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군림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블래터를 사퇴시킨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2015년 6월 2일  |  By:   |  스포츠, 칼럼  |  No Comment

국제축구연맹(이하 피파, FIFA)을 둘러싼 이야기에 어떤 제목을 붙이면 좋을까요? 돈과 권력과 인간의 끝없는 욕심으로 점철된 이야기이자,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쓰자면, “자기 잇속만 챙기는 수뇌부가 다국적 거대 자본의 지원을 발판 삼아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래서 권력과 돈이 모이는 스포츠의 행정 통치기구를 장악하고 부패로 얼룩지게 한 이야기” 정도가 될 겁니다.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결국 악당들은 정의의 심판을 받아 벌을 받고, 축구는 다시 수많은 팬들의 품에 안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프 블래터(Sepp Blatter) 회장이 어렵지 않게 5선에 성공하는 모습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엄중한 현실을 모두에게 일깨웠습니다.

특히 블래터에 반대하는 이들은 블래터를 구제불능이라며 경멸합니다. 그들은 지난 17년 재임 기간 동안 집행부와 블래터의 측근들이 벌인 수많은 비리와 부정으로부터 끝없이 꼬리자르기로 일관하는 블래터를 맹렬히 비난합니다. 이미 결론은 나와 있습니다. 그가 비리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고, (그랬을 리가 없다고 믿지만) 비리 사실을 정말 몰랐다면, 무능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자 조직의 장으로서 그만한 결격 사유도 없으니 역시 물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적어도 블래터에 반대하는 이들보다 여전히 블래터를 믿고 따르는 회원국이 더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과거에도 피파는 수많은 스캔들로 얼룩졌었고, 블래터 회장은 그때마다 자신을 끌어내리려던 반대 세력을 끝내 물리쳐 왔습니다. 그렇게 지켜온 자리는 더욱 공고해졌고, 이번에도 블래터는 이 위기 아닌 위기를 너끈히 이겨낼 준비를 갖춘 것 같습니다. 미국 FBI의 수사는 누구로부터의 견제도 받지 않아온 피파의 심장부를 겨눴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받을 일이긴 하지만, 성과를 내기까지는 말그대로 갈 길이 멉니다.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핵심 인사 7명을 체포한 건 대단한 일이지만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기소와 혐의 입증, 그리고 법원까지 갈지 모르지만 판결까지는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2018년,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의 비리 관련 조사도 제대로 진행될지조차 불투명합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미국법을 적용할 수 없는 다른 나라에서 진행해야 하는 수사인 만큼 언제 어디서 어떤 반대에 직면할지, 그래서 수사 자체가 좌초되고 말지 모릅니다. 이미 푸틴 대통령은 미국 사법당국의 움직임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부정부패, 비리는 물론 낱낱이 밝혀내고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블래터와 그 측근들이 벌인, 혹은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비리보다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입니다. 국제축구연맹만 유독 (다른 스포츠와 달리) 각 국가의 법과 국제법 위에 군림하는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떠한 민주적인 감시와 견제도 받지 않고 어떠한 도덕적인 규범에도 구속받지 않는 피파가 지금과 같은 괴물이 되어버린 건 어쩌면 사필귀정인지도 모릅니다. 블래터의 비리보다도 피파라는 조직 자체를 원점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209개 회원국 축구협회의 총체가 피파입니다. 각국 축구협회장이, 혹은 축구 관계자들이 국가대표팀과 축구팬, 축구 자체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대신 저마다 사리사욕만 채우려 한다면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결국 몰락하고 마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블래터를 축출하는 것보다 독립적인 기관과 회원국들의 감시와 견제를 받는, 자정 능력을 갖춘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축구가 국민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의 정부라면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다시는 카타르 같은 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말도 안 되는 결정 때문에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노예처럼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유럽과 북미 몇 나라만 보이콧하는 건 현명한 계획이 아닙니다. 블래터의 든든한 우군인 아프리카, 아시아 회원국들의 마음을 살 수 없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축구에 지정학적 셈법이 더해져 각국의 권력 각축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구 세력 대 나머지 나라들, 선진국 대 제 3세계 같은 구도는 아마도 푸틴이 가장 바라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시점에서의 논의는 피파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게 아니라 축구를 되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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