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분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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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7일.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 미투 운동의 시대에 발 맞추어 달라집니다
뮤직 페스티벌은 언제나 탈출과 공동체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미투 운동의 시대를 맞이해 무대를 장식하는 아티스트 뿐 아니라 축제의 고질병과도 같았던 성추행과 성폭행 문제에도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축제 관람객들이 만연한 캣콜링과 원치 않는 신체접촉, 그 밖에도 더 심각한 범죄 행위를 고발한 일은 거의 모든 대규모 행사 때마다 있어왔습니다. 작년 코첼라 밸리 페스티벌에 참석했던 여성들의 경험담을 묶어서 보도한 “틴 보그(Teen Vogue)”의 기사는 큰 화제가 되었죠. 타임지도 보나루,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등 대규모 국제 행사에서 음악 더 보기 -
2018년 12월 31일. 2018년, 지나치게 주목받은 주제와 미디어가 지나친 기사거리들
워싱턴발 미디어 버블은 가장 효과적으로 전지구적 바이럴 기사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보도 매체들 간의 지나친 경쟁으로 특정 사건이 과도하게 다루어지기도 하고, 중요한 이야기가 묻혀버리는 경우도 생겨나죠. 세계 다른 지역의 매체들은 (BBC월드 정도를 제외하고는) 미국 매체가 선정한 기사거리들을 그대로 받아쓰기 바쁩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미국 미디어로부터 끊임없는 관심을 받은 주제는 트럼프 정부의 혼란스러운 회전문식 인사 정책과 러시아와의 결탁에 대한 혐의였죠. 특검의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 관심이 지나친 것이었는지 단정하기 어렵겠지만, 더 보기 -
2018년 12월 21일. [제리 살츠 특집 4] 시대가 변하면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가르는 기준도 바뀔까요?
시대가 바뀌면 형편없던 예술품이 걸작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형편없는 예술은 언제 봐도 형편없다. 뒤늦게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예술품은 원래 처음부터 훌륭한 작품이었는데 과거에는 그저 우리가 이를 알아보는 눈이 없다가 뒤늦게 그 가치를 깨달았을 확률이 높다. 시간이 예술의 가치를 변화시키는 예들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예술품을 두고 좋다거나 나쁘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대신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자. 놀라움, 더 보기 -
2018년 12월 17일. 일터에서의 성평등, 전제조건은 집안일의 평등입니다
미국인의 소득 트렌드에 대한 최근의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2001년부터 2015년 사이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여성은 49센트를 벌었습니다. 이는 여성의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과 임금 격차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죠. 동시에 일터에서 성별 간 평등을 지지하는 경향과 모순된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불일치를 설명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일터에서의 태도가 아니라 가정 내의 역학이 관건이라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직장에서의 성평등을 지지합니다. 일자리가 부족할 때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한다고 답한 미국인의 더 보기 -
2018년 12월 14일. 진실로 둔갑한 거짓, 가짜뉴스는 어떻게 편견을 만들어내나 (3/3)
2부 보기 블레어 씨는 지난 2년 동안 수천 편의 가짜뉴스를 만들어냈습니다. 매번 기본적인 틀은 그대로 두고 내용만 조금씩 바꿔서 내보내는 가짜뉴스에 거의 매번 똑같은 편견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똑같이 속아 넘어갔습니다. 블레어 씨는 실제로 자기가 올린 가짜뉴스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확인해본 적은 없습니다. 대개 글을 올린 뒤 1분 사이에 평균 8회, 15분 안에 평균 160회, 그리고 한 시간 안에는 1천 번 넘게 공유되죠. “우리 페이지는 그야말로 썼다 하면 대박이다. 더 보기 -
2018년 12월 10일. “백인의 눈물(white tears)”을 조롱하면 안 되나요?
