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표의 탄생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지하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말했을 때 많은 이들이 뜨악하거나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당시 박 후보가 양성화라고 말했어야 할 것을 실수로 활성화라고 말했기 때문일 겁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면 정부 입장에서 여러 가지 이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큰 매력은 세수가 오르고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GDP를 비롯한 국가경제 규모가 커진다는 데 있을 겁니다. “Il Sorpasso”. 추월(영어의 surpass에 해당)을 뜻하는 sorpasso라는 이탈리아어를 위에서처럼 대문자 S로 시작하는 단어로 쓰면 지난 1980년대 이탈리아 정부가 하룻밤 사이에 경제 규모에서 영국을 추월했던 사건을 일컫는 단어가 됩니다. 어떻게 가능했냐고요? 이탈리아 정부가 기존에는 GDP 집계에 포함되지 않던 마피아들의 거래를 비롯한 지하경제 규모 추정치를 GDP 집계에 임의로 포함시켜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국의 경제학자들은 이탈리아 정부가 GDP를 계산하는 객관적인 기준을 어기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폄하했지만, 사실 한라산의 높이나 낙동강의 길이를 재는 것처럼 GDP를 계산하는 데 정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건 아닙니다. 미국 정부도 지난해 GDP를 계산할 때 기준을 아주 살짝 바꿨을 뿐인데, 경제 규모가 (기존의 계산 방식보다) 5천억 달러 더 큰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자, 그럼 언제부터 정부나 한 나라의 지도자가 숫자로 집계되는 국가경제 규모에 이렇게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을까요?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보면 이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100년 전 미국인들에게 “요즘 나라 경제 사정이 어떻냐?”고 묻는다면, 은행이 부도가 난다거나 무역에 악재가 겹쳐서 힘들다는 답은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나 GNP(Gross National Product)가 어떻다는 답은 들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 개념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죠. 이런 개념들이 처음 등장한 건 1929년 대공황을 거친 이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입니다. 길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시중의 돈이 메말라버린 게 자명한 데도 이런 현상을 설명할 만한 숫자가 없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처음으로 (미국에서) 1년 동안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을 수치화해 발표했고, GDP라는 개념은 이내 한 나라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됩니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난 뒤 신생국들이 지도상에 모습을 드러낸 1950, 60년대 지도자들이 처음 한 일은 국적 항공회사를 세우고 군대를 설립한 일이고, 그 다음이 GDP를 집계한 것이라는 소리도 있을 정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였던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뒤 “잘 살아보세”라는 모토 하나로 경제 개발계획에 몰두한 것이 다른 신생국들에 비해 대단히 독특한 행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GDP를 비롯한 경제지표 속의 숫자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이 적지 않고, 세계적인 흥행을 일으켰던 경제지표는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고 바비 케네디(Robert Kennedy) 전 상원의원은 GNP가 미국인의 삶의 질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전혀 없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GNP를 봐서는 국민들의 건강이나 공공의 신뢰를 비롯한 사회적 자본에 대해 알 길이 없다는 거죠. 아마도 GDP나 GNP를 보완할 만한 수많은 지표들이 쏟아져나온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한 나라 경제의 기본적인 수준을 파악하는 데 있어 GDP나 GNP는 훌륭한 지표라고 말합니다. (NPR Planet M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