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나(1/2)
(BBC, Zaria Gorvett)
2013년, 앨리슨 홀먼은 미국인의 정신 건강에 대한 평범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의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013년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수백명의 선수들이 결승점을 통과했을 즈음 폭탄 두 개가 10초 간격을 두고 폭발했습니다. 여덟 살 아이를 포함한 세 명이 사망했고, 100여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만 열 여섯명에 달했습니다.
전세계가 비탄에 빠져있는 동안 언론사는 몇달을, 이후의 재판을 포함하면 몇 년 동안 이 사건을 선정적으로 다루었습니다. 폭발 현장의 연기와 혼란은 끊임없이 재생되었습니다. 거리의 핏자국과 충격에 빠진 시민들, 옷이 찢어진 피해자들의 사진이 계속 실렸습니다.
UC 어바인의 홀먼과 그의 동료들은 마침 이 테러가 일어난 시점에 5천명에 가까운 미국인들의 정신 건강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건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들, 또는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한 이들이 충격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매우 자명한 일입니다. 마침 그 연구에 참여한 이 중에는 실제로 그 테러를 겪었던 이들이 있었고 이들은 실제로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 또한 있었습니다.
바로, 그 사건 이후 며칠 동안 하루 여섯 시간 이상의 관련 뉴스를 시청한 이들은 그 사고를 직적 겪은 이들보다 더 큰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는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부상자나 사망자를 직접 아는 것과 테러가 일어난 지역에 사는 것은 스트레스의 정도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은 것이죠.” 홀먼은 말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뉴스의 영향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고 생각합니다.”
뉴스는 단지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민자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서부터 우리 꿈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뉴스는 우리의 무의식 속으로 침입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뉴스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위험을 무시하게 만들며, 다른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가르치며,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불안증, 우울증에 걸리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 뉴스가 미치는 감정적 영향이 심장마비와 같은 수 년 뒤의 실제 건강 상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즉, 하루 한 두 시간의 뉴스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의 인생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해 중국에서 발견된 신종 바이러스는 수백만 명이 매일 정부의 발표를 지켜보고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를 확인하느라, 방역 조치를 익히고 자신만의 분석을 위한 재료를 찾느라 텔레비전 시청률을 급등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텔레비전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미디어도 아니며, 심지어 가장 중요한 미디어도 아닙니다. 팟캐스트, 유튜브, 라디오, SNS, 등이 있으며 – 이 중에는 스마트폰을 통해 계속 알림을 보내는 것도 있습니다 – 친구들이 보내는 링크들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아침에 깨는 순간부터 밤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뉴스의 바다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뉴스의 효과에 대한 연구는 매우 드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활개치기 전인 2018년에 이미 미국인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간은 평균 하루 11시간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뉴스전달기기인 스마트폰을 침대에 들고 들어갑니다.
본능적 영향
뉴스가 우리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 가지 이유는 소위 “부정 편향”이라 불리는, 부정적인 사건에 더 관심을 가지는 인간의 심리적 특징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가진 위험 요소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도록 진화했으며,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장점보다 단점에 더 주목하는 것, 이익보다 손해에 더 민감한 것, 그리고 기회를 노리기보다 공포심에 더 복종하는 것 등을 이를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정부의 정책 중에도 긍정적 보상보다는 벌과 같은 부정적 보상을 가진 정책이 더 효과적입니다.
이 편견은 또한 언론사가 부정적인 뉴스를 더 많이 소개하는 이유도 될 수 있습니다.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한 인터넷 언론사는 하루 동안 긍정적인 뉴스만을 보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하루 동안 그들을 방문한 독자 수는 평소의 3분의 1로 떨어졌습니다. 과학소설가 아서 C. 클라크가 말한 것처럼, 천국의 신문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 뉴스의 범람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지난 수십년 동안의 연구 결과, 일반인들은 자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린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경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한다는 경기 순환 이론은 수십년 간의 연구와 데이터로 확인된 현대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진리 중 하나입니다.
