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기업의 건물 청소부를 통해 보는 불평등 (3/3)
2017년 9월 15일  |  By:   |  경제, 세계  |  No Comment

2부 보기

변속기와 스테이플러

자동차 제조사가 자사 제품에 필요한 변속기를 조달할 때는 당연히 여러 업체로부터 입찰을 받아 가장 싼 가격을 써낸 업체의 제품을 사는 식으로 진행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동차 제조사는 가장 좋은 품질의 변속기를 만드는 업체를 골라 거래하고, 물건이 좋으면 계속해서 신뢰가 쌓이며 거래를 이어갑니다. 싼 물건을 썼다가 1단 기어도 잘 변속이 안 되는 불량품을 시장에 내놓았다가는 자동차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자동차 제조사도 스테이플러 같은 간단한 사무용품을 살 때는 말 그대로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제품을 사다 쓸 것입니다. 브랜드나 기능은 큰 차이가 없을 테니까요.

노동자가 처한 상황도 어떤 맥락에서 보면 비슷합니다.

제품 엔지니어나 마케팅 책임자를 적재적소에 뽑아 쓰는 건 회사의 성패를 가를 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회사가 심혈을 기울여 제대로 된 사람을 뽑으려 하고 물론 전일제 정규직 노동자로 뽑고 오래 붙잡아두려 각종 혜택을 줍니다. 마치 변속기 같죠. 그런데 지난 세대를 거치며 회사들은 제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 노동자를 점점 스테이플러처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즉, 우수한 노동력을 높이 사는 대신 가능한 한 싼값에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회사의 핵심 역량에 가용 자원을 모두 쏟아붓고 나머지는 외주 업체에 위탁하라는 풍조가 자리잡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당장 애플 임원들도 본사 건물 청소부를 누구를 뽑고 누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더 좋은 아이폰과 컴퓨터를 만드는 데 온힘을 다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어떤 일에 대한 수요가 들쭉날쭉할 때도 회사가 해당 업무를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게 낫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업체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선보이기 전에 품질이 괜찮은지, 각종 문제는 없는지 미리 점검해보는 데는 단기적으로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이들은 제품을 출시하는 동시에 필요가 없어집니다.

사실 직접고용 형태보다 외주 업체를 통해 간접고용 형태로 계약을 맺고 일하면 급여나 보상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이론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가 로펌을 고용해 법률 관련 일을 처리할 때는 자체 법무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때보다 통상 훨씬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물론 법률 서비스가 독특한 영역이긴 하지만, 어쨌든 외부 업체를 통한 계약직이 반드시 값싼 노동력과 일치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회사가 갈수록 더 많은 기능을 외주로 위탁하면서 단지 경영상의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근거들이 쌓이고 있습니다. 회사들은 외주를 늘릴수록 인건비를 비롯한 각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회사들은 모든 직원들에게 똑같은 직장 의료보험을 들어줘야 하고 연금을 보조해야 합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 이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큰 혜택인데, 주요 기능을 외주로 돌리거나 계약직 채용을 늘리지 않는 회사들은 이 모든 비용을 고스란히 내야 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비슷한 임금을 받더라도 다른 비급여 혜택을 가능한 한 많이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와튼 경영대학원의 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회사들은 공평무사의 원칙을 저버린 것으로 낙인 찍히는 데 대한 부담이 상당합니다. 회사들은 경비원이나 행정 비서가 부사장과 받는 급여가 크게 차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이 신경씁니다. 실제로 시장에서 인정받는 가치보다 저숙련 노동자나 중간 정도 숙련 기술을 가진 노동자에게 돈을 더 주는 경향이 있죠.”

린다 디스테파노가 코닥의 비서직에 지원한 건 1968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부활절 주간이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코닥에 취직해 주급 87.5달러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값어치로 환산하면 연봉 3만2천 달러에 해당합니다. 그녀는 40년 동안 코닥에서 일했는데, 비서직을 거쳐 회사 출장을 관리하는 등 다양한 일을 맡았습니다.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이사들의 저녁식사를 챙기는 일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졸 출신 사원이 흔히 책임지고 맡아서 하는 일은 아니긴 했죠. 하지만 상사들로부터 신뢰를 받은 탓에 그런 일도 했던 것 같아요.”

코닥에서 성실히 일하며 린다는 번듯한 집을 샀고, 너무 낡기 전에 새 차를 살 수 있었으며, 가끔 공연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일하던 부서는 2008년 구조조정으로 해산됐고, 직원들의 출장 관리 업무는 외주 업체에 맡겨졌습니다. 당시 시급 20달러를 받던 그녀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그나마 벌이가 가장 좋은 자리가 마트 약품 코너에서 일하는 판매원으로 시급은 코닥에서 받던 급여의 절반도 안 되는 8.5달러였습니다.

