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이기면 뭐든 다 해도 괜찮은가? – 터키의 껍데기 민주주의(zombie democracy)
2013년 6월 26일  |  By:   |  세계  |  No Comment

“아니, 내가 선거에서 세 번이나 압도적으로 이기고 당선됐는데 왜 이렇게 난리들이야?”

터키의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총리는 시위대를 향해 볼멘소리를 했을 지도 모릅니다. 유권자 다수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집권하는 건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선거제도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선거에서의 높은 득표율이 곧 대통령이나 총리, 혹은 집권당이 뭐든지 해도 좋다는 백지위임장일까요? 적어도 민주주의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은 선거에서의 득표율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여러 정당이 경쟁하는 대부분 유럽의 의원내각제 시스템에서 집권당의 득표율은 높아야 30% 내외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반대로 루카셴코(Alexander Lukashenko) 벨로루시 대통령은 과반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지만, 해당 선거는 부정선거 의혹이 짙었습니다. 헝가리의 오르반(Viktor Orban) 총리는 개헌 가능의석을 확보하게 되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권위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에르도안 총리의 정의개발당도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와는 무관하게 민주적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해 왔습니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그 정권을 비민주적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습니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가며 개혁을 추진했고 미국에서 폭스(Fox) 뉴스만 보고 있으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빨갱이 독재자라는 착각이 들 정도지만, 대처 시절의 영국과 지금의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야당과 야당 지지자들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이들을 지지자들과 같은 시민으로 포용하고, 이들이 내뱉는 쓴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시민들의 기본권이나 사법부의 독립, 언론의 자유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기본 원칙들입니다.

사실 에르도안 총리를 세 번 연속 뽑아주면서 터키 유권자들은 총리와 정의개발당에게 하고싶은 일을 열심히 추진해보라는 메시지를 던진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 하라고 뽑아준 거지 감투를 그냥 씌워준 건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민주주의 정부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싶다면 정책을 추진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는 겁니다. 에르도안 총리는 사법부를 장악하고 언론을 통제했고,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며 공격했습니다. 민주적으로 권력을 쟁취했지만, 권위주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겁니다.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이지만, 민주주의 그 자체는 절대 될 수 없습니다. 탁심광장의 시위대들은 반대하는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린 총리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모인 이들이었습니다. 예스맨만 앉혀놓고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만 갇혀 사는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껍데기만 남은 알맹이 없는 민주주의일 뿐입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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