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눈에 비친 세계 지도자들 (1)
2016년 3월 21일  |  By:   |  세계  |  No Comment

옮긴이: <아틀란틱>의 제프리 골드버그(Jeffrey Goldberg) 기자가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을 취재하며 오바마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계 지도자들에 관한 평가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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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의 국방, 외교 정책을 취재한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국제 정치와 외교 무대의 소위 단맛과 쓴맛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겪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업무적인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 나라가 그 나라의 지도자 혹은 지도층이 가장 중요한 국익을 어떻게 정의하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도자들 사이의 개인적인 친분이 아무리 두터워도 국익에 대한 냉철한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원칙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오바마가 다른 지도자들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거나 친분을 쌓지 않은 건 아니다. 여러 지도자와 개인적인 친분, 신뢰를 쌓은 오바마는 특히 집권 2기에 들어서는 새로 한 나라의 지도자가 돼 국제무대에 등장한 이들의 멘토가 되기도 했다.

수년간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 미국의 외교 정책 결정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결과, 참모들이 분석한 오바마 대통령의 각 지도자를 향한 평가를 정리할 수 있었다. 나와 진행한 인터뷰 중에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생각을 드러낸 적도 있다. 할 수 있는 한 오바마가 되어 내재적 관점으로 작성한 평가서는 호감에서 비호감 순으로 지도자를 열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 지도자는 군 통수권이 없는 가톨릭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지난해 9월 교황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몸소 앤드루스 기지(Joint Base Andrews)까지 나가 교황을 맞았다. 어떤 지도자에게도 이렇게 한 적이 없었기에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 걸까? 무엇보다도 다원주의 가치를 깊이 신봉하는 듯한 교황의 언행일 것 같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무슬림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가치관이기도 하다. 또한, 진보적인 무슬림 지도자들이 같은 종교 안에서도 근본적인 사상으로 무장해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제들에게 아쉬워하는 점이기도 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미국의 동맹국 지도자들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과 가장 친분이 두터운 사람은 메르켈 총리일 것이다. 메르켈은 업무적으로 빈틈이 없고 과학자 출신의 냉철한 판단력을 지녔으며 불필요한 감정을 자제하고 조절하는 법까지 몸에 익힌 지도자다. 메르켈 총리는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칭송해 마지않는 정치적 용기(political courage)를 지닌 인물이다. 중동 출신 난민을 포용하는 정책은 사실 총리직을 걸고 추진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그런 상황에 부닥쳤더라도 메르켈 총리가 했듯이 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수시로 감청해 왔다는 전 세계 지도자들 가운데 메르켈 총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둘 사이가 서먹해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후 관계는 꾸준히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말콤 턴불 호주 총리

오바마 대통령은 신임 호주 총리에게 분명 좋은 인상을 받았다. 다만 원래 미국 대통령들이 전통적으로 호주 총리에 대한 감정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사실 동맹국과 관계 때문에 늘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잖아요. 그런데 호주는 달라요. 호주는 언제나 믿고 같이 갈 수 있어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오바마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외교 무대에서 효율성을 추구해왔다. 모든 일에 미국이 직접 나서려 하기보다는 예산을 신경 써 가며 검소함을 하나의 원칙으로 삼았다. 동맹국에 약속을 하는 데도 신중을 기했다. 그런 오바마 대통령의 눈에 아마 캐머런 총리도 비슷한 원칙으로 움직이는 지도자로 보일 것이다.

사실 지난해 두 나라 정부는 약간의 신경전을 벌였는데, 캐머런 총리가 GDP의 2%를 국방예산으로 쓰겠다는 예산안을 확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때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영국이 나토(NATO)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방위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 이후 벌어질 일련의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캐머런 총리를 압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캐머런 총리의 영국과 사르코지 대통령의 프랑스가 리비아 내전 이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오바마 보좌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바마 대통령은 캐머런 총리를 이래저래 보살펴줘야 하는 동생처럼 여기고 있다. 영국 정부 관료 한 명은 이런 표현을 했다. “총리도, 대통령도 사실 상황이 그렇게 어렵지 않잖아요. 서로에게 좋은 거죠.”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이건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추측이긴 한데, 오바마 대통령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라란 아마도 스칸디나비아 수준의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과 싱가포르 같은 근면한 기풍을 고루 갖춘 사회가 아닐까 싶다.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인 고 리콴유의 손자인 리셴룽 총리는 오바마의 기준에서는 스칸디나비아 국가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편에 속한다. 쓸데없는 예산 낭비도, 극적인 대립도, 그로 인한 혼란이나 감정 소모도 없다.

저스틴 트루도 캐나다 총리

미국 국무부의 한 관리는 내게 최근 취임한 캐나다의 새 총리 트루도를 가리켜 “작은 오바마”라고 묘사했다. 우파에 가까운 성향의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스티븐 하퍼 전 총리와는 분명 다른 트루도 총리는 백악관 국빈 만찬에까지 초대받았다. 백악관은 분명 전임 총리보다 공통점이 많아 보이는 신임 캐나다 총리를 반기는 분위기다. 그를 친한 동생처럼 여긴다고 말한 오바마 대통령도 기꺼이 트루도 총리의 정치적 멘토를 자처할 생각이 있어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나이가 많을수록 대접받는 아시아 문화는 미국에서는 무척 어색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가운데 하나다. 백악관 관계자는 내게 (그런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교감하기 쉽지 않은 아시아 지도자들과도 꽤 잘 지내는 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 사이를 보면 특별히 따뜻한 사이 같지는 않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개인적인 친분을 돈독히 하려는 생각으로 일본에서도 특히 유명한 초밥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철저히 국방, 무역 등 업무에 관한 이야기만 반복하며 어떠한 사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는 게 현장에 있던 소식통의 전언이었다. 이런 오바마의 딱딱한 태도에 오바마의 마음을 사려던 아베 총리는 상당히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왕세자

알 나얀 왕세자는 오바마 대통령을 신뢰할 수 없는 인물로 여긴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랍의 봄 당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을 버리는 것을 본 아랍 국가의 지도자들 사이에는 오바마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 퍼져 있다. 하지만 알 나얀 왕세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적 능력만큼은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시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바마는 알 나얀 왕세자를 아랍 국가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실질적이고 인상적이며 전략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심지어 진보적인 인사로 여기고 있다. (진보의 기준을 좀 낮추긴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는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는 의미 없는 협의체로 여겼던 걸프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이 회의를 이끌어갈 능력이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갈수록 절감해 왔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

케냐타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관계는 다소 복잡하다.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 <내 아버지의 꿈>을 보면 오바마의 아버지 루오와 케냐타 현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케냐 독립운동을 이끈 조모 케냐타 전 대통령 사이의 불편했던 관계가 서술돼 있다. 키쿠유 부족 출신인 케냐타 전 대통령은 조직 내부의 부패를 계속해서 문제 삼은 오바마의 아버지 루오를 축출했다. 오바마는 이때 버림받은 것이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숨진 것과 관련이 있다고 에둘러 썼다.

여기에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과 케냐의 인권 문제도 오바마에게 불편한 문제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케냐타 대통령이 배타적인 부족주의와 부패를 척결할 의지를 갖춘 지도자로 보고 있다. 퇴임 후 어느 정도 시간은 아프리카의 정치 발전을 위해 일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은 케냐타 대통령에게 조금 더 개인적인 애착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틀란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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