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퍼거슨 사태, 자녀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눈발이 흩날리던 추운 저녁, 일곱 살 난 아들을 차에 태우고 장을 보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물어왔습니다. “엄마, 경찰도 체포될 수 있어요?” “물론이지.” 나는 미국 건국의 역사를 주워섬기면서 경찰은 물론 대통령이라도 잘못을 했으면 체포될 수 있고, 법 위에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아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경찰관이 마이클 브라운이라는 흑인을 죽였다고 들었어요. 그 경찰관은 왜 안 잡혀가는 거예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최근 며칠 사이 나는 아들이 퍼거슨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모르도록 하기 위해 아침 식사 때 라디오도 듣지 않고 신문도 치워놓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입니다.
지난주 대배심원이 에릭 가너 사건의 경찰관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린 후, 나는 우리 흑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무게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2014년 현재에도 흑인 부모들은 교육 수준, 신용등급의 고저, 사회적 위치에 상관없이 나의 자녀를 경찰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고, 뉴저지의 자가 주택에 살고 있는 우리 부부도 예외는 아닙니다. 영화를 보러 가다가 불시 검문을 당한 에릭 홀더 법무부 장관도, 길에서 검문을 받고 구금당한 경험이 있는 코리 부커 상원의원도, 도난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에 의해 자택에서 체포당한 경험이 있는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하버드대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백인 동료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찰의 매너가 우리에게는 보장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이클 브라운이나 에릭 가너가 당시에 법을 어긴 상태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니, 법을 잘 지키기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뉴욕에서 나고 자란 저는 아무런 잘못 없이 경찰의 손에 죽어간 흑인들의 이름을 당장에라도 여럿 떠올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너가 죽은 곳은 우리 부모님 댁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죠.
많은 사람들에게 정상이 아닌 상황이, 흑인들에게는 여전히 일상입니다. 이런 현실에 분노를 금치 못할 때도 있지만, 더 자주 느끼는 감정은 마음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들과는 맘 편히 아들이 좋아하는 축구 이야기나 공룡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불편한 현실에 대해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이미 노예제를 비롯해, 미국 역사 속 인종 차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남편과 저는 21세기에 와서도 흑인 청년들이 일상 속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위험과 치욕에 대해서 말해줄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왔습니다. 그러나 눈 내리는 저녁, 식료품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들은 퍼거슨 사태에 대해 물어왔고, 우리는 긴긴 대화를 나눠야 했습니다. (뉴욕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