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 귀족주의
2015년 1월 29일  |  By:   |  경제, 세계  |  3 Comments

위스콘신 주 출신 하원의원이자 지난번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를 지냈던 폴 라이언(Paul Ryan)은 말합니다. “제가 크게 두려워하는 것은 태어날 때 조건이 삶의 진로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미국 사람들이 점점 잃어가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 상원의원은 “기회가 없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1950년대에 영국의 사회학자인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실력주의(meritocracy)라는 말을 쓰기 전에 권력과 성공, 그리고 부가 부모 잘 만난 운이 아니라 실력과 노력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지칭하는 단어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인, 또는 미국적인 쯤으로 번역되는 “American”이란 단어가 그 개념을 상징하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미국에도 항상 부유하고 힘이 센 가문이 있긴 했지만 능력있고 노력하면 누구든 미국 사회에서 엘리트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어느 나라보다 강했습니다. 만약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실력이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경우에 미국인들은 그런 사람들을 “썩은 무리(rotten crowd)”라고 비난했었습니다.

오늘날의 엘리트는 사람들이 썩은 무리라고 비난하던 종류의 사람들과는 무척 다릅니다. 이들은 과거에 비해 더 능력있고 더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더 열심히 일하고 (물론 엄청난 보수를 받지요) 부모로서의 역할도 부지런히 수행합니다. 엘리트의 지위는 출생이나 연줄에 의해서 쉽게 얻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엘리트 그룹에 들어가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엘리트 지위가 대물림되는 부분도 물론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엘리트 그룹의 자녀들은 많은 혜택을 받습니다.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미국의 엘리트들은 훨씬 앞서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지위를 누릴 자격이 있는 자녀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실력주의의 기준을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존경할 만한 특징들이 합쳐져 나타난 결과이기도 합니다. 자녀들의 교육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려는 강한 의지, 단일 교육 모델을 국가 전체에 적용하지 않은 점, 가장 훌륭한 교육 시설을 짓기 위해 대학들끼리 경쟁을 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죠. 이런 특징들 하나하나에 반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환경 덕분에 부모들은 자녀에게 더 쉽게 장점을 물려주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는 미국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이 예외적인 기회의 땅이라는 주장을 평가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한 가지 원인은 미국 여성들의 교육과 고용 기회가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교육과 직업에서 성취를 누리는 많은 여성들은 능력있는 두 젊은이가 결혼할 확률을 높였습니다. 1960년과 2005년 사이에 대학 졸업장이 있는 남성이 대학 졸업장이 있는 여성과 결혼할 확률은 25%에서 48%로 거의 두 배가 늘었으며 앞으로도 이 비율이 감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교육 환경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을 함으로써 자녀들은 교육과 사회적 지위의 중요성을 직접 보고 겪으며 체득하게 됩니다.

대학 졸업장이 있는 부모들은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습니다. 오랫동안 자녀의 학업 성취를 예측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변수가 부모의 교육 수준이었지만 최근 돈의 중요성이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션 리어돈(Sean Reardon) 교수는 부모의 소득과 SAT 시험 점수 사이에 분명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요인은 바로 가정의 안정성입니다.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일수록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으며 이혼 확률도 낮습니다. 부유한 부모 아래서 태어난 아이가 누리는 교육적 효과는 유아기 때 이미 드러납니다. 뉴욕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를 가정해봅시다. 이 아이의 부모들은 사립 유치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고 무척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아이가 공립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학교가 어느 동네, 어느 학군에 있는지가 교육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은 공립 교육 재정을 재산세를 통해서 충당하는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주들은 학생 한 명당 최소한의 교육비를 정해두지만 부모들이 원하는 경우 교육 재정을 늘리기 위해서 지방세를 더 거둘 수도 있고 실제로 이런 일은 자주 발생합니다. 학생 한 명당 교육비는 주별로 50%씩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난한 지역에 사는 가난한 학생에게 돌아가는 혜택과 부유한 지역에 사는 부유한 학생이 누리는 교육 혜택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명망있는 대학들은 부모나 친척이 그 대학을 졸업한 경우 입학시 가산점을 줍니다. 대학 입학에 관한 자문을 제공하는 회사인 아이비와이즈의 관계자는 펜실베니아 대학이 이 대학 졸업생의 자녀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라고 말합니다.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 대학간에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이 왜 가족 연고가 있는 학생들을 선호하는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1백만 달러를 기부하고 입학한 학생이 있다면 그 기부금으로 재정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도울 수 있기 때문에 공익 관점에서도 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기금이 풍부해서 많은 재정 지원을 하는 엘리트 대학들의 경우 이는 맞는 말이지만 여전히 많은 대학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엘리트 집안 출신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로펌이나 은행 혹은 컨설팅과 같이 높은 급여를 지급하는 일자리를 구합니다. 노스웨스턴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로렌 리베라(Lauren Rivera)는 이 분야의 채용 담당자 12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 결과 기업들이 부유한 가정 출신을 채용한다는 기준을 명시적으로 두지는 않았지만, 잘 알려진 대학 출신이나 대학 대표 스포츠팀 경력이 있는 학생들을 뽑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런 경우에 부모가 블루칼라 직업을 가진 경우는 무척 드물었습니다. 비슷한 현상이 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지고 많은 일들이 자동화 되면서 평사원과 임원 오피스 사이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어졌고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임원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일은 점점 더 희귀해지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기업의 엘리트 역시 가족 네트워크나 지역 연고로 구성되어 있던 것이 MBA나 비슷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실력이 더 향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MBA를 얻기까지의 과정, 즉 학교에 입학하고 직장을 얻는 과정에서 이미 부모의 부에 따라 많은 부분이 걸러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버드의 라니 귀니에르(Lani Guinier)는 현재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시험실력주의(testocracy)를 반대한다고 자주 말합니다. 한때 진보주의자들은 시험이 실력을 통해서 인재를 가려내는 시스템으로 특권의 오래된 구조를 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시험이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좋은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인 자녀들에게만 유리하게 이용된다는 믿음이 퍼지고 있습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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