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셋째주] 100단어로 보는 금주의 기사 – 9월 14일
월세 통제(Rent control) 제도, 제대로 작동하는가?
런던, 시애틀, 뉴욕 등 주요 대도시에서 집값과 함께 치솟는 월세는 서민과 중산층을 막론하고 세입자들에게 큰 부담입니다. <이코노미스트>가 월세로 받을 수 있는 액수에 상한선을 두거나 인상폭을 제한하는 월세 관련 규제 정책의 명암을 조명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규제에 찬성하는 쪽은 월세 통제 제도가 서민들이 하루 아침에 도심 바깥으로 쫓겨나는 일을 막아주는 안전 장치라고 말합니다. 시민의 90% 이상이 아파트에 세들어 사는 독일 베를린에서는 비슷한 유형의 아파트 월세가 다른 집보다 20% 이상 비싸면 불법입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시장에 새로운 매물이 나오지 않아 기존 집값이 오히려 더 오를 수 있다며 규제 정책에 반대합니다. 월세 규제보다 중요한 것은 주택 공급을 늘려 집값을 안정화시키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대학 캠퍼스가 무분별하게 개발되고 기업 로고를 단 건물이 대학을 장악하는 현상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이 마치 디즈니월드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9일 <뉴욕타임즈>는 이윤 추구라는 가치에 함몰된 대학 캠퍼스를 돌아보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미 교내 깊숙이 침투한 기업들의 분점들보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학교 경영 방식마저 점차 기업화 되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행정 전문가들이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교수보다도 더 많은 행정 전문가를 두는 불균형은 정상적이지 못합니다. 캠퍼스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철저히 규격화되고, 캠퍼스 내의 자유는 행정 직원들의 감시 하에 놓입니다. 대학은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펼치는 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벨 에포크라 불리던 시절의 파리, 예술과 문화의 집결지나 다름없던 시절의 파리에 대한 향수를 잘 담아낸 영화입니다.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뉴욕의 경우 그러한 향수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2차대전 이후 뉴욕은 미국의 예술과 문화가 자라나는 요람이나 다름없는 장소였으니까요. 특히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는, 불안한 치안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잘 알려진 예술계의 인사들, 수잔 손탁이나 존 레논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맨하탄의 집세는 지금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들이 그리니치 빌리지에 모여 살며 폭넓게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글쓴이는 더럽고 위험에 가득찬 도시에서 눈부시게 타올랐던 지적 불꽃을 추억하며 글을 맺습니다. 테크 산업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시대, ‘좋았던 옛 시절’을 얘기하는 일은 다소 드물어졌지만 한때 빛났던 순간을 되새겨보는 작업이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