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삶의 질이란?
2013년 10월 28일  |  By:   |  세계  |  20 Comments

북한에서 강제수용소 생활까지 하다가 2009년 한국으로 건너온 탈북자 김광일씨는 한국이 “축복받은 사회”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김씨에게도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김씨 뿐 아니라 많은 탈북자들에게 가장 낯설고 어려운 점은 바로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입니다. 북한에서는 끼니 걱정만 하면 되니까 삶이 단순했는데, 한국에 오니까 스트레스가 더 커졌다고 말하는 탈북자들도 있죠.

한국에서 경쟁이 유달리 치열한 이유는 우선 나름 높은 판돈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재벌 대기업 정규 직원이 받는 대우와 소규모 하청 업체 직원이 받는 대우가 크게 다르니까요. 또 다른 이유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고, 거꾸로 실패는 오롯이 자신의 탓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신 성분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고,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게 거의 없는 북한과 크게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한국은 큰 성공을 이뤘지만, 그 성공은 넓게 퍼지지 못했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 서울에서 일하고 경쟁하며 살아가죠. 직업의 종류도 제한적입니다. 한국에서 직업의 종류는 일본의 3분의 2, 미국의 38% 수준입니다. 하나의 사다리에서 높이 오르지 못하면 다른 사다리를 탈 수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성공의 개념은 한 가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똑같은 실패를 두려워하면서 하나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셈이죠. 모두가 뱀의 머리보다는 용의 꼬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 행복한 소시민과 반문화적 혁명분자, 게으름뱅이, 중퇴자, 괴짜는 멸종위기종이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좁고 제한적인 성공의 개념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점으로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성공이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기업이 인재를 독식하고, 이로 인해 사회의 나머지 부분의 생산성이 터무니없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노동시장도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로 양분되어 있어서, 부모들은 충분한 뒷받침을 해줄 수 있을 때까지 아이를 갖지도 않고, 아이가 태어난 다음에는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교육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습니다. 그래서 출산율은 낮아지고, 인구는 고령화되어 가죠.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이유는 자신의 노력으로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도 얻기 위해서입니다. 탈북자들은 그러한 기회와 자유를 진정한 “삶의 질”이라 여긴 것이죠. 탈북자들이 삶의 질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처럼, 이제는 한국인들도 진정한 삶의 질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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