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작가들의 타협?
에즈라 보겔 교수의 저서 “덩샤오핑 시대”를 중국어 번역판에는 오리지널 영어판의 일부가 삭제되어 있습니다. 중국 언론이 당국의 지시로 80년대 동구권의 분열을 보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나, 천안문 시위 당시 덩샤오핑이 광장을 장악한 학생들에 정신이 팔려 고르바쵸프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젓가락으로 집은 덤플링을 떨어뜨렸다는 부분은 중국어판에 실리지 못했죠. 하지만 이 책은 미국에서 3만부가 팔린데 반해 중국에서는 65만부나 팔렸습니다. 보겔 교수는 “아무 이야기도 전하지 못하느니 90%는 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죠.
중국의 출판 시장이 커져가면서 이런 선택을 하는 미국 작가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충실하게 번역된 책들도 있지만, 성적인 묘사가 노골적인 책이나 중국의 역사와 정치를 논하는 책이라면 문학 작품의 미묘함이나 연구자의 윤리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중국 시장의 검열을 피할 수 없습니다. 높은 가격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판권을 사간 중국 출판사는 여태 이 책을 출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중국계 작가가 쓴 샹하이 배경의 탐정물의 경우, 중국 공산당에 대해 우호적이지 못한 부분을 없애기 위해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과 줄거리가 바뀌기도 했고, 샹하이에 범죄 도시라는 이미지가 씌워진다는 이유로 가상의 도시 H로 번역이 되기도 했죠. 심지어는 작가와 협의 없이 바뀐 부분도 있어서 이 작가는 이후 더 이상 중국에서는 책을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앨런 그린스펀도 자신의 허락 없이 책이 검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중국 시장에서 철수한 저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선인세가 줄어드는 위기의 시대에 자신의 작품을 보호하고 싶은 욕구와 먹고 살아야 하는 필요가 충돌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자 떠오르는 열강인 중국을 개척할 기회를 그렇게 고스란히 포기해 버리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반 독자들을 널리 겨냥하지 않는 학술서, 특히 중국에 관한 학술서를 쓰는 작가들은 선택의 기로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8년 간 중국 내 해외 도서 출판일을 해온 한 출판사 관계자는 작가와 중국 편집자 간 의견 조율 과정에서 고집이 훨씬 센 쪽은 바로 중국 편집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작가가 중국 출판사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나서도 출판이 엎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외 도서의 출판이 크게 늘어난 최근에도 변화의 조짐은 거의 없습니다. 중국 내 560개 출판사는 반드시 당에 충성심이 강한 인하우스 검열위원을 두어야 합니다. 검열위원을 통한 자체 검열이 끝난 후에도 다시 언론과 출판을 담당하는 중앙 부서의 허가를 거쳐야 책이 비로소 시장에 나올 수 있죠. 그러나 중앙 부서 단계에 가서 “실수”가 적발되었다가는 커리어가 끝장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철저한 자기 검열 체계를 갖추게 된 편집자들이야말로 가장 완고한 기준을 휘두릅니다. 사소한 수식어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검열을 통과한 부분이 이렇게 많다는게 오히려 놀랍죠.” 보겔 교수의 말입니다. (N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