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정부에게 서로가 필요한 이유
왕과 귀족, 지주와 소작농의 위치가 확실히 고정되어 있었던 중세와 달리, 근현대의 국가와 기업 간 관계는 짧은 세월 동안 수 많은 부침을 겪었습니다. 19세기가 자유방임의 시대였다면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는 국가의 통제가 강해졌고, 1945년 이후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사회민주주의가 위세를 떨치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민영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오늘날 이 관계에 다시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는 크게 세 가지 입니다. 첫째는 2007-8년의 세계 금융위기입니다. 금융위기로 사람들은 시장의 자정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각 국 정부의 긴축정책에 분노한 시민들이 좌우 포퓰리스트들의 주장에 끌리게 되면서 기업들은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인터넷의 발전입니다. 국가와 기업 모두 엄청난 양의 개인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국가는 치안과 반테러라는 명분을 앞세워 정보, 나아가 정보를 모으고 저장하는 기업들까지 통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세번째는 세계화입니다. 선진국의 기업들도 이제는 국가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은 개도국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에, 선진국 정부들도 마냥 자국 기업들을 쥐고 흔들 수는 없는 것이죠.
분명한 것은 기업과 정부 모두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의 지속적인 진행이라는 장기 트렌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과 국가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될 수 없습니다. 정부가 국내에서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지 못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이것은 정부에게도 손해고, 정부가 정치적 혼란이나 금융 위기를 막지 못하면 기업도 곧장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은 확실한 비전과 큰 그림을 가지고 일관성있고 안정적인 세금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지식기반 사회에 걸맞는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교육 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과, 기업들을 너무 편하게 해주어 경쟁력을 상실하도록 만드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기업들은 세금을 너무 피하려 하다가는 대중의 반감을 사고 기업 활동의 기반이 되는 사회에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폭발적인 경제 성장률을 발판으로 정부와 기업들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개도국들과 경쟁하려면, 선진국의 정부와 기업은 서로를 적이 아닌 파트너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