들이 지치거나 죽었을 때 쉬고 있던 개미들이 이들을 재빨리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일 안 하고 노는 개미들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겁니다. 결국에 많은 일손이 필요해질 때 체력을 비축해둔 개미들이 보탬이 되는 겁니다.”

하세가와 교수는 이를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장의 비효율이 예비 전력 혹은 공장의 예비 생산시설처럼 활용된다면 장기적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어떤 이들은 게으름이 몸에 뱄기 때문에 영원히 일하지 않으려 들 수도 있지만, 이를 잘 달래서 일을 하게 한다는 가정 아래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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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주 벨폰테에 사는 퇴직 교사 팻 돌란 씨는 고등학생 때 책을 제본하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게으름의 가치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페이지를 모으고 분류하는 일이 그렇게 지겹고 따분할 수가 없었어요. 뭔가 의미를 부여해서 효율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하루에 몇 쪽이나 책을 묶을 수 있을지, 한 시간에는 얼마까지 할 수 있을지를 스스로 시험해보기로 했어요. 그러면서 목표치를 늘려가다 보면 일도 더 잘할 수 있겠다 싶었죠.”

얼마 안 가 돌란 씨는 공장에서 가장 일을 빨리 처리하는 직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내 현장 감독은 돌란 씨에게 빨리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며 오히려 일을 더 느릿느릿 처리하는 선배들을 보고 배우라고 지시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났죠. 당시 저는 열다섯 살이었어요. 아니 저렇게 느려터진 사람들한테 뭘 배우라는 건지 이해를 못 했어요. 현장 감독도 괜히 심술부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곧 깨달았죠. 이 일이 빨리빨리 처리한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걸요.”

돌란 씨는 전체 생산 라인의 속도에 맞췄습니다. 한 팀으로써 일은 더 부드럽게, 실수 없이 잘 돌아갔습니다. ‘더 많이, 더 빨리’가 지상목표가 된 현대 문화에서 무조건 빠른 게 능사가 아니라는 교훈을 돌란 씨는 평생 새기고 살았습니다.

“심사숙고해야 하는 시점이 있어요. 생각을 하려면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돌아봐야 하고요.”

베스트셀러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Get Things Done)>의 저자 데이비드 알렌도 효율성과 생산성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 온 전문가입니다. 해야 할 일 목록을 정리해 적어놓은 뒤 순서대로 처리함으로써 일에 집중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제안한 알렌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제가 이런 방법을 발견해낸 이유, 아니 무엇보다 제게 이런 방법이 필요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너무 게으른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알렌은 많은 사람이 정신없이 일에 파묻혀있는 것과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어떤 이는 충분히 잠을 자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제가 딱 그래요. 어떤 때는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정말로 그래요. 그러다가 인지과학자들도 비슷한 말을 하는 걸 듣게 됐죠. 잠을 많이 자면 더 똑똑해진다는 식의 말을요.”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의 행동만 보고 그 사람의 생산성, 효율성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알렌은 말합니다. 직장에서 게으름 피우는 사람이 실제로 게을러터진 사람일 수도 있지만, 아주 복잡한 문제에 파묻혀 이를 골똘히 생각하느라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거죠. 알렌은 때로는 멀리서 넓은 시야로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게 효율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나무 하나를 껴안고 아등바등하면서 어떻게 숲을 논하겠습니까?”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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