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이란 무엇인가(1/2)
존재는 기억을 바탕으로 합니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며 시간이 흐른뒤 이를 어떻게 우리가 떠올리는지에 대해 오랬동안 연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는 실상의 절반만을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기억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기억을 잊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10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마치 햇빛 아래 사진이 바래는 것처럼, 망각을 기억이 자연스레 사라지는 과정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연구자들에 의해 그러한 가정이 잘못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기억을 제거하는 것이 뇌의 또다른 기능이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밝혀진 사실들은 망각이 수동적으로 잃어나는 현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망각은 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능동적인 활동의 결과입니다. 어쩌면 거의 모든 동물은 기본적으로 능동적인 망각 기능을 활성화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망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는 불안증, 외상후트라우마증후군(PTSD), 그리고 알츠하이머와 같은 병에 대한 더 나은 치료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망각이 없는 기억이 가능할까요?” 몬트리올 맥길 대학에서 기억의 신경생물학을 연구하는 인지심리학자인 올리버 하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가능합니다. 기억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망각 기능 또한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망각의 생물학
우리 뇌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억을 생성하고 저장하는 여러 부위와 기제가 존재합니다. 그 중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인 자전적 기억은 몇 시간 혹은 며칠 뒤 해마(hippocampus)라는 뇌 영역에 형성됩니다. 뉴런 세포는 시냅스라 불리는 연결을 통해 화학물질을 주고 받습니다. 하나의 뉴런 세포는 수 천 개의 다른 뉴런 세포와 연결되며, 각 뉴런들은 화학물질에 대한 수용체와 같은 단백질을 만드는, 시냅스 가소성 과정을 통해 뉴런 사이의 시냅스 연결들을 선택적으로 강화합니다. 이를 통해 뉴런들의 네트웍이 형성되며, 이 과정에서 기억이 저장됩니다. 특정한 기억이 더 자주 회상될수록 그 네트웍은 더 강해집니다. 지속적인 회상은 해마와 피질에 동시에 존재하는 해당 기억을 강화합니다. 이를 반복함으로써 그 기억은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피질에 독립적으로 저장되게 됩니다.
뇌과학자들은 기억의 이러한 물리적 존재를 엔그램(engram)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들은 하나의 엔그램이 다수의 시냅스 연결로 구성되며 여러 뇌 영역에 걸쳐있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뉴런 세포와 시냅스 연결이 다수의 엔그램에 포함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억이 어떻게 생성되고 저장되는 지에 대해 아직은 모르는 것이 더 많으며, 많은 연구자들이 이 문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비해 뇌가 어떻게 기억을 잊는지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동안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캠브리지 대학의 인지 뇌과학자인 마이클 앤더슨은 이를 일리있는 지적이라 이야기합니다. “기억 능력이 있는 모든 생명체는 망각 능력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떠한 예외도 없습니다. 아주 작은 유기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에서 교훈을 얻는 생명체는, 그 교훈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뇌과학자들이 망각을 그저 부수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무척 놀랍습니다.”
2012년 론 데이비스가 초파리에서 능동적 망각 현상을 발견했을 때, 이 주제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플로리다 주피터에 위치한 스크립스 연구소의 뇌과학자인 데이비스는 초파리의 버섯체(곤충의 뇌 속 후각 및 다른 감각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에서 어떻게 기억이 생성되는지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버섯체 내부에서 뉴런을 연결하는 도파민 생성 뉴런의 작용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초파리의 뇌에서 초파리 행동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며, 데이비스는 이 도파민이 기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데이비스는 도파민이 기억의 망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특정한 냄새를 맡았을때 전기 충격을 느끼는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를 만들었고, 따라서 그 초파리는 그 냄새를 맡은 뒤 이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초파리의 뇌에 도파민 세포를 활성화 시켰을 때 그 초파리가 이 냄새에 대한 기억을 더 빨리 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도파민 세포를 차단할 경우 그 기억은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도파민 세포가 기억을 조절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곧, ‘망각’ 신호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살아있는 초파리의 뉴런 활동을 관찰하는 다른 연구를 통해 이 도파민 세포가 장시간 활성화 되어 있음을 발견했고, “뇌는 기존의 정보를 잊기위해 늘 노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초파리와 쥐
몇 년 뒤, 하트는 쥐에서 유사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쥐의 장기기억 저장소에 위치한 뉴런의 시냅스 연결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포유류 뇌의 경우, 뉴런간의 연결이 강화될 때 기억은 형성됩니다. 연결의 강도는 시냅스에 위치하는 특정한 수용체 양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는 AMPA 수용체라 불리며, 기억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 수용체가 존재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수용체가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몇 시간 또는 며칠 사이에 시냅스 상에서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합니다.”
하트는 시냅스 상의 AMPA 수용체를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기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억들은 사라졌습니다. 하트는 AMPA 수용체를 능동적으로 제거하는, 곧 기억을 능동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과정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이 AMPA 수용체의 제거를 막을 경우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트와 그의 동료들은 쥐의 해마에 위치한 AMPA 수용체가 제거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쥐가 물체의 위치를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어떤 사실을 잊기 위해서는 쥐의 뇌에서 능동적으로 그 시냅스를 파괴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트는 “망각이란 기억의 한계가 아니라, 바로 기억이 가진 기능입니다”라 말합니다.
토론토 아동병원의 뇌과학자인 폴 프랭크랜드 역시 뇌가 능동적으로 기억을 잊는다는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프랭크랜드는 성체 생쥐를 대상으로 새로운 뉴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말하는 신경생성(neurogenesis) 현상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성장기 동물의 뇌에서는 이 신경생성이 활발하게 일어나지만, 성숙한 동물의 해마에서 이 현상이 발견된 것은 겨우 20년 전의 일입니다. 해마는 기억을 만드는 영역이며, 프랭크랜드와 그의 연구진은 성체 생쥐의 뇌에 신경생성 자극을 가할 경우 기억력이 향상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2014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들은 정확히 반대 현상을 보고했습니다. 신경생성을 늘일 경우 생쥐는 기억을 더 잘하기 보다는 더 잘 잊었습니다. 새로운 뉴런은 기억을 위한 세포가 더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기억력이 더 좋아져야 하기 때문에 이 결과는 얼핏 모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프랭크랜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새로운 뉴런이 해마에 추가될 경우, 이 뉴런은 기존의 네트웍과 결합하며, 따라서 기존의 네트웍에 저장된 정보에는 더 접속하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프랭크랜드는 해마는 장기기억을 위한 장소가 아니며, 따라서 이러한 동적인 특성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학습에 도움이 되는 장점이라고 말합니다. 환경이 계속 바뀔 때 생존을 위해 동물은 계속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는 예전의 기억에 새로운 정보를 덮어 쓸 때에만 가능합니다.
(네이처, Lauren Gravi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