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북부 외곽도시에 사는 중국계 프랑스인의 생활
2016년 9월 9일  |  By:   |  세계  |  3 Comments

지난 9월 4일, 중국계 주민 수천 명이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과 나숑 광장을 오가며 아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인종주의를 고발하는 행진을 벌였습니다. 지난 8월 초, 49세의 중국계 남성이 파리 북부 외곽 오베르빌리에(Aubervilliers)에서 강도에게 습격당한 후 숨졌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22세의 중국계 대학생, 다비드 류(David Liu, 가명)가 오베르빌리에에서의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지난 8월 14일, 오베르빌리에에서 있었던 차오린 장(Chaolin Zhang, 8월 강도 습격 후 후유증으로 사망한 중국계 재단사)에 대한 추모 행진이 시작이었습니다. 아시아 출신 주민들의 시위는 이전에는 2010년 파리와 벨빌, 그리고 2011년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벌어졌습니다. 이번 행진을 통해 아시아계 주민들은 우리 도시에 더 많은 경찰을 배치하고 감시카메라를 달아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저는 행렬의 선두에 있었습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저를 알아봤습니다. 행진 당일 저녁부터 제 부모님의 차량 중 한 대가 피해를 보았고, 3일 후 나머지 차량도 파손되었습니다.

오베르빌리에는 작은 동네이니까요.

 

“그래서, 개고기는 맛있어?”

저는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가족은 제가 7살 때 오베르빌리에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바로 여기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은 저를 “중국놈(chinetoque)”으로 취급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저희 부모님이 중국 레스토랑을 하는지 물었고, “그럼 개고기도 하겠네? 뱀은? 맛있어?”라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주기적으로 저는 “넴이나 먹고 너네 집으로 꺼져”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넴은 쌀밥이나 춘권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여기에 소지품 강탈이 더해졌습니다. 몇몇 이들은 교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다가 하굣길에 저를 뒤따라오기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비싼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돈도 없었고, 휴대폰도 없었죠. 그들은 제게서 사탕을 가로채 가거나, 제가 다른 친구한테서 빌렸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두 개를 빼앗기도 했습니다.

 

의미를 잃어버린 단어 : “중국인”

그때부터 저는 젊은이들의 무리와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인! 뭘 쳐다봐? 뭐가 문제야?”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무리를 보게 되면 저는 가능한 한 그들의 눈에 띄지 않고 문제에 휘말리지 않도록 길을 돌아가곤 했습니다.

게다가 “중국인”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이 단어는 특정 출신을 의미하지 않으며, 누군가 약한 이들, 잠재적인 희생자를 의미합니다. 중국계 공동체는 아직도 이러한 선입관의 표적이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중국인 관광객인지, 혹은 파리 외곽에 십수 년 동안 거주하고 있는 사람인지와 관계없이 강도들의 머릿속에는 중국인이면 분명히 주머니에 현금을 가득 넣어 다닐 것이라는 생각밖에는 없습니다. 그것 말고도 중국계 이민자 1세대의 경우에는 언어의 문제도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경우에도 몇 차례나 가방을 도둑맞았지만, 거의 경찰서에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15세가 되었을 때, 부모님께서는 파리 시내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에 저를 보내셨습니다. 교육 내용은 엄했으나 학내 분위기는 훨씬 좋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아시아계 친구들만 사귀었습니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이해하고 있었고, 결국 자연스럽게 아시아계끼리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저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 세대 동안 프랑스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프리카계, 북아프리카계 학생들이었습니다. 내성적이었던 저도 마음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습관을 놓지 못합니다. 지금도 오베르빌리에에 돌아갈 때면 밤 10시 이후에는 전철을 타지 않으며, 사람들이 3~4명 모여있는 것을 보면 그들을 피해 돌아갑니다.

파리에서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실 때면, 저는 스마트폰을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예전에 쓰던 노키아를 집어 듭니다. 저는 검문을 대비한 신분증과 당장 사용할 돈 정도만 들고 다닙니다. 그리고 부의 상징으로 여겨질 수 있는 브랜드 상품을 입거나 가지고 다니는 일도 피합니다.

제가 지나갈 때면, “어이~ 중국놈~!” 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몇몇은 양옆으로 찢어진 눈을 따라 한다고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늘어뜨리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진절머리가 납니다.

 

침묵의 문화

지난 8월 14일, 제 부모님께서도 차오린 장을 기리기 위한 행진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진의 맨 앞에 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군중 속에 섞여 있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게 부탁 – 다음 시위 때에는 트럭 위에 오르지 말고 현수막도 들지 말라고 제게 말씀하십니다.

중국 문화에서는 불편할 일을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시선이 자신에 주목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며 문제가 있더라도 이를 드러내기보다 숨기기를 선호합니다.

행진하고 있을 때 우리는 “중국계 공동체는 침묵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라고 외쳤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는 조용히 있었으며, 다른 이들의 주목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Julia Mourri (L’Obs / Le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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