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역사 교과서 전쟁, 제 2막
2014년 7월 8일  |  By:   |  세계  |  No Comment

동아시아에서 역사 교과서는 민족주의의 바로미터이자, 국가 간 분쟁 대리자의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해 왔습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영토 분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는 최근, 역사 교과서 전쟁은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번에는 크게 두 가지 점이 과거와 다릅니다. 첫째는 갈등이 중국과 일본 외 역내 다른 지역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국내에도 전선이 형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장은 2012년 12월에 시작되었습니다. 일본 자민당이 현행 역사 교과서가 자학 사관에 기초한 이념적 편견을 담고 있다며, 교육에서 “애국적” 가치를 되살려내겠다고 공약한 것이죠. 여러 학자와 교사들이 이런 공약에 불편해했지만,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아베 정부는 교과서 개정에 착수했습니다. 개정 작업의 주안점은 역사적 해석에 있어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들도 더욱 명확하게 기술하고, 교과서 제작 시 주변국(한국과 중국)의 정서를 헤아려야 한다는 규정인 이른바 “이웃 나라 배려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장이 지역의 교육까지 책임지도록 해 정치에 의한 교육 통제를 강화하는 것도 아베 정부의 계획입니다.

주변국들은 당연히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일본이 센카쿠 열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자 중국은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라며 반격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 사실이 중국의 주장을 확인해주지는 않습니다.) 한국이 지배하고 있는 독도를 일본이 다케시마라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자, 한국도 “거짓 주장으로 반목과 분쟁의 씨앗을 심고 있다”며 분노했죠.

국내의 역사 교과서 분쟁도 두드러지는 현상입니다. 작년,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는 군사 독재의 성과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 교과서를 승인했습니다. 여당은 국정 교과서를 만들자고 제안했죠.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육에 대한 정치의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조치입니다. 대만 정부도 올해 2015년부터 발효되는 역사 교과서 제작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국제 규범을 따르고 식민지 시대에 대한 부정확한 기술을 수정하겠다는 취지인데, “일본 지배”를 “일본 식민 지배”로 고쳐 쓰는 식입니다.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 전쟁은 국제 정치라는 틀로 나라의 역사를 바라보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례로 중국의 “애국주의적” 역사 교과서는 외세의 침략을 강조해 국내의 계급 투쟁이나 마오쩌둥 시대의 기근, 폭력 등을 상대적으로 덮어버렸죠. 그리고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자기 자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도자들의 내러티브를 충실하게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내분도 함께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 일본 집권당은 지난 60년간 교육 현장이 좌파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며 정치적 공세를 퍼부었죠. 한국에는 실제로 일본의 식민 지배에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학자들이 있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교과서에 손을 대려 한 박근혜 정부의 시도는 정치적인 반발을 불렀습니다. 지방 선거에서 진보를 표방한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죠.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교과서 전쟁이 보수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 다툼의 연장선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대만에서도 야당이 정부의 교과서 지침에 반대해, 야당 우세 지역을 중심으로 저항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 강점기에 대한 의견도 갈립니다. 대만 원주민이나 네덜란드 지배, 중국 본토와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기술할지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죠.

물론 동아시아에도 학생들에게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이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진 학자와 정책입안자들이 있습니다. 나라마다 역사의 논쟁거리들을 논의하는 기구를 세우기도 했고, 최근에는 한국 대통령이 한중일 공동 역사 교과서 집필을 제안하기도 했죠. 하지만 4년 전 비슷한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면 지금의 역사 교과서 전쟁도 역사책에 실리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추세로는 이 전쟁을 어떻게 서술할지 합의를 보는 일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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