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팬데믹 시대, 일터에서의 성별간 격차가 커질 수도 있다?
BBC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재택근무가 일반화되었다가 또 폐쇄됐던 일터가 다시 열리면서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떤 변화는 다시 적응하면 그만인 것들이지만, 일터의 구성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옵니다. 회사가 재택근무를 어느 정도 허용하는 유연 근무제를 시행하게 되면, 여성과 남성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300명을 대상으로 한 영국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녀를 둔 여성의 69%는 팬데믹이 끝나도 일주일에 최소 1회는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고 응답했습니다. 반면, 같은 답을 한 아버지의 비율은 56%로 더 낮았습니다. 팬데믹 후 (전통적인 의미의) 사무실은 남성 중심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나아가 가정에서 여성의 가사 부담을 증가시키고, 일터에서 여성의 승진 가능성을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이 여성의 경력에 짐이 되는 현상이 더욱 악화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팬데믹 기간 중 여성의 육아 및 가사 부담이 늘어났고, 육아를 위해 일을 줄이거나 조정한 쪽은 부부 중 여성이라는 사실이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단순히 팬데믹이 종식되고, 출퇴근이 가능해진다고 해서 여성들이 재택근무를 곧장 접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일터에서의 성 역할을 연구하고 있는 오클라호마대학 장슬기 교수는 “여성들이 가족 관련 일들을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데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며, 팬데믹 기간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그와 같은 스트레스를 감추고 일터로 돌아가는 것에 더 큰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임금 격차 역시 여성을 가정에 머무르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부부 중 돈을 덜 버는 사람이 가족 관련 급한 일들을 처리하게 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여성이 재택근무를 택하거나 일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남성이 있을 곳은 일터, 여성의 자리는 가정”이라는 사회적인 통념이 이 상황에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재택근무에는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가도 따릅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이미 남성에 비해 커리어, 임금, 승진 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에게 더 크게 다가옵니다. 성 역할에 미치는 코로나의 영향을 연구해온 옥스퍼드대학의 바바라 페트롱골로 교수와 마드리드 CUNEF 클로디아 헙카우 교수는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일터에서 존재감이 흐려지고, 동료들과의 교류가 제한되며, 교육이나 협업의 기회도 줄어든다”며, “중요도가 높은 일의 경우 어느 정도까지 재택근무로 가능할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장슬기 교수는 여성들은 계속 집에서 근무하는 동안 남성들이 먼저 일터로 돌아갈 경우, 여성들이 앞으로 경력을 관리하는 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일터에서 일해야 더 눈에 띄고 인정이나 승진의 기회,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도 더 많이 잡을 수 있기 마련입니다. 이는 남성이 자녀를 두면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만, 여성에게 자녀가 생기면 페널티가 되는 기존의 경향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비영리기구 BSR(Business for Social Resonsibility)에서 여성 경제권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애널리스 팀은 “남성이 아버지가 되면 고용주는 그를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근무시간도 길어지지만, 여성이 아이를 가지면 오히려 소득 잠재력이 떨어진다. 이러한 이중잣대는 저임금 노동을 하는 유색인종 여성에게 더 강하게 적용된다”고 설명합니다. 여성들이 일터에서 수십 년간 맞서 싸워온 현상이 팬데믹으로 인해 강화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물론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좀 더 일반화되면서 과거 재택근무에 붙던 낙인이 어느 정도 사라졌고, 이에 따라 더 많은 남성이 재택근무를 선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장슬기 교수는 맞벌이 부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재택근무 선택과 가사에 있어 양성 평등한 접근법을 취함으로써 일터에서의 성별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그와 같은 접근법이 부부의 업무 성취와 웰빙에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가정이 부부나 이성 커플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구조적인 불평등 속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조치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문가들이 기업과 조직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어느 정도의 재택근무를 모든 직원에게 동일하게 허용하고, 사내 보육 시설을 강화하고,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재택근무 중인 직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협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재택근무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도입하고 공공 보육을 강화하여 직장과 가정의 균형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뿌리 깊은 성차별과 편견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해 보이지만, 작은 진보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합니다.
장슬기 교수는 “팬데믹 시대에 강화된 성 불평등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고 인식을 높여가야 한다”며, “무의식적인 편견이 우리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