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정학적 질서 재편과 함께 제동이 걸린 신자유주의 세계화 (1)
2015년 4월 29일  |  By:   |  세계  |  No Comment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세계화의 첨병이었던 다국적기업들에게 정치, 지정학적 질서는 한동안 굳이 휘말려들거나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는 문제였습니다. 셸(Shell), 제네럴 일렉트릭(GE)과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양성한 전문가들 가운데 지정학 전문가들이 없지 않았지만, 이들의 중요성은 근래 들어 매우 높아졌습니다. 곳곳에서 근본적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 불안정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3년, 대표적인 사모펀드 가운데 하나인 KKR은 미군 중동 사령관과 CIA 국장을 지냈던 페트레이어스(David Petraeus)를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질서와 관련한 조언을 총괄하는 국제 전략실장으로 스카웃했습니다. 올해 초 국제 정세, 정치 관련 컨설팅 기업인 매크로 어드바이저리 파트너(Macro Advisory Partners)도 영국의 정보기관인 M16 국장을 지냈던 소어스(Sir John Sawers)에게 경영 총책을 맡겼습니다.

세계를 무대로 경영을 하는 기업들이 점점 더 정치학자, 국제정치 전문가, 전직 외교관, 군 출신 인사들을 임원으로 모셔가고 있습니다. 전략 컨설팅 회사 매킨지(McKinsey)의 상무이사인 바튼(Dominic Barton)은 “아마 2차 세계대전 이후로 국제 정세가 지난 3년처럼 불안정하게 변덕스러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며 “대부분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화 전략을 철회하거나 해외 영업을 중단하지는 않고 있지만, 적어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각 지역의 분쟁 상황, 갈등이 되는 이슈를 짚어주는 기업 컨설팅에 대한 수요는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러시아가 크리미아 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하고, 중동 지역에선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철군 이후 발생한 권력의 공백을 틈타 테러 조직이 아예 나라를 세우고 활개를 치고 있으며, 중국의 행보는 화평굴기(和平崛起)라는 원칙을 무색케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 유로존의 경기 침체는 하나의 유럽이라는 야심찬 실험 자체를 좌초시킬 지경으로 몰고 갔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4반세기 동안 지속된 미국식 (혹은 서구식) 시장경제 기준에 입각한 세계화의 시기가 끝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자유시장경제가 하나의 대원칙이 되고 그 아래서 많은 사람들이 더욱 가까워지면 서로 다투는 대신 모두 함께 풍족해질 거라는 장밋빛 전망 아래 우리는 지난 4반세기를 달려왔습니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Friedman)은 1999년 “맥도날드가 있는 나라들끼리는 절대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전 미국 국무장관은 2000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 개방, (진척 속도는 다르지만) 민주주의의 확산, 개인의 자유를 향한 진전이 뚜렷하다. 어떤 나라는 여전히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분리해 추구하고, 어떤 나라는 여전히 근대화 자체를 백안시하지만, 적어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역사의 정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다소 지나치리만큼 확신에 찬 어조의 주장, 아니 선언에 가까운 글이긴 해도 어쨌든 세계화에 수반된 필연적인 시장경제의 확산은 질서에 새롭게 편입되는 나라의 경제 개방을 하나하나 관철시켰습니다. 브릭스(BRICs)가 무엇의 약자인지 이제는 모두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신흥 경제대국으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한데 묶어 일컫는 말이죠. 이 말을 처음 쓴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의 수석 경제학자 짐 오닐(Jim O’Neill)의 눈에는 물론이고 미국과 서구의 자본가, 기업가들에게 세계화는 브릭스와 같은 어마어마한 시장의 굳게 잠겼던 문을 활짝 열어준 고맙고 대단한 기회였습니다. 실제로 세계를 무대로 한 다국적기업은 탈냉전 시대에 눈부신 성장을 이룩합니다. 9.11 테러와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진 어수선한 정세도 근본적인 세계화의 흐름에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크리미아 반도 강제 합병과 그 이후 일어난 우크라이나의 소요 사태는 이전의 위기와 다릅니다. BRICs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 G8의 일원인 러시아, 냉전 시대에 미국과 샅바 싸움을 했던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 러시아가 위기의 시작과 끝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이라크, 리비아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와 세계 경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의 차원이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어를 쓰는 러시아계 민족이 사는 곳은 어디든 러시아 영토로 만들어버리거나 적어도 그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푸틴의 공세적인 방침은 냉전 시대 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흐르는 걸 막기 위해 체결했던 소련과 서유럽 국가들 사이의 불가침 조약인 헬싱키 조약을 위반한 것일 뿐 아니라 세계화가 분쟁을 종식시키고 모두가 다 같이 잘 사는 낙원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거란 환상을 산산조각내 버렸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근대 국가들이 상당히 호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 기치 아래 국가를 형성하고 무력에 호소하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던 19세기 메테르니히 시대로 돌아가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미국 공화당의 외교정책 전문가인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이 올해 초 민주주의지(Journal of Democracy)에 기고한 글의 분위기를 보면 15년 전 콘돌리자 라이스의 글에서 보이던 자신만만함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케이건은 시장경제 체제가 전 세계에 확산되는 게 순리라는 낙관론에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러시아나 중국의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서유럽의 민주주의보다 더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유럽의 민주주의라고 해봤자 대부분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실험이기도 하다. 러시아나 중국의 전제 정치(autocracy)는 서구의 민주주의보다 그 역사의 뿌리가 깊다. 민주주의가 인류 역사가 나아갈 순리라고 해도 전제 정치보다 역사가 짧고 뿌리가 얕은 것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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