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리유" 주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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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6일. [칼럼]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영광, 신세대에는 무슨 의미일까?
본 칼럼은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이 치러지기 전에 쓰였습니다. 저는 이번 월드컵 경기를 파리 14지구의 변두리의 술집과 카페에서 시청했습니다. 일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이민자 인구가 많은 곳이고, 마약, 갱단, 경찰과의 충돌과 같은 사회 계층 아래쪽의 특징이 종종 드러나는 지역이죠. 지금까지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대표팀의 승전보가 전해질 때마다 거리는 차 위로 올라가 걸어 다니는 청년들과 울려 퍼지는 경적 소리, 맥주 세례로 가득 찼습니다. 4강전에서 벨기에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자, 축구팬들은 약속이라도 한 더 보기 -
2016년 9월 9일. 파리 북부 외곽도시에 사는 중국계 프랑스인의 생활
지난 9월 4일, 중국계 주민 수천 명이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과 나숑 광장을 오가며 아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인종주의를 고발하는 행진을 벌였습니다. 지난 8월 초, 49세의 중국계 남성이 파리 북부 외곽 오베르빌리에(Aubervilliers)에서 강도에게 습격당한 후 숨졌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22세의 중국계 대학생, 다비드 류(David Liu, 가명)가 오베르빌리에에서의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지난 8월 14일, 오베르빌리에에서 있었던 차오린 장(Chaolin Zhang, 8월 강도 습격 후 후유증으로 사망한 중국계 재단사)에 대한 추모 행진이 시작이었습니다. 아시아 더 보기 -
2015년 10월 29일. 소요사태 10년 후의 방리유
2005년의 봉기는 당시 프랑스 도심 교외 지역(방리유)이 겪어야 했던 사회적인 공황을 드러내었습니다. 10년 후, 이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더 보기 -
2013년 3월 1일. 佛, 여전히 소외 받고 있는 방리유
세브랑(Sevran)은 파리 북동부 근교에 위치한 인구 5만 명 남짓 되는 작은 도시입니다. 주민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알제리, 모로코,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고, 3/4이 정부 임대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돈으로 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비율은 36%로 프랑스 전체 평균보다 세 배나 많은 전형적인 방리유(banlieues) 지역입니다. 지난 2005년 이른바 ‘방리유 사태’로 일컬어진 젊은 이민자들의 대규모 폭동 이후 프랑스 정부는 총 440억 유로(우리돈 63조 원)를 들여 9년에 걸친 방리유 재건에 나섰습니다. 더 보기 -
2012년 11월 2일. 佛 최악의 폭동 촉발시킨 2005년 두 청년의 죽음
2005년 발생한 이른바 ‘방리유(banlieue) 사태’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격렬하고 폭력적인 시위로 기록돼 있습니다. 가난한 이민자들이 사는 파리 근교의 빈민가를 일컫는 방리유는 늘 마약과 범죄의 온상으로 여겨졌고, 동네를 순찰하는 경찰들은 어린 청소년들에게도 폭압적인 불심검문을 일삼았습니다. 당시 17살이었던 지예드와 15살 부나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경찰차를 보고 본능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추격전 끝에 변전소에 숨어들었던 두 청년은 감전돼 목숨을 잃었고, 이를 계기로 방리유의 젊은이들이 대대적인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을 쫓아가 결과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넣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