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크레딧은 빈곤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제공하지 못했다”
1994년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베니타 치칼루마 씨의 앞에는 극빈층으로 전락할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프리카 남부의 빈국 말라위에 사는 치칼루마 씨는 말라위의 여성 대부분이 그렇듯 스스로 가정 경제를 꾸려나갈 경험도, 능력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고작 25달러에 불과한 소액 대출금으로 치칼루마 씨는 장작을 팔고, 빈 플라스틱 병을 파는 사업을 시작해 돈을 벌었고, 이제는 수돗물이 나오고 전기가 들어오는 어엿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비영리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 무담보 소액 대출) 기관 핀카(FINCA)의 최근 뉴스레터에 소개된 사례입니다. 핀카는 개발도상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주로 여성에게 소액의 돈을 빌려주고 이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있습니다. 뉴스레터에 딸려 온 브로셔에는 힐러리 클린턴, 배우 나탈리 포트만, 가수 보노 등 유명 인사가 핀카의 접근법을 칭찬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핀카는 자신들의 마이크로크레딧은 빈곤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제공하는 “임시 처방이 아니라, 그 효과가 입증된 해결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뉴욕대학교의 유명한 경제학자 조나단 모두치의 “전 세계적인 빈곤에 맞서싸우는 가장 유망한, 비용을 아낄 수 있는 해결책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뉴스레터는 모두치 교수가 해당 발언을 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 전인 2005년이라는 사실, 지난 10년 사이 마이크로크레딧이 빈곤 퇴치에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 연구들이 잇따라 나왔다는 사실은 쏙 빼놓았습니다. 최근 무작위로 통제된 여섯 가지 사례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보면, 마이크로크레딧 제도는 돈을 빌려간 사람의 소득이나 재산을 높이는 데 별 효과가 없거나 아예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모두치 교수도 자신이 예전에 진행한 연구와 그를 바탕으로 내놓은 주장들이 마이크로크레딧의 효과를 부풀려 해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핀카는 다음 번 뉴스레터부터 모두치 교수의 발언을 싣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자선 프로그램의 효과와 영향력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몇 가지 일화를 제외하면 빈곤 퇴치 효과가 데이터로 제대로 뒷받침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크레딧은 이미 그 시장 규모가 6백억 달러에 이르고 대출을 받은 사람도 전 세계적으로 2억 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치칼루마 씨의 이야기는 분명 울림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제대로 운용되는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개선책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면 각각의 일화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마이크로크레딧의 골자는 매우 간명합니다. 빈곤을 탈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장작이든 음식이든 옷가지든 물건을 파는 형태의 기업 활동(entrepreneurship)으로 이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대부분 마찬가지인데, 가난한 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아주 적은 돈도 쉽게 구하지 못한다는 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수백 달러나 그보다도 더 적은 돈을 변통해주기만 하면 사람들이 그 돈을 각자 알아서 효과적으로 쓰고 그 돈을 바탕으로 돈을 벌어 빚을 갚는다는 것이 기본 논리입니다. 그냥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엄연한 대출 형태로 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갚은 돈은 또 다시 다른 필요한 이들에게 대출됩니다. 결국 돈이 돌고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겁니다.
마이크로크레딧의 성공 이야기에서 그라민 뱅크(Grameen Bank)와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총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지역 개발은행인 그라민 뱅크을 설립하고 마이크로크레딧을 통해 수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경제학자이자 사회적 기업가인 유누스는 2006년 가난한 계층의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마이크로크레딧은 삽시간에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마이크로크레딧은 유누스 총재가 주창한 “빈곤 없는 세상”으로 가는 마법의 열쇠로 추앙받았습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그라민 뱅크나 마이크로크레딧 제도가 실제로 가난을 해소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는 근거는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대출받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지도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막무가내로 대출을 해 오히려 이들을 빚더미의 굴레로 밀어넣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소액 대출 상환금을 갚는 일이 서민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자살의 원인이 되기까지 한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진실은 두 가지 극단의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채무인들이 대출 자체로 손해를 보거나 상처를 받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무담보 소액 대출이 선전하는 것처럼 채무인들이 대출을 통해 성공하는 경우도 매우 드뭅니다. 여섯 가지 무작위 시험 사례를 종합해 소개한 논문에서 아피짓 바네르지와 딘 칼란, 조나단 진만은 결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여섯 개 사례 가운데 채무인의 가계 소득이나 소비 규모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오른 경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네 가지 시험에서 가계의 식품 소비는 대출 전후 변화가 없었고, 한 번은 소비가 조금 늘어났으며, 마지막 한 번은 소비가 크게 줄었습니다.
