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본능”의 저자 리처드 랭엄의 새 책 “도덕의 역설”(1/2)
1860년 6월 30일, 옥스포드 대학에서는 찰스 다윈의 대변인이었던 토마스 헉슬리와 당시 대표적인 지성인이었던 사뮤엘 윌버포스 주교의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윌버포스는 진화론을 믿을 수 없는 이유를 늘어 놓은 후, 마지막으로 헉슬리에게 당신의 아버지 쪽 조상과 어머니 쪽 조상 중 누가 원숭이인지를 물으며 그를 놀렸습니다. 헉슬리는 연단으로 나와 만약 자신이 자신의 조상 중에 원숭이와 자신의 지적 재능을 새로운 과학적 아이디어를 놀리는데 사용하는 인간 중에 고를 수 있다면 원숭이를 고를 것이라 답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영국에서는 더 이상 다윈의 진화론을 비웃는 농담이 유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윌버포스 주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860년에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목적이 없는 인과관계는 쉽지 않은 개념이지만 진화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더 어려운 일은 누구도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몰랐고 심지어 자아에 대한 개념 조차 없던 수십 만 년 전에 어떻게 도덕이 발생했는지를 추측하는 것일 겁니다.
리처드 랭엄의 새 책 “도덕의 역설: 폭력과 미덕이 인간의 진화와 가지는 기이한 관계(The Goodness Paradox:The Strange Relationship Between Virtue and Violence in Human Evolution)”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입증된 내용은 아니지만,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하버드의 영장류학자 랭엄은 평생을 거대 유인원, 특히 침팬지와 보노보, 그리고 인간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2009년 출판된 “요리 본능”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약 190만년 전 인간이 불로 음식을 조리하게 되면서 그 운명이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조리된 음식은 인간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주었고, 뇌에 에너지를 공급했으며 사회적으로는 노동의 성별 분업, 곧 결혼 제도를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도덕의 역설”은 랭엄이 데일 피터슨과 같이 1996년에 썼던 그의 첫 번째 책 “사악한 수컷: 유인원과 인간 폭력의 기원(Demonic Males: Apes and the Origin of Human Violence)”의 연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악한 수컷”은 두 가지 기념비적인 발견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바로 침팬지가 가진 공격성과 보노보가 보여준 평화성입니다. 그들은 이 책에서 폭력성이 진화적 적응, 곧 생존에 유리한 특성임을 말했습니다. 오늘날 이 주장은 그렇게 문제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가진 반사회적 감정은 문화적 결과물일 뿐, 그 감정에 생물학적 원인이 있다는 주장은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마치 그 주장이 모든 폭력적 행동에 대한 도덕적 면죄부라도 주는양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주장이었습니다.
“사악한 수컷”에서 랭엄과 피터슨은 영장류가 보인 다양한 폭력의 기록을 조사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유아살해는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종의 다른 성체 – 주로 수컷 – 를 죽이는 것 또한 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단 두 종의 동물만이 자신들의 영역 경계를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다가 다른 집단의 성체가 발견될 때 이를 죽였습니다. 바로 침팬지와 수렵채집을 하는 인간들입니다. 이들은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공격성을 가지고 상대를 죽였습니다. 이는 식량 자원을 더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상대 집단의 모든 수컷을 죽였을 때 그 집단의 남은 암컷을 흡수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침팬지의 폭력성 기록은 매우 명확합니다. 반면, 대부분의 인간 수렵채집 사회는 현대 문명의 영향을 받았고, 때문에 이들의 폭력에 관한 기록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랭엄과 피터슨이 언급하듯 “평화로운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환상”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런 사회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발견된 것이 바로 보노보입니다. 영장류 중 마지막으로 발견된 이들은 신체적으로 침팬지와 거의 동일하며, 때문에 지난 50년 간 박물관에 침팬지의 골격으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콩고 강을 경계로 거주지가 갈리는 침팬지와 보노보는 사회적으로나 행동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생명체입니다.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는 경계를 순찰하지 않고, 무리지어 적을 공격하지 않으며, 이웃을 죽이지도 않습니다. 침팬지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성적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 사이의 죽음을 건 결투나 암컷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 보노보에게는 관찰되지 않습니다. (사실 보노보 사회는 암컷이 주도권을 가집니다.) 이웃한 보노보 집단은 사이좋게 어울리며, 이는 침팬지 사회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모습입니다. 이들에게 성교는 즐거운, 편안한 행위입니다.
이런 이상적인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이후 여러 연구는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식량이 얼마나 풍부한지, 그리고 그 식량을 두고 다투는 집단의 규모와 성격, 특히 폭력성이 어떤지가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식량이 부족할 경우 폭력성은 높아집니다. 그럼 보노보가 진화한 환경은 침팬지의 환경과 어떻게 달랐을까요? 보노보와 침팬지, 고릴라는 과일, 식물, 새싹, 잎 등 같은 식성을 가집니다. 하지만 고릴라는 습도에 민감해 건기 동안 초목이 존재하는 산 속으로 이동합니다. 건기가 아닐 때에는 침팬지와 식량을 두고 경쟁합니다. 콩고 강의 남쪽에는 산이 없고, 따라서 고릴라가 없으며 때문에 보노보는 식량을 독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보노보는 먹을 것이 풍부한 지역에서 진화했고, 때문에 유순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랭엄과 피터슨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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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침팬지의 공격성과 보노보의 유순함을 모두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 우리는 일상에서는 극도로 낮은 폭력성을 드러내지만, 또한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는 극도로 높은 폭력성을 보입니다. 인간이 가진 이런 양면성이 바로 도덕의 역설입니다.“ 랭엄은 “사악한 수컷”을 쓴 이후 20년 동안 이 문제를 생각해왔고, 이번 책은 이를 설명하는 첫 번째 가설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시베리아, 남태평양, 아마존, 티에라 델 푸에고, 그리고 다른 오지에 대한 관찰 결과와 고고학, 고생물학, 심리학, 생화학, 신경생리학, 유전학 등의 결과를 모두 가져왔습니다. 모든 과학은 결국 연결된다는 말이 이 경우에는 사실로 보입니다.
과학자들은 공격성을 반응적인(reactive) 것과 주도적인(proactive) 것으로 나눕니다. 반응적 공격성은 상대의 위협이나 도발에 대해 순간적으로 보이는 반응입니다. 충동적 분노가 여기에 속하며,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반면 주도적 공격성은 전략적인 계산, 그리고 사전 모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폭력을 말합니다. 서부극에서 주인공이 의도적으로 악당을 부추긴 뒤 악당이 총을 집는 순간 그를 향해 총알을 날리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보통 반응적 공격성은 개인적 형태를 띄며, 주도적 공격성은 제도적으로, 곧 전쟁이나 사형과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뉴요커, George Sciala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