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ON] 태초에 화학정원이 있었다 (1/4)
마이크 러셀이 처음 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1983년 따스한 봄날 저녁, 그의 11살 난 아들이 새 장난감을 부수던 순간입니다. 문제의 장난감은 ‘화학정원(chemical garden)’이라는 것으로, 작은 플라스틱 통 속에 있는 결정들이 석순처럼 자라나는 모습을 관찰하는 도구였습니다. 그 석순들은 바깥에서는 단단한 고체처럼 보였지만 바닥에 떨어진 순간 이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그 석순들은 사실 미세한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텅 빈 관들의 덩어리였습니다.
당시 지질학자인 러셀은 그가 최근 발견한 보기 드문 암석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암석 역시 겉으로는 단단한 고체였지만 속은 빈 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내부의 얇은 벽들은 미시적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암석 역시 아들의 장난감처럼 특별한 종류의 액체 속에서 만들어졌으리라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러셀은 완전히 새로운 지질학적 현상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는 바닷속 열수지역에서 지구 내부로부터 나오는 미네랄로 가득 찬 물이 차가운 물과 만나면서 화학정원을 이루고 텅 빈 암석을 자라게 만드는 현상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매우 대담한 가설이었지만 그는 더욱 과감한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생명이 그 암석들에서 출발했으리라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수년 뒤, 사람들은 이 생각이 무척 놀라운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내게는 이 생각이 그렇게 놀랍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내가 지질학자로서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영역으로 옮긴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생명의 시작을 연구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사실이 명백하게 보였을 뿐입니다.”
러셀은 자신의 이 화학정원 가설이 생명의 근원에 대한 오랜 질문 가운데 하나에 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에너지 문제’입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들은 무기물로 가득 차 있고 열, 태양, 번개 등으로 복잡한 분자가 만들어지는 ‘따뜻한 작은 연못’이라는 아이디어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찰스 다윈이 제시했던 가설이죠. 지난 수십 년 동안 생명의 기원에 관한 많은 연구는 어떻게 자기 복제가 가능한 화학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만 집중해왔습니다. 이들은 그러나 다른 중요한 질문, 즉 어떻게 그 최초의 생명이 성장과 복제, 그리고 진화가 가능한 에너지를 얻었는지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러셀에게는 생명의 기원과 그 생명이 태어나기 위한 에너지의 근원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하나의 문제였습니다. 지질학자인 그는 이 문제를 생물학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러셀은 풍부한 에너지와 다양한 물질들이 제공되는 바닷속 화학정원이야말로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화학 반응과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임을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생명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화학반응이 발생해야만 한다는 사실로 고민해왔습니다. 그러나 에너지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러셀은 자신이 그 고민에 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생물학적 복잡성의 발생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니라 필연적인 일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러셀의 에너지 중심 관점은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 일어난 지질학, 유전체학, 분자생물학 분야에서의 발견은 그의 가설에 새로이 신빙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생명의 정의에 대한 새로운 견해와 또 이 우주에서 생명체가 가진 특권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대한 도전이 있습니다. 러셀은 생명체의 탄생이 은하의 탄생이나 행성의 탄생, 그리고 토네이도의 발생과 똑같은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생명을 우연적인 발생이 아니라 거대한 물리적 맥락의 한 부분, 즉 ‘그저 우주의 팽창 속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에너지 흐름의 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A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