 

로체스터 vs. 쿠퍼티노

로체스터를 조금만 돌아다녀보면, 이스트만 코닥이라는 회사가 이 도시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도심 어디서든 코닥 타워가 눈에 들어오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극장 이름도 이스트만 극장입니다. 지금은 주차장이 텅 비어있는 거대한 건물은 코닥 파크라고 알려진, 과거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었습니다.

코닥이 과거에 발간한 연례 보고서를 보면, 경영진이 코닥이 창출하는 일자리와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연례 보고서의 제일 첫 장에는 항상 미국과 전 세계에서 코닥의 직원이 몇 명이나 되며 이들에게 지급하는 임금과 각종 혜택이 어느 정도인지가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애플은 곧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새로운 본사 건물로 이주할 예정입니다.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에서 애플은 당연히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도시 전체 일자리의 40%를 애플이 책임지고 있고, 지역 사회의 환경 개선금과 인프라 건설 지원금으로 7천만 달러를 애플이 부담했으니, 쿠퍼티노는 곧 애플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쿠퍼티노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돈이 많은 부자들에 국한됩니다. 중위 집값이 한 채에 190만 달러, 20억 원이 넘으니 중산층도 명함을 내밀 수가 없죠.

사비타 바이디야나탄 쿠퍼티노 시장은 아직 애플 CEO인 팀 쿡을 만나본 적이 없다며 말했습니다.

“애플 본사를 유치했다는 건 분명 도시의 자랑거리입니다. 하지만 애플은 스스로를 글로벌 대기업으로 여기지, 쿠퍼티노에 있다는 걸 딱히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긴 해요. 중산층도 발 붙이기 힘든, 상류층 아니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 동시에 문제입니다.”

애플 건물의 청소부 라모스 씨는 쿠퍼티노에서 떨어진 산호세에 있는 방 두 개 딸린 아파트에서 자식 4명과 함께 삽니다. 월세는 2,300달러. 가끔 초과근무를 해서 그녀가 버는 세전 수입은 연봉으로 34,520달러입니다. 월세만 매달 내도 27,600달러로, 그녀와 가족이 쓸 수 있는 한 달 생활비는 600달러 남짓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끔 있는 초과 근무를 빠지지 않고 해서 수당을 받고, 10대가 된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로 벌어오는 돈을 보태 간신히 생계를 꾸려가는 수준입니다.

그녀의 근무시간은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입니다. 가끔 다른 청소부가 출근하지 않으면 그 몫까지 할 일이 많아집니다. 초과 근무가 생겨 그만큼 수당을 받는 건 좋지만,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바래다주기 전까지 잠깐이나마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올해 그녀가 속한 미국 서비스노조 서부 지부에서 임금 협상을 도와준 덕분에 그녀는 시급 60센트 오른 급여를 받게 됐습니다. 코닥의 경우 노조는 많지 않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전반적으로 노조 조직률이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높았고, 코닥 같은 회사는 노조 설립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의 임금을 항상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습니다.

애플의 노동자들에게 단결이나 연대는 가망 없는 화석화된 언어입니다.

“똑같이 청소하는 일을 한다고 해도 각자 맡은 일만 하고 퇴근하게 근무 일정이 짜여 있어요. 일터에서 잠깐잠깐 마주치는 것 외에는 서로 볼 일도 없고요.”

라모스 씨가 스페인어로 말했습니다. 반면 1980년대 코닥에서 청소부로 일을 시작했던 에반스 씨가 기억하는 당시 일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에반스 씨는 코닥에서 임원까지 승진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휴렛패커드에서도 임원직을 거쳐 현재는 인사 컨설팅 업체인 머서의 정보 책임자로 있습니다.

“이스트만 코닥은 직원들을 분명히 신뢰했어요. 가족 같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회사에 보탬이 될 만한 기술을 배우거나 어떤 일을 해보고 싶다고 의사를 표시하면 분명 회사 안에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기꺼이 필요한 지원을 해주고 도움을 주려 했어요.”

이제는 정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책 “충성의 시대는 끝났다(The End of Loyalty)”를 쓴 저자이자 드러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릭 바르츠만은 말합니다.

“현재 테크 대기업들을 보면 전부 다 21세기형 사내 복지라 부를 만한 것들을 하고 있죠. 회사 안에 푸스볼 같은 게임기도 들여 놓고, 구내식당에는 신선한 초밥이 항상 있고, 뭐 그런 거요. 하지만 그런 걸 누릴 수 있는 직원들은 정말 얼마 되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서 그 혜택을 받는다면 정말 좋은 일이죠. 교육을 많이 받고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아 관리직까지 오르면 정말 일할 맛 날 겁니다.”

하지만 21세기 경제는 평범한 노동자 수백만 명을 그러한 혜택에서 배제했습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아낌없이 투자해 보유하고 같이 성장하는 자산인 대신, 가급적 아끼고 줄여 쓰면 좋은 비용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뉴욕타임스)

원문보기

1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