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멸망하고 문명을 재건해야 한다면?
2014년 3월 31일  |  By:   |  세계  |  1 comment

-저서 <지식: 무의 상태에서 다시 세상을 만든다면(“The Knowledge: How to Rebuild Our World From Scratch)>의 출판을 앞두고 있는 루이스 다트넬(Lewis Dartnell)이 NYT에 기고한 글입니다. 

저는 우주생물학이라는 거창한 학문을 전공했고 학위가 세 개나 있지만, 실생활에 쓸모있는 재주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고장난 수도꼭지를 고칠 줄도, 빵을 구울줄도 모르죠. 아마 저 같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무슨 물건을 사더라도 작동 메뉴얼 자체가 딸려오지 않고, 고장이 나면 버리고 새 제품을 사는 것이 훨씬 빠른 세상이니까요. 가끔 저녁 밥상에 올라온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사소한 물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물건으로 거듭났는지 생각하다보면, SF소설 같은 시나리오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만일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커다란 재난이 닥쳐서 문명이 멸망해버리고, 몇 사람만 살아 남아 문명을 재건해야 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식은 무엇일까요?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모든 과학 지식이 다 파괴되고 다음 세대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은 짧은 문장 하나만을 남길 수 있다면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말을 남기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대단한 문장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큰 쓸모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과연 어떤 지식을 남기면 문명 재건에 도움이 될까요?

저라면 우선 세균학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전염병은 변덕스런 신의 장난이 아니라 우리 몸을 침범한 미생물에 의해 생긴다는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간단한 재료로 만든 비누로 손을 씻는 것 만으로도 건강을 지킬 수 있고, 정착을 할 때는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이 식수원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마을을 설계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인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지만, 19세기 중반까지만해도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그 다음으로는 농업의 기술과, 식품을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할 것 입니다. 동물과 인간이 모두 먹을 수 있고, 자라기도 빨리 자라는 밀, 쌀, 옥수수는 문명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곡식을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만드는 멧돌과, 익혀먹을 수 있도록 하는 조리도구도 문명의 기본이죠.

문명을 이루기까지는 수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저는 18세기식 대장간 체험 프로그램에서 하루 종일 걸려 작은 칼 한 자루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빵과 치즈를 잘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는데, 칼은 단번에 망가지고 말았죠. 하지만 내 손으로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본 건 처음이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꼭 전지구적인 재난이 닥쳐야만 문명의 재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갖춰진 현대사회에서도 국지적인 자연 재해로 인해 물과 전기가 아쉬워지는 상황이 올 수 있으니까요. 문명의 재건을 상상해보는 일,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여기고 있는 문명의 이기에 대해 한 번 더 감사하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지적 유희입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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