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주제의 글
  • 2014년 11월 20일. (마이클 셔머 칼럼) 케네디 암살에 관한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사람들이 케네디 암살에 대해 아직도 음모론을 믿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음모론들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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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7월 7일. 1964년 민권법, 2014년 의회에서도 통과될 수 있었을까?

    20세기 가장 중요한 법으로 꼽히는 기념비적 민권법(Civil Rights Act)이 제정된지 올해로 50주년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이제 모두가 사랑하는 대통합의 상징같은 인물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그는 극단적인 지지와 미움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고 존슨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도 그를 가까이 한다는 인상을 줄까봐 몸을 사리곤 했습니다. 그러니 당시 민권법이 공화, 민주 양 당의 지지를 받아 의회를 통과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죠. 올해도 양 당의 의회 지도자들은 민권법 제정 50주년을 맞아 기념식에도 더 보기

  • 2014년 3월 7일. 경제지표의 탄생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지하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말했을 때 많은 이들이 뜨악하거나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당시 박 후보가 양성화라고 말했어야 할 것을 실수로 활성화라고 말했기 때문일 겁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면 정부 입장에서 여러 가지 이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큰 매력은 세수가 오르고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GDP를 비롯한 국가경제 규모가 커진다는 데 있을 겁니다. “Il Sorpasso”. 추월(영어의 surpass에 해당)을 뜻하는 sorpasso라는 이탈리아어를 위에서처럼 대문자 S로 시작하는 단어로 쓰면 지난 1980년대 더 보기

  • 2013년 11월 15일.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미국 교과서에서 어떻게 바뀌어 왔나

    오늘날 학생들이 케네디 대통령에 대해서 배우는 내용은 학생들의 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케네디에 대해서 배웠던 것과 다릅니다. 1968년 존 블럼(John Blum)이 쓴 고등학교 교과서는 케네디를 비극의 영웅이자 대통령으로 지낸 1000일 동안 미국을 자신감과 희망에 차서 미래를 맞이하도록 혁신적으로 바꾸려고 했던 대통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87년에 제임스 헨레타(James Henretta)와 다른 저자들이 쓴 교과서에서는 케네디가 미화된 부분이 있으며 실제로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그가 이룬 입법적 성과는 미미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더 보기

  • 2013년 10월 24일. 케네디가 보수주의자라니, 무슨 소리!

    아이라 스톨(Ira Stoll)의 어처구니없는 타임지 칼럼(어제자 뉴스페퍼민트에 소개-역주)을 읽고 나서 로널드 레이건이 실은 극렬 좌파였다는 주장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런 식의 논쟁은 공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반박만 해보겠습니다. 우선 케네디의 말 몇 마디를 인용하며 시작하겠습니다. 다음은 케네디가 상원의원이었던 1960년 8월, 최저임금을 25% 인상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기준법에 찬성표를 던진 후 했던 말입니다. 오늘날 미 의회의 스펙트럼 상에 놓아도 꽤 왼쪽으로 치우치는 발언입니다. “최소 임금이 올라가 구매력이 높아지면 더 보기

  • 2013년 10월 23일. 케네디는 정치적 보수주의자였다!

    -Time지에 실린 Ira Stoll의 칼럼입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사망 50주기가 다음 달로 다가오면서 그 이름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시점에, 저는 널리 알려진 오해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바로 케네디가 진보주의자였다는 오해입니다. 통상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케네디는 당시의 기준으로나 지금의 기준으로나 정치적 보수주의자에 가깝습니다. 국방 예산을 늘이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연방 정부 지출은 엄격하게 관리했고, 경제 성장 정책에 있어서는 정부 부채보다 세금 인하와 그에 따른 자연스런 세입 증가를 강조했습니다. 자유무역을 강조하며 관세를 인하했고, 국내외에서 더 보기

  • 2012년 10월 15일. 쿠바 미사일 위기 50주년

    현재까지 인류가 핵전쟁의 재앙에 가장 근접했던 ‘사건’이 꼭 50년 전에 일어난 쿠바 미사일 위기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되돌아봅니다. 1959년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이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뒤 미국은 좁은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어선 공산주의 국가를 없애기 위해 전전긍긍합니다. 쿠바는 쿠바대로 안보를 지키기 위해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들여오기 시작하고, 미국은 쿠바 섬을 해군, 공군을 총동원해 봉쇄하기에 이릅니다. 쿠바로 향하던 소련 함대와 쿠바 해협을 봉쇄하고 있는 미국 함대가 마주치면 순식간에 전면전으로 번질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