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좌파, 중도우파의 입지가 줄어드는 유럽
2015년 12월 24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2015년 유럽 정치를 정리하자면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의 위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 일요일 스페인 총선에서 무려 20%의 득표율을 기록한 급진 좌파 정당 뽀데모스(Podemos)는 앞서 스코틀랜드에서 영국 노동당에 참패를 안긴 스코틀랜드 민족당(SNP), 집권 연정에 참여하기로 한 포르투갈의 극좌파 정당에 이어 또 한 차례 지각 변동을 알렸습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혹은 사민주의 정당은 민족주의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우파 정당에도 일부 표를 잠식당했습니다. 영국의 영국독립당(Ukip), 프랑스의 국민 전선(FN)의 약진에 이어 10월 폴란드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의 우경화와 함께 사민주의 중도좌파 정당이 참패를 당했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좌파 정체성을 택한 영국 노동당의 새 당수 제레미 코빈은 이런 흐름에서 분명 예외로 보입니다. 대신 노동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중도 정치인 가운데는 코빈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으며 당을 떠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흐름이라도 몇 차례 엄청난 사건을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올해 두 차례 당선되는 기염을 토한 급진 좌파 정당 시리자와 유럽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정책을 국민투표 61%로 단호히 거부한 그리스 국민들이 그런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고 할 만합니다. 총선 이전에 이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발렌시아 등 주요 도시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스페인 급진좌파 연합도 그 자체로 사건이었습니다.

도대체 지금 유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각 나라마다 조금씩 특징이 다르긴 하지만, 몇 가지 분명한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1950년 이후 계급투표 성향은 계속 약해졌습니다. 예상치 못한 선거 결과의 충격에 가려 종종 간과되지만, 사회민주주의는 탈산업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 한참 전에 이미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당의 계급적 지지기반이 약해진 겁니다. 오늘날 새로운 인구구조는 계급 정당과는 더욱 맞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자(블루칼라)는 제조업으로 먹고 사는 독일 같은 나라에서도 많지 않습니다. 대신 봉급 생활자(화이트칼라)가 많아졌고, 젊은 세대는 이러한 이분법이 또한 전혀 들어맞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개인화됐습니다. 결국 문제는 다음 한 가지 질문에 축약돼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 정당이 누구를 대표해야 하는가?”

갈수록 다양해지는 집단의 정치적 성향을 일괄적으로 평가하는 게 쉽지 않지만, 일단 봉급 생활자들은 전반적으로 진보적입니다. 나머지 나이 든, 백인 서민 노동자층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관계가 지속적으로 무시됐다고 판단하면 보수적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무엇보다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정치 과정, 절차, 정치 문화는 백 년이 넘도록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정체성에 기반을 둔 정치가 주목을 받은 1970년 이래 사회민주주의는 새로 등장하는 집단, 새로운 흐름을 잘 수용해 왔습니다. 필요한 경우 효과적으로 외연을 확장한 것이죠. 하지만 급진적인 민족주의는 끝내 끌어안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전통적인 텃밭이던 스코틀랜드, 까딸루냐, 바스크에서 참패로 이어진 겁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사회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수용하거나 나아가 신자유주의로 전향해버린 점일 겁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성장을 추동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무리한 긴축 정책을 요구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약화시켰으며 부실 은행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 복지국가의 재정을 파탄낸 주범으로 손가락질 받는 것도 신자유주의입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의 폐해로부터 자유로운, 중도 사회주의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니,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하지만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 가운데 아직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는 평당원, 당직자들도 깊이 고민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해야 할 문제입니다. 특히 제레미 코빈은 틀렸다며 노동당을 떠나려는 이들, 코빈을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된 친 블레어 성향의 언론들은 떠날 때 떠나고 비판할 땐 비판하더라도 대안으로서 청사진은 갖고 있어야 할 테니까요.

올 한해 지각변동이 일어난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의 급진 좌파 정당의 행보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1월 그리스 총선에서 시리자가 승리할 수 있었던 건 국가주의 가치, 중도 성향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덕분이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과거 사민주의 정당 출신 사람들이 대거 시리자에 합류했습니다. 이들은 시리자가 급진적으로 치닫지 않도록 균형추 역할을 했으며, 지난 7월 국민투표 이후에는 주도권을 잃은 치프라스 총리를 대신해 국정 운영 전면에 나섰습니다. 이미 치프라스 총리도 이미 많은 걸 양보하고 타협했기 때문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우파 민족주의 정당 당수를 국방부장관에 임명해 나토 문제를 한발 피해가고, 군대를 사열할 때는 군복을 입는 등 급진좌파 지도자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치프라스 총리는 태연하게도 잘 해냈습니다.

시리자는 가끔 서툰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자본주의 국가 그리스를 잘 이끌어 왔습니다. 특히 군, 정보기관, 나라 밖에 있는 외교관들을 잘 통제하며 정치화된, 보수적인 관료 조직을 효과적으로 장악했습니다. 지난 5월 바르셀로나 시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뽀데모스와 엔 꼬뮈(En Comú) 연합은 좀 더 급진적이었습니다. 주거문제 활동가에게 직접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일을 맡겨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서비스를 단속하기도 했습니다. 포르투갈은 선거 이후 아직 연정에 참여하는 정당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지만, 급진좌파 정당들이 표를 얻을 수 있던 건 국가부채를 갚아나가겠다는 의향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실정치와 유로화 때문에 각국에 통화 주권이 없는 상황 등이 복잡하게 얽혀, 역설적으로 급진좌파 정당이 새로운 시대의 사민주의 정당이 나아가야 할 해법으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이 처음 생겨나고 그 용어가 등장했을 때 의미를 고려해보면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집니다. 1890년대 한 노동자 정당은 이 단어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모욕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회민주주의(sozialdemokrat)를 주창했습니다.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키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지상과제를 접고 자본주의 체제를 사회적으로 좀 더 정의로운 방식으로 운용하며 개혁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뽀데모스, 시리자, 제레미 코빈의 지향점이 무엇이든, 현재 급진좌파 정당은 1890년대 등장한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닮아있습니다. 생산 수단의 국유화와 계획 경제를 통한 혁명이라는 지상 과제는 희미해졌지만요. 하지만 지금의 현상도 과도기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선진국에서 중도 정치세력은 좌우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받고 있습니다. 좌우 각각 25%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가 많습니다.

유럽의 사민주의의 미래는 결국 영국 노동당 물밑에서 점점 부상하는 흐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바로 기존의 보수적인 신자유주의를 폐기하고 더욱 진보적인 색채를 띠는 겁니다. 중도좌파들은 내년에 아마 사방에서 끊임없이 이런 이야기를 들을 겁니다.

“이미 대세는 우리 쪽에 있어. 자네들은 우리를 이길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우리와 함께하는 게 좋을 거야.”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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