부수적인 이득을 언급한 연구도 있습니다. 즉, 채무인들의 소득 가운데 기업 활동을 통해 직접 버는 돈의 비중이 커졌다는 것으로, 이는 정부 보조금이나 다른 데 고용되어 받는 돈이 상대적으로 작아졌고, 대출을 받아 시작한 기업이 성공 궤도에 올랐다고 해석해도 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일련의 연구 어디에서도 어린이들의 진학률이 높아졌다거나, 보수적인 시골 공동체에서 여성의 권익이 신장됐다는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두 가지 가치는 여러 단체들이 앞다퉈 마이크로크레딧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긍저적인 사회 변화의 사례로 언급하는 것이지만, 이전의 연구에서 지적했듯 실제로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는 근거는 여전히 부족한 셈입니다.
논문의 공저자인 MIT의 경제학자 에스더 듀플로는 (마이크로크레딧의) 효과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보아서는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마이크로크레딧이 가난한 이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마이크로크레딧이 쓸모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마이크로크레딧의 효과가 부정적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고요.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이크로크레딧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만한 대단한 것은 아닐 확률이 무척 높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마이크로크레딧은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걸까요? 연구진이 추측한 원인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이미 마이크로크레딧 열풍이 불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대출을 받았고, 포화 상태에서 뒤늦게 뛰어든 업체들이 굳이 마이크로크레딧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무리하게 대출을 하다 보니 부작용이 나타나고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겁니다. 마이크로크레딧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1980년대, 1990년대에 무작위 시험을 했다면 마이크로크레딧의 효과가 입증되었겠지만, 지금은 이미 예전같은 효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이를 두고 마이크로크레딧 제도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옳지 않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둘째로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기업 활동을 시작하는 데 돈을 쓰는 대신 그저 기본적인 생필품을 사거나 집을 고치는 데 돈을 써버린다는 겁니다. 이렇게 생산이 아닌 소비를 목적으로 대출금을 쓰고 나면 소액 대출금이 재화를 창출하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마이크로크레딧의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채무인도 단기적으로는 필요한 곳에 돈을 쓸 수 있어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인생을 뒤바꿀 만한 ‘신의 한 수’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소액 저축을 유도하거나,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대출 제도가 채무인의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즉, 많은 마이크로크레딧이 돈을 빌려주자마자 바로 이자를 받습니다. 거의 선이자에 가까운 수준도 있습니다. 이는 안정적인 소득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이크로크레딧을 일선에서 수행하는 사회적 기업가 중에는 학계의 이러한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핀카를 총괄하는 루퍼트 스코필드가 대표적인데, 그는 무작위 통제 실험은 신약의 효과를 측정할 때나 필요한 것이지 사회적 개발 원조의 효과를 측정하는 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마이크로크레딧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연구를 볼 때마다 스코필드는 학자들이 눈 앞에서 생생히 확인할 수 있는 효과를 애써 무시한 채 의미 없는 데이터만 쳐다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좀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그런 데이터나 보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다는 건 마이크로크레딧을 찾는 고객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증명된 것 아닌가요? 무얼 더 입증해야 하는 거죠?”
핀카는 학계의 방법론과 완전히 다른 자신들만의 성공 측정 지표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미 현장의 경험과 소리로부터 귀를 닫은 학자들이 내놓는 연구 결과는 전부 다 엉터리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그들의 권위를 도무지 신뢰할 수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예일대학교의 칼란 교수는 스코필드가 학자들을 그렇게 적대시할 것까지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연구를 하는 이유가 어느 부분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지를 밝히는 것도 있지만, 개선책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므로, 연구 결과에 귀를 기울여서 손해볼 것이 없다는 겁니다. 젊었을 때 엘살바도르에서 핀카 업무를 직접 해본 경험이 있는 칼란은 자신의 연구가 실제 제도의 시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매우 궁금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엘살바도르에서 제가 가장 놀랐던 건 마이크로크레딧이라는 일을 하는데 그 누구도 정책적인 목표나 소위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어요.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 채, 또 그런 게 궁금할 때 참고할 만한 아무런 근거자료도 없이 그저 다 기계적으로 일을 했으니까요.”
칼란은 이어 <빈곤 퇴치를 위한 혁신(Innovations for Poverty Action)>이란 비영리단체를 설립했습니다. 각종 빈곤 퇴치 프로그램의 효과와 성패를 학계와 협력해 정확히 측정하는 일을 하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현재 마이크로크레딧 대출 기관인 키바(Kiva) 등과 제휴를 맺고, 소액 대출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입니다. 이는 당연히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맞지는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죠. 기존에 맞다고 여겼던 모든 것이 재고 대상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최적의 방법이 있다는 걸 연구와 실제 사례에의 적용을 통해 입증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있고요.” (FiveThirtyE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