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ON] 태초에 화학정원이 있었다 (2/4)
2016년 1월 27일  |  By:   |  과학  |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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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처음 발생한 생명체가 어떤 모습일지에 관해서는 어떠한 증거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유전자와 생화학적 특징에는 이 생명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953년 발견된 DNA 구조와 뒤이은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과학자들은 이 생명의 역사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증거는 생명체가 35억 년 전 원시 지구에서 태어나 번식했던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그 생명체에 의해 생명의 나무는 싹이 튼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DNA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생명체가 태어나는 데 필요한 에너지에 관한 연구는 등한시했습니다. 1960년대에 과학자들은 생명의 탄생에 대한 그럴듯한 가설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생명이 DNA의 화학적 친족이며 유전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RNA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RNA 가설은 1978년 RNA가 다른 단백질이나 분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화학 반응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더 신빙성을 얻었습니다. RNA 분자는 실제로 자신을 복제하는 화학적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RNA는 오늘날 세포의 막을 형성하는 지질(lipids)의 거품 속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지질 거품은 자연적으로 성장하고 분리될 수 있으므로 뛰어난 RNA 복제자들은 자신을 복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RNA는 단백질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고, 그 결과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는 대사 과정을 일으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 유전 정보의 저장 기능이 DNA로 옮겨오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생명체에서 우리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DNA처럼 확실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더 일반적인 현상으로, 바로 세포가 전기 에너지를 띤 분자들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는 방식입니다. 1961년 생화학자 피터 미첼이 발견한 이 현상에는 ‘화학적 삼투작용(chemiosmosis)’이라는 긴 이름이 붙었습니다. 화학적 삼투작용은 DNA처럼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 현상이 가진 까다로움은 그만큼 이 현상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러셀은 에너지가 DNA나 RNA 같은 복제자에 앞서 존재했어야 하며, 따라서 화학적 삼투작용이야말로 최초의 생명체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알려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화학적 삼투작용은 우리 세포 내의 미토콘드리아라 불리는 수천 개의 미세한 구조 속에서 일어납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의 도움을 받아 음식에서 화학적 에너지를 추출해 ATP라 불리는 분자로 바꿉니다. ATP 역시 DNA만큼이나 생명의 분자라고 할 만합니다. ATP는 우리가 성장과 이동, 생각을 위해 지불하는 화폐와 같습니다. 1초마다 우리 몸에 있는 40조 개의 세포들은 1천만 개의 ATP 분자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이 특별한 분자와 함께 생활하는 셈입니다.

미토콘드리아 막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의 흐름은 마치 루브 골드버그 장치처럼 너무나 정교해서 이를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수천 개의 원자로 이루어진 수십 종류의 단백질이 마치 화재 현장에서 일렬로 서 물통을 전달하는 사람들처럼 늘어서서 음식에서 추출된 고에너지 전자를 전달합니다. 단백질 사이를 통과하는 전자의 흐름은 전류를 만들어내며 이 전류가 미토콘드리아의 내막과 외막 사이에 다수의 양성자(=수소이온 H+, proton)를 묶어둡니다. 이 수소이온들은 오직 ATP 중합체라 불리는 단백질을 통해서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분자로 이루어진 회전자, 고정자, 기어 등이 1초에 수백 번 풍차처럼 돌아가며 ATP를 만들어내는 이 광경은 기술의 기적이라 불릴 만합니다.

복제자 중심의 생명의 근원 이론들은 아직 이 화학적 삼투작용의 정교한 과정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러셀은 수소이온의 밀도 차이가 존재할 때 이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는 분자가 자연스레 발생할 수 있는 배경으로 자신의 화학정원 이론을 주장합니다. 원시 지구의 바다는 산성을 띠었을 것이고 이는 수소이온의 비율이 높았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바닷속 열수 지역에서 솟아나는 화학물질 용액은 알칼리성으로 수소이온의 비율이 낮았을 것입니다. 이 차이는 자연스럽게 열수 지역에서 만들어진 암석 사이로 수소이온의 흐름을 만들었을 것이며 수소이온은 화학물질들로 만들어진 미로 사이를 통과해야 했을 것입니다.

러셀은 수소이온의 밀도 차이에 의한 에너지가 전자의 전달과 수소이온 흐름 사이의 작용을 가능하게 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어떤 세포들은 ATP 중합체의 초기 버전을 만들어 에너지를 저장했을 것입니다. 유전자 데이터도 이 가설을 지지합니다. 모든 지구 생명체의 ATP 중합체는 유사하지만, 수소이온을 가두는 단백질 체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곧 최초의 생명체가 수소이온의 밀도차를 스스로 만들기보다는 그 밀도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태어났음을 의미합니다. 러셀의 화학정원이 어쩌면 그런 수소이온의 밀도 차이를 만드는 배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체들은 스스로 수소이온의 흐름을 만드는 단백질을 진화시켰고, 이를 통해 생명의 근원이 탄생한 장소를 알려주는 증거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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