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여긴 굶주리고 저긴 식량 남고…이 또한 ‘정치의 실패’다
2024년 5월 7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3월 18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20세기 정치, 외교, 그리고 대중문화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을 기억하실 겁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을 한자리에 모은 건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던 기근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지구 한편에선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데, 반대편에선 수많은 사람을 먹이고도 남을 식량이 버려진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어느덧 그런 역설적이고 잔인한 통계에 익숙해지고 말았습니다. 인류는 이미 80억 명 가까운 전체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10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실제로 생산하는 식량이 그 정도이고, 잠재적인 생산력을 고려하면 생산량은 얼마든지 더 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류는 기아와 기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문제는 생산량이나 생산력보다도 분배입니다. 남아도는 식량이 필요한 지역으로 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인이 따로 있다는 거죠. 우리는 특히 식량이 국경을 넘지 못하는 요인, 장벽이 무언지도 안타깝게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전문 번역: 세상에 기근이 사라질 것이란 예측은 틀렸습니다

 

세계평화재단 사무총장 알렉스 드 발은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정치를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더디지만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던 전 세계 식량 위기가 최근 들어 다시 악화한 직접적인 이유로 드 발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만연한 부정부패를 꼽았습니다. 두 가지 모두 결국, 정치의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할 식량을 생산하는 데 중요한 지속가능한 친환경 농법의 보급과 정착이 더딘 것도 결국 정치의 실패로 볼 수 있습니다. 인류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과 제도가 있다면 이를 확립하고 시행하며, 걸림돌을 제거하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그 이해관계를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이 더 지났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밀 등 주요 곡물을 생산하는 곡창 지대로 전 세계 식량 생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곡창지대가 전쟁터가 됐으니, 전 세계 식량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테러 공격과 그에 대한 반격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강행해 온 군사 작전으로 인해 중동 지역 정세는 급격히 악화했고, 홍해는 민간 선박의 안전한 통행마저 보장되지 않는 바다로 변해 버렸습니다. 두 전쟁은 서방 세계가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만큼 서구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그전부터 수단이나 예멘 등지에선 이미 오랫동안 끊이지 않은 내전으로 인해 식량 위기가 고질적인 문제가 돼 있었습니다.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사이의 미국 외교

전 세계 식량 생산과 공급, 분배에 영향을 끼치는 국제 정세가 난관에 부닥친 상황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식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규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대국 미국의 선택입니다. 마침 미국이 올해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르고, 선거에 나선 두 후보가 그리는 비전이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갑니다. 알렉스 드 발이 원인으로 꼽은 전쟁도, 부정부패도 하루아침에 해결하는 건 불가능한데, 식량 원조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는 미국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국제적인 규범 자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올해 대선에서 다시 맞붙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은 세계적인 식량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에서도 다릅니다. 바이든이 기존의 국제기구, 구호단체를 통해 미국이 자금을 후원하는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을 선호한다면, 트럼프는 미국에 뚜렷한 이득이 되지 않는 일에 돈을 쓰는 데 난색을 보일 겁니다. 제아무리 좋은 취지로 운영되는 국제기구라도 미국이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나올 확률이 높죠.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뭐가 더 좋고 나쁜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정치란 것이 원래 선과 악을 구분해 악을 처벌하고 선을 장려하는 일이 아니라,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의 의사를 좀 더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의견을 나누고 모으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미국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어떤 미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식량 위기에 관한 인류의 대응도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애꿎은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토대로 하는 ‘전통적인 안보’ 분야에서는 냉전 이후 유지해 온 패권국가의 모습을 보이지만, 반대로 ‘비전통적인 안보’, 즉 군사력이나 경제력 외의 사안에서는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입니다. 비전통적인 안보 가운데 대표적인 분야가 ‘식량 안보’인데, 미국은 물론 식량 원조 규범을 집행하는 기관에 가장 많은 돈을 내는 나라지만, 상대적으로 국내 정치에서 인기를 끌 만한 요소가 부족한 분야에서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그 결과, 비전통적인 안보에서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탓에 패권국가가 부재한, 일종의 힘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현실주의 세계관도, 국가 간의 협력과 국제기구의 역할을 당연한 것으로 가정하는 이상주의 세계관도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전 세계적인 기근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렉스 드 발은 칼럼에서 “인도주의적 지원에는 당적이 따로 있을 수 없다”고 호소했지만, 오는 11월 미국 선거에서 어떤 당이 승리를 거두느냐에 따라 식량 위기에 대한 해법은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가 실패하면서 전 세계 식량 위기가 불거졌지만, 정치를 통해 이를 해결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