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비축 화폐 금(金)의 가치
2014년 10월 6일  |  By:   |  경제, 칼럼  |  2 Comments

중국 정부가 약 4천조 원 규모에 이르는 외환보유고 가운데 일부를 금을 사들이는 데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현재 단일 국가의 화폐용 금(monetary gold) 보유량이 가장 높은 미국의 금 보유량을 추월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을 돈으로 환산하면 약 328조 원 어치니,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금은 갖고 있어도 누구도 이자를 주지 않고, (신용 화폐에는 들지 않는) 보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매력적인 방안은 아닙니다. 게다가 위안화가 너무 기축 통화의 지위를 위협할 만큼 비싸지고 강해지는 건 중국 정부도 원하는 일이 아닐 테니, 이런 일이 당장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신용 화폐들과 각 화폐들 사이의 변동 환율이 전 세계 경제를 운영하고 있는 지금 세상에서도 여전히 금은 신용 화폐가 갖지 못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0여 년 동안 금은 누구도 보증을 서거나 담보를 요구하지 않는 일종의 궁극적인 화폐 기능을 해왔습니다. 금본위제로 세계 경제를 운영하던 시기만을 일컬어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에 수출을 하는 업자들이 취급했던 유일한 ‘돈’이 금이었습니다. 물건 대금을 금으로 치르지 않으면 물건을 넘기지 않았던 것이죠. 지금 전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달러 화폐도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그 가치를 보증해주지 않으면 원칙적으로는 휴지조각에 불과합니다. 금은 다르죠. 금의 가치는 그 자체로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습니다.

미국 달러나 어떤 신용 화폐에 이런 금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을 보유할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선진국 대부분은 국고의 일부분을 거의 예외 없이 금으로 채워놓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들 국고에 있는 금의 가치를 모두 합하면 약 770조 원으로, 전체 비축 금액의 10.3%를 금으로 채워놓은 셈입니다. 금값이 떨어질 때마다 어느 나라 정부든 보관비용만 드는 금을 좀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고 회의를 거듭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미국의 금 비축량도 수십 년간 약 7,300톤 선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연준 의장으로 있던 1990년대 금값이 온스당 300 달러 이하로 떨어지자, 유럽 각국 정책결정자들이 너도나도 금을 처분하고자 했는데, 한꺼번에 팔아치우면 금값이 더 떨어질까봐 차례대로 판매량을 미리 합의한대로 제한해 처분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여기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금은 가격에 따라 처분하거나 사재기를 해두는 그런 종류의 자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유럽 중앙은행은 “금은 세계 각국의 자산 보유고에서 여전히 아주 중요한 수단”이라고 밝혔습니다.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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