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아나’ 블로그, 제재해야 할까요?
2015년 7월 17일  |  By:   |  문화, 세계  |  2 Comments

2001년 뉴욕포스트는 인터넷 상에서 거식증을 찬양하는 10대들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찾아내 세상에 알렸습니다. 슈퍼모델을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 모임에 가담하기 위해 신기술을 활용하는 소녀들이라니, 21세기 호러스토리에 딱 어울리는 내용이었죠. 이후, 이른바 “프로아나(pro-ana, pro-anorexia) 블로그”들은 각종 매체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전미식이장애협회는 이들 블로그가 “자살하려는 사람 손에 총을 쥐어주는 것처럼 위험하다”고 선언합니다. 테크 기업들은 프로아나 블로그들을 검열하고 폐쇄하기에 이르렀죠. 올 봄, 마침내 프랑스에서는 “지나치게 마른 몸매를 선동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이 통과되면서 프로아나 블로거들을 감옥에 넣을 길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프로아나 블로그들은 인터넷의 음지에서 꿋꿋이 살아남았고, 최근 이 분야 전문가들의 입장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프로아나 블로그를 덮어놓고 금지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죠.
2001년, 프로아나 블로그를 둘러싼 내러티브는 “제정신이 아닌 웹지기가 나약한 소녀들을 낚아서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올 봄 발표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프로아나 웹사이트의 운영자는 대부분 식이장애를 겪고 있는 젊은 여성 또는 남성이었습니다. 프로아나 트위터 계정들을 조사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사용자의 중위 연령은 고작 17세였습니다. 거식증을 앓고 있는 10대 소녀를 감옥에 보내는 것으로 청소년 식이장애 문제를 해결하자는 프랑스의 대책이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아나 웹사이트를 프로파간다 기관으로 보기보다 정신질환의 표출로 봐야 합니다. 프로아나 블로그를 하나의 안식처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식이장애 환자들이 많으니까요. 이런 블로그 활동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정신질환을 처벌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프로아나 블로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직후, 사람들은 건강한 소녀들이 이 블로그를 보고 거식증에 빠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인터넷에서 거식증에 대한 정보를 읽는다고 해서 거식증에 걸린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검열과 처벌 같은 해결책이 식이장애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증거도 마찬가지로 없고요. 텀블러에서 프로아나 관련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괜찮니?”라는 영혼없는 질문과 함께 식이장애협회의 계정을 추천하는 팝업이 뜨지만, 이는 테크 기업의 생색내기일 뿐입니다. 19세기 한 의사는 여성이 소설을 읽으면 히스테리에 걸린다고 주장하면서, 남성들에게 부인의 소설책을 빼앗고 대신 <양봉의 기술> 따위의 실용 서적을 권하라고 조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해결책에는 반발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소설책 대신 <양봉의 기술>을 읽은 부인들은 화가 난데다, 벌들을 다루는 방법까지 손에 쥐게 되었죠. 아무리 검열과 단속을 강화해도 프로아나 블로그들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신기술을 도입해 보안을 강화하고, 더 어두운 공간으로 숨어버리죠. 외부와는 전혀 소통하지 않는 폐쇄적인 커뮤니티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의사와 전문가들이 프로아나 블로그와 트위터 계정에 접근할 수 없게 되면, 귀한 연구 자료를 잃는 셈입니다.

제도적인 압박이 없을 때 프로아나 커뮤니티들이 오히려 온건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게 연구자들의 주장입니다. 초기에는 프로아나들이 식이장애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라 우긴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프로아나 커뮤니티들은 식이장애가 정신 질환임을 인정합니다. 먹고 토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곳이라기 보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스트레스를 풀고 문제를 극복해가는 공간이라는 것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프로아나 사이트들이 식이장애 환자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점입니다. 문제를 혼자서 끌어안고 끙끙대던 사람도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이는 이후 치료 과정에서도 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최근 프로아나 사이트들이 이렇게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앞세우는 것이 프로아나들의 새로운 전술일 수도 있습니다. 미디어의 집중 포화에서 한 발짝 비켜나 대중의 심기를 크게 불편하게 하지 않아야만, 계속해서 병적인 마름을 찬양하는 활동을 해나갈 수 있으니까요. 온건하다는 프로아나 사이트에서도 과학적 팩트가 왜곡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진정한 일원”이 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소수정예 비밀 게시판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치료라는 이름 하에 거식증 정보가 오히려 널리 퍼져나간 사례도 많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환자에게 낙인을 찍는 의사들과 거식증 치료에 보험 혜택을 적용해주지 않는 보험회사가 존재하는 불리한 현실에서, 프로아나 사이트는 식이장애 환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치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식이장애 치료에 호의적인 세상이 아닙니다. 프로아나 사이트에 낙인을 찍은 건 어쩌면 마른 몸매를 숭배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를 외면하기 위한 방법이었을지 모릅니다. 프로아나 사이트를 보면 자신의 몸매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갖게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거식증 치료 사이트, 심지어는 페이스북도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자는 기사를 실으면서도 아름다운 여배우의 허벅지를 포토샵으로 깎아낸 화보를 동시에 싣는 여성 잡지를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제죠.

프로아나 사이트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기사마저도 여성의 몸에 대한 왜곡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보도가 거식증을 극복하고도 여전히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백인 소녀들을 주로 다루는 점, 반면 같은 식이장애인데도 폭식증은 거식증에 비해 조명받지 못하는 점이 그 방증입니다. 그리고 언론이 프로아나 사이트를 충격적으로 보도하면 할수록 어린 소녀들이 카피캣 프로아나 모임을 조직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인터넷의 음지에 숨어있는 프로아나 사이트를 찾아내서 제재하는 것보다는 식이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슬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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