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내 반유대주의의 부상, 진정한 해결책은?
유럽 내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프랑스,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반유대주의 범죄가 급증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나서 “젊은 유대인 부모들이 유럽에서 자식을 키울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유대인에게 유럽이 더 이상 살 곳이 못된다고 하면 과장이겠으나, 2000년 두번째 인티파다 이래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가장 심각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부의 지적처럼 유럽 내 무슬림들의 반유대주의가 그 원인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실재하는 “주류”의 반유대주의를 간과하고 지금의 분위기를 소수의 탓으로 몰아가는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무슬림 인구가 6% 뿐인 독일이나, 3%에 불과한 스페인에서도 반유대주의 정서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으니까요.
무슬림과 유대인 간의 갈등은 분명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두 집단 간의 갈등을 악용하는 정치인들의 행태죠. 많은 유럽인들이 스스로를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열린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하지만,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고향”의 모습이 변해가는 상황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파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이와 같은 정서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왔죠. 그러나 대놓고 비관용을 내세우는 유럽인은 많지 않기 때문에 그와 같은 포퓰리즘 정책에는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헤이르트 빌더르스나 마린 르펜과 같은 “신세대” 극우파 정치인들은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반감에 새로운 포장지를 입혔습니다. 무슬림을 표현의 자유, 법치, 성소수자 권리 등을 인정하지 않는 자유주의의 적으로 몰아세우기 시작한 것이죠. 유럽의 극우 극단주의가 “리버럴 이슬라모포비아”로 변모한 것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기존 극우주의자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유대인들을 감싸고 추켜세우기 시작합니다. 이는 지극히 전략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슬픈 과거사 덕분에,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태도는 한 사람의 관용 정신을 측정하는 잣대입니다. 극우주의자들은 유대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서 인종주의자라는 비난을 피하려고 한 것이죠. 그리고 이런 전략은 프랑스 등지에서 극우정당이 주류로 부상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극우파의 유대인 사랑에는 진정성이 없습니다. 무슬림 이민자의 유입을 두려워하는만큼이나, 유대인들이 “주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도 곱게 볼 수 없는 것이죠. 유대인 친화 전략을 낳았던 바로 그 정서가 반유대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유대인들은 과거의 도덕적 과오를 떠올리게 하는, 어찌보면 불편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민족주의자들은 유대인도 우리와 별로 다를게 없다고 주장하는데서 특별한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여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하자 유럽의 민족주의자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 우파의 지형도도 조금 달라졌죠. 지금까지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유대인들의 편이었다면, 이번 가자지구 사태를 기점으로 무슬림들과 같은 편에 서서 유럽 내 유대인들을 공격하는 양상이 되었습니다. 무슬림의 편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은 지금까지 유럽 좌파들의 전유물이었는데 말이죠. 그러나 이 연합 전선의 수명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겁니다. 유대인보다 숫적으로 우세한 무슬림들의 “위협”을 두려워하는 유럽의 극우주의자들은 가자지구 사태의 기억이 조금만 흐려져도 다시 “진정성없는 유대인 사랑”과 “리버럴 이슬라모포비아”라는 카드를 꺼내들 것입니다. 무슬림과 유대인 간 반감을 부추기는 전략은 언제나 효과적이니까요.
이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유럽인들 스스로 민족주의적 정체성의 개념을 넓혀야 합니다. 인스부르크에서 태어난 사람 뿐 아니라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사람도 진정한 오스트리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정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한다면 스시와 요가에만 열광할 것이 아니라 모스크와 할랄 고기도 더불어 인정해야죠. 하지만 과연 유럽인들이 그러한 길을 택할 것인가는 미지수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무슬림과 유대인이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서로 연대해야 합니다. 민족주의적 유럽, 단일성을 중시하는 유럽에서 무슬림과 유대인은 모두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실제로 유럽 내에서 이 두 집단은 놀라운 화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인 단체가 극우 정치인들의 무슬림 공격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고, 최근 가자지구 사태 때는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목격되었죠. 그러나 동시에 양 쪽 모두 극우파와 어울리며 위험한 게임을 이어나가려는 모습도 여전합니다.
이슬람교가 열린 현대사회의 적이라는 극우주의자들의 수사가 아무리 설득력있게 들린다해도, 특정 집단을 배척하는 열린 사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수의 유럽인들이 정치인들의 전략에 넘어가 무슬림과 유대인 간 반감을 부추기며 한 쪽을 배척하기 위해 한 쪽을 띄우는 분위기에 넘어가 버린다면, 유럽인들이 꿈꾸는 관용과 다양성의 사회는 요원해질 것입니다. (Foreign Affai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