인종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오해를 낳는 일이 종종 발생하죠. 또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이 논의를 진전시키기도 하지만 고착 상태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런 단어의 예로 “하얀 눈물(white tears)”을 꼽을 수 있죠. “하얀 눈물”은 자신의 백인 특권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화를 내는 백인들을 놀릴 때 쓰는 표현입니다. 자신이 인종 문제를 논하면 곧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힌다고 생각하는 백인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미국의 종말을 뜻한다고 더 보기 -
2018년 12월 6일. 진실로 둔갑한 거짓, 가짜뉴스는 어떻게 편견을 만들어내나 (2/3)
1부 보기 블레어 씨는 거기까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고는 다시 한번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사진 속 백인 여성은 물론 첼시 클린턴이 아니었습니다. 백악관 참모로 일했던 호프 힉스였습니다. 흑인 여성도 미셸 오바마가 아니라 트럼프 보좌관을 역임한 오마로사 뉴먼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진 속 행사에 오바마도, 클린턴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속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모욕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진이나 글이나 터무니없는 것들을 억지로 엮어서 마구잡이로 뒤섞어놓은 것에 불과한 겁니다. 더 보기 -
2018년 12월 5일. [칼럼] “진보 편향”이라는 비판을 기자들이 지나치게 의식하는 건 아닐까요?
최근 저는 기자들이 “진보 미디어”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기자들은 이를 피하고자 자신도 모르게 보수주의자들을 옹호하거나, 더 중요하게는 최근 국가의 역사에 중요한 교차점에 서 있는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2016년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미디어가 도널드 트럼프의 수많은 미심쩍은 거래들보다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을 상세하게 더 자주 알렸던 것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이방카 트럼프가 공무에 개인 이메일을 사용했다는 최근 더 보기 -
2018년 12월 3일. 혐오와 편견을 “질병”으로 볼 수 있을까?
10여년 전, 저는 한 정신의학 저널에 “편협함이 정신 질환인가?”라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당시 일부 정신의학자들은 일상 생활을 방해하고 망상에 가까운 수준에 달하는 극단적인 편견을 “병적인 편협함(pathological bigotry)”이라는 명칭의 질병으로 공식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 의학적, 과학적 이유를 들어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일부 편협한 사람들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고, 일부 정신 질환자들이 편협함을 드러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편협함 그 자체를 질병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당시 제 주장이었죠. 하지만 더 보기 -
2018년 11월 29일. 진실로 둔갑한 거짓, 가짜뉴스는 어떻게 편견을 만들어내나 (1/3)
컴퓨터 모니터 석 대에서 나오는 불빛을 빼면 아무런 조명도 없는 어두침침한 방. 크리스토퍼 블레어(46) 씨는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인은 이미 출근했고, 아이들도 학교에 간 오전. 집에 혼자 남은 블레어 씨는 오늘도 늘 가는 자신의 웹사이트로 출근 도장을 찍습니다. 자판에 올려놓은 손은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신중하게 블레어 씨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블레어 씨의 머릿속은 ‘오늘은 어떤 뉴스를 만들어 사람들을 낚아볼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합니다. “긴.급.속.보. (BREAKING)” 독수리 더 보기 -
2018년 11월 26일. 세계적인 자살율 감소, 그 배경은?
2008년 금융 위기를 다룬 영화 “마진 콜(Margin Call)”에서 한 트레이더는 월스트리트의 한 건물 옥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낭떠러지에 섰을 때 느끼는 감정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에요. 내가 뛰어내릴까봐 무서운 겁니다.” 자살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곤 합니다. 한편으로는 끔찍하지만, 마음 속 가장 어두운 한 구석에서 끌림을 느끼기도 하죠. 자살은 가장 파괴적인 형태의 죽음입니다. 자녀의 자살은 부모에게 최악의 악몽이고 부모의 자살은 자녀에게 평생 갈 상처를 안기죠. 자살이 드러내는 것은 한 개인의 고통 더 보기 -
2018년 11월 12일. 잘못된 비유는 위험합니다
브렉시트와 관련해 “케이크를 갖고 먹는다(to have your cake and eat it)”는 표현이 종종 등장하지만,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케이크를 갖고 나서 먹는 것은 원래 행위의 자연스러운 순서이기 때문에 역설이 아니죠. 원래 표현인 “케이크를 먹고 또 갖기도 한다(eat your cake and have it too)”는 표현에는 조금 더 포스가 있습니다. 브렉시트에 대한 비유 가운데 약간은 농담이 섞인 말이었죠. 조금 더 설득력을 지닌 비유들도 있습니다. 동시에 위험한 비유죠. “딜(deal, 거래)” 관련 비유를 살펴봅시다. 보통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