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간질을 가진 희극 작가의 이야기
2014년 9월 19일  |  By:   |  과학  |  2 Comments

나는 간질 환자입니다.

물론 간질이 곧 나를 설명하는 어떤 특징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간질에 대한 글을 쓰고 있고, 따라서 내가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겁니다.

물론 간질이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의 일상은 이 병의 영향하에 놓여있습니다. 나는 운전을 해서는 안되고, 발작의 위험 때문에 밤을 새서도, 너무 일찍 일어나서도 안됩니다. 물론 아침 일찍 쓰레기를 버려야 되는 그런 날에 이 병을 핑계로 늦잠을 자기도 합니다.

내가 17살 때 간질이라는 진단을 받은 이후,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병이 어떤 병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간질이라는 사실을 말했을 때, 나는 마치 로봇에게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들은 종종 할 말을 잊거나, 때로는 내게 간질이 무엇인지 묻거나, 또는 남은 대화 내내 내가 발작을 시작하면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기억을 더듬어 내게 확인합니다. 그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입에 숟가락을 넣어야 하나요…?” (역주: 발작시 혀를 깨물지 않게 하기 위해 하는 행동)

답을 말해 두자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간질환자의 입에 숟가락을 넣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면, 아마 우리 처방전에는 프룻 코너스(Fruit Corners, 역주: 영국의 요플레. 플라스틱 숟가락이 따라오기 때문에 하는 말로 보임)가 항상 있을 겁니다.

누가 당신에게 그가 간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도 겁먹지 마세요. 아무도 당신이 그 병에 대해 잘 알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을 앞에 둔 의사가 아니라면 말이죠.) 세상에는 수많은 원인을 가진 다양한 종류의 간질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발작을 겪지 않고, 어떤 이들은 적절한 약만 복용한다면 거의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내가 가진 간질은 대발작(tonic-clonic) 간질입니다. 이 간질은 바닥을 구르며, 전신을 떨고, 혀를 깨무는 그런 전신발작을 동반합니다. 발작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발작이 끝나면 나는 전신 운동을 한 것 처럼 녹초가 됩니다. 내 발작을 누군가 본다면, 그는 매우 불안해 할 겁니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짜증나는 일일 뿐입니다. 발작동안 나는 내 몸에 부상을 입기 보다 주변 가구들을 부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발작이 일어나는 과정에는 다소 기묘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두뇌는 전기신호가 어떤 회로를 따라 전달되는 일종의 컴퓨터입니다. 때로 이 회로에 단선이 일어날 경우 머릿속 모든 회로들은 리부팅을 하기 전까지 활성화 됩니다. 이 컴퓨터는 당신의 모든 신체와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운명의 파란 화면이 뜨는 순간, 당신은 모든 하던 행동을 중지하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설사 그 전에 100페이지의 문서를 출력 중이었다 하더라도, 이 컴퓨터는 다시 테스트 문서부터 출력하게 됩니다.

단지 컴퓨터와 다른 점은, 문제가 있는 부분만을 떼어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최근 뇌 영상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자기공명영상(MRI)이나 뇌파전위기록술(EEG)은 뇌의 활동을 상당한 정확도로 보여줍니다. 단지 이들 기계는 특정 부위에 분명한 문제가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일반 간질(generalised epilepsy)”을 가지고 있고, 이 병은 뚜렷한 원인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확실한 치료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는 특정 부위를 찾을 수 없는 이런 경우, 우리는 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약을 처방받습니다. 이 약은 모발 손실이나 과 모발, 간 에 끼치는 피해, 발작(우습지 않나요?) 등의 여러 잠재적 부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이런 부작용과 이 약으로 인해 줄일 수 있는 발작의 빈도를 저울질 해야 합니다.

이 약을 먹을 가치가 있을까요? 발작을 겪는 것은 기묘한 느낌입니다. 발작은 어떤 특이한 기분으로 시작합니다. 머릿속이 번쩍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발작이 시작될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내 몸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바닥에 쓰러지는 것은 마치 말을 더듬을 때의 답답함을 몸으로 느끼는 것과 비슷하며, 매우 혼란스러운 기분과 함께, 나는 자신을 멈추고 싶지만 그저 내가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그런 느낌입니다.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습니다. 신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나는 알 지 못합니다. 실제로 내 몸은, 긴장하고 이완하며, 구부리고 떨며, 쥐었다가 놓아주는 일을 반복합니다. 이런 상황이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나는 희미한 정신상태에서 몸을 일으키고, 발작 이전에 하려던 행동을 다시 이어서 시작합니다. 대화를 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며, 아침을 먹습니다. 나는 모든 근육을 몇 분간 움직였기 때문에 피로를 느낍니다. 그래서 나는 충분한 잠을 더 잡니다.

그러나 발작이 내게 주는 잇점도 있습니다. 내가 느낀 정신의 혼란은 마치 브레인스톰(이 단어는 오히려 내게 더 적절합니다)같아서, 내게 신기한 생각과 생생한 그림, 그리고 단어들을 기이한 방식으로 연결해 줍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내 마음 속 장난감 상자를 방 바닥에 쏟은 후, 정신의 레고와 루빅스 큐브를 연결해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과 비슷합니다. 작가이자 코미디언인 나는 발작을 통해, 거대한 아인슬리 해리엇(역주: 영국의 유명 요리사)의 가면을 쓰고 갈매기 흉내를 내며 춤과 함께 알을 낳는, 그런 기이한 코미디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심지어 ITV 의 코미디 경쟁프로그램인 “쇼우 미 더 퍼니(Show Me the Funny)”에서 주로 발작 이후에 떠올린 아이디어들을 이용해 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수년 동안 처방약 없이 스스로 발작을 조절하며 나는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고, 나는 다시 약을 먹기로 결정했습니다. 약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최근 1-2년 동안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 하에서 단 몇 번의 발작만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아이디어 역시 사라졌습니다. 이제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기이하고 놀라운 아이디어들을 더 이상 떠올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그저 우연히, 내가 작가로서의 능력을 잃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내가 복용하는 약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다시 약을 끊어야 할까요? 흐릿한 눈으로 깨어나 횡설수설 하게 될 그 아침을 위해? 나도 그 답은 모르겠네요.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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