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너무 많고 바쁘신가요? 그럼 당신은 대졸 고소득자예요”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것은 미국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일을 많이 한다고 느끼는 것은 오랜 기간 휴가를 떠나는 프랑스 사람들이나 유급 출산휴가를 받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람들과 미국인을 구분짓는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또 최근 건강 보험료나 대학 등록금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높아지고 기술 발전으로 인해 직장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미국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일 하는데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하는 시간이 오히려 줄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늘 바쁘다고 느끼는 걸까요?
지난 60년간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노동자들의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많은 선진국에서 노동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1950년과 2012년을 비교해보면 연간 노동 시간이 독일은 991시간, 프랑스는 684시간, 그리고 미국은 200시간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쁘다고 느끼는 이유는 두 가지 다른 종류의 ‘노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월급을 받는 직장에서의 노동이고 다른 하나는 집안일과 육아 노동입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서 여성들이 집안일과 육아에 쓰는 시간은 줄어든 반면 남성들의 집안일과 육아에 쓰는 시간은 늘어났고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남성이 직장에서 시간을 덜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1980년에는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남성들이 소득이 가장 낮은 남성들보다 적은 시간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2005년에는 고소득 남성들의 경우 주당 평균 43.1시간 일한 반면 저소득 남성의 경우 주당 39.7시간 일을 했습니다. 고소득 남성이 저소득 남성보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겁니다.
이는 단순히 일의 종류가 바뀌는 현상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뀐 결혼 문화도 이러한 변화에 한몫 하고 있습니다. 한 세대 전에 결혼은 정반대의 성격, 즉 일하는 남성과 가사를 돌보는 여성 사이의 결합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결혼은 점차 교육 수준과 야망, 사회 경제적 조건들이 유사한 사람들 사이의 결합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신이 직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쓸수록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사람과 결혼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또 모바일 기술의 발전은 정해진 노동 시간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매니저와 전문직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실제 노동(working)인지 아니면 일을 감시/관찰(monitoring)하는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북미 대륙의 노동자들의 경우 유럽이나 아시아에 비해 모니터링에 쓰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50여년 전, 성공(making it)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은 시간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득 불평등이 늘어나면서 ‘여가 시간의 불평등 (leisure inequality)’이라는 현상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즉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일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여가 시간이 늘어난 반면, 고소득의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정 반대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여가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즉 미국에서 할 알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것은 대학을 졸업한 고소득자라는 지위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The Atlan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