이는 미래가 항상 더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실제로도 피해를 끼칩니다. 만약 5년 내에 자신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투자에 돈을 쓰지 않으며 이는 실제로 경제에 해를 입힙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가진 집단적 비관주의는 그대로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된다는 것이며, 뉴스가 어느 정도 그런 역할을 한다는 증거 또한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3년 한 연구는 경제 뉴스는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경우가 많으며, 이 뉴스가 사람들의 경제 전망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는 경제 뉴스가 종종 실제 사건을 전달하기 보다는 더 암울한 전망을 전달한다는 네덜란드의 한 연구와 일치합니다. 이 연구의 한 저자는 최근, 뉴스가 경기의 호황과 불황을 모두 더 과장한다는 연구 또한 발표했습니다.
뉴스는 우리의 현실 인식을 왜곡하며, 특히 부정적으로 왜곡하기 쉽습니다. 위험에 대한 인식이 또다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관광의 예를 봅시다. 사람들은 정치적 불안 혹은 전쟁, 테러의 위험이 있는 나라로 관광을 가지 않습니다. 때로 뉴스는 마치 전염병이 있으니 귀국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보도하는 식으로 이를 직접 전달합니다. 하지만 이런 공식적인 권고가 없으며 사실 합리적으로 그럴 필요조차 없을 때에도 뉴스는 사람들의 무의식을 자극함으로써 관광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실제 사실 보다는 그 사실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프레이밍 효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95%에게 효과적인” 신약은 “실패 확률이 5%”인 신약보다 훨씬 더 믿음직해 보입니다. 하지만 두 약은 같은 효과를 가집니다. 70년대와 80년대 행동경제학자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보인 것처럼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한 연구는 정치적 불안이나 테러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의 표현을 바꾸어 사람들의 위험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사람들이 “알-카에다와 관련 급진 이슬람 집단”을“자국내 분리주의자 반군 집단”보다 더 두려워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단어는 같은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때로 이런 미묘한 차이는 삶과 죽음의 차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2014년 한 연구는 사람들은 뇌암과 같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암을 전립선암과 같은 자주 등장하지 않는 암보다 훨씬 더 자주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편견은 뉴스를 자주 보는 사람들일수록 더 심했습니다.
유타 대학의 의료소통전문가인 제이콥 젠센의 이 연구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어떤 암의 확률을 낮게 예측함으로써, 초기 징후를 놓치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자신이 인식하는 위험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이미 있으며, 따라서 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충분히 그들의 생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이 어떤 암이 더 많이 발병하는지에 대한 인식은 각종 암에 대한 정부의 연구자금 비율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젠센과 그의 동료들은 어쩌면 뉴스가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정부의 재원을 할당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들의 인식과 뉴스가 상호 강화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뉴스가 우리의 꿈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 또한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각국이 봉쇄령을 내린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이 유례없이 생생하고 두려운 꿈을 꾸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설명은 이들이 꾸는 “판데믹 꿈”은 이들이 외부와 차단됨으로써 상상력이 극도로 발휘되었다는 것입니다. 또다른 설명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꿈이 진행되는 REM 수면의 상태에서 더 쉽게 깨어나며 때문에 그 꿈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뉴스가 전달하는 판데믹 상황에 영향을 받아 그 내용을 꿈으로 꾸었다는 보다 간단한 설명도 있습니다. 지난 9/11 사태에도 이와 관련된 생생한 꿈을 사람들이 꾸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꿈의 변화와 텔레비전에서 9/11에 대한 뉴스를 본 시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었습니다. “라디오에서 사건을 들은 이들이나 친지들과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 이들은 꿈의 변화를 겪지 않았습니다.” 당시 연구를 진행한 뉴저지 몽클레어 주립대의 심리학자 루스 프로퍼의 말입니다. “나는 죽음의 이미지를 직접 본 것이 트라우마를 일으켜 꿈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