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애국자 논란, 대통령의 애국심 척도는?
2015년 2월 24일  |  By:   |  세계, 칼럼  |  2 Comments

지난 주, 전직 뉴욕 시장 루디 줄리아니가 한 비공개 만찬장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 알려졌습니다. 줄리아니는 “대통령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나와 여러분이 나라 사랑을 새기며 자라고 교육받은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자랐다”고 덧붙였죠.

곧 파문이 일었습니다. 좌파 쪽 논객들은 줄리아니가 은연중에 오바마의 인종과 외국인이었던 아버지,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학창시절을 문제삼은 것이라며 반발했습니다. 요는 대통령이 당연히 조국을 사랑하는데 이것을 문제 삼은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줄리아니가 대통령의 피부색이나 혈통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보수주의자들의 마음 속에 숨겨진 외국인혐오와 인종주의를 이용해 먹으려 했다는 것이었죠.

보수 쪽의 반응은 사뭇 달랐습니다. 케빈 윌리엄슨은 <내셔널 리뷰>에서 한술 더 떠, 남편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조국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진 않았다던 미셸 오바마의 발언과 미국사의 노예제와 인종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제레미야 라이트 목사와의 관계를 언급하며 대통령은 미국을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다고 썼습니다. 좌파들이 말하듯 미국 역사가 백인 우월주의와 성차별, 과두 자본주의로 얼룩져 있다면 미국이란 나라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같은 관점과 성향을 지닌 인물이 사랑할 구석이 거의 없을 거라고 꼬집었죠.

그러나 누군가는 진보를 미국의 국가 정신으로 보고, 미국의 역사를 위에서 언급한 악에 맞서 진보를 성취해 낸 역사로 봅니다. 미국의 좌파에게는 이것이 애국심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윌리엄슨의 칼럼은 오히려 많은 보수주의자들에게 “애국”이란 곧 역사적인 팩트에서 불쾌한 부분들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오클라호마의 주의회에서 고등학교 AP과정의 역사 수업 일부가 미국사의 불편한 부분을 조명한다는 이유로 수업을 금지하자는 법안이 등장한 것은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사의 많은 부분이 불편한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 사실이지요. 당장 우리집 근처에만 해도, 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인간을 노예로 부릴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죽이고 죽어간 전장과, 삶의 터전을 빼앗긴 원주민들이 죽음의 행군을 강요당했던 역사의 현장이 위치하고 있으니까요.

오바마 대통령의 세계관이라는 것은 살짝 왼쪽으로 기운 중도 성향 흑인 법대 교수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은 과거 미국의 악명높은 노예제와 백인 우월주의, 그리고 그 유산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인식은 자연스레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로부터 어떤 식으로건 학대를 당했지만 그럼에도 부모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줄리아니나 윌리엄슨이 오바마에게서 발견할 수 없었던 맹목적이고 해맑은 애국심은, 미국사에 엄연히 존재했던 차별과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었거나 그런 역사를 잊은 사람들이나 가질 수 있는 특권적 감정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씩이나 되는 자에게 이처럼 태평스러운 애국심을 요구하는 목소리 뒤에는 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오바마 대통령이 강박적으로 미국 예외주의를 외치는 모습에서 때로 진정성의 결여와 주저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줄리아니와 수 많은 보수주의자들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줄리아니에게는 부족한 애국심으로 비친 그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는 대통령의 교양과 지성, 복잡한 감정과 양심의 표출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조국의 신화에 사로잡힌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는 증거인 것이죠. 정치인이 “우월”한 미국의 “티끌 하나 없는” 역사에 대해 단순한 애정을 쏟아붓기만 한다면, 그는 기만적인 선동가이거나 현실 감각이 없는 바보일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수주의자와 같은 애국심이 없다고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현실감각과 자제력이야말로 오히려 오바마의 장점인데요.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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