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노아 하라리: 자유라는 신화(1/2)
학자는 오직 진실에만 충실해야 할까요? 설사 그 진실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아니면 사회 질서가 유지되도록 거짓말을 해야 할까요? 나는 신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에서 자유주의(liberalism)와 관련해 바로 이런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한편으로 나는 자유주의에 오류가 있고 이 이론이 인간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21세기를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자유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는 여전히 오늘날 세계 질서의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특히 종교와 민족 근본주의라는, 훨씬 더 위험하고 해로운 오래된 이념의 공격을 자유주의는 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선동가와 독재자들이 자유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내 의도와 무관하게 내 주장을 사용하게 될 위험을 감수하고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를 감안해 자신을 검열해야 할까요? 자신의 영역 밖에서까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편협함의 상징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퍼질 때, 우리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냉철한 사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힘을 믿기 때문에 그리고 이 자유주의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검열 보다는 자유로운 토론을 택했습니다. 자유주의는 다른 이념보다 더 유연하고 덜 교조적이라는 매우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다른 어떤 이념보다도 비판을 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실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그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허용하는 유일한 이념입니다. 자유주의는 이미 세 번의 큰 위기, 곧 1차 세계대전, 1930년대 파시스트들의 도전, 그리고 1950년에서 70년대까지 공산주의자들의 도전을 겪었습니다. 지금 자유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1918년, 1938년, 1968년의 위기가 얼마나 컸는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1968년, 자유민주주의는 거의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 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내부에서 폭동, 암살, 테러 공격, 그리고 첨예한 이념 갈등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한 날 워싱턴에서 일어난 폭동이나 1968년 5월의 파리, 그리고 1968년 8월 시카고에서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에 있었다면 자유민주주의의 종말이 가까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워싱턴, 파리, 시카고가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는 조용했고,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20년 뒤 붕괴한 것은 소비에트 사회주의였습니다. 1960년대의 혼란을 겪으며 자유민주주의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위기 또한 자유주의가 이겨낼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유주의가 겪는 위기는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혹은 마치 비가 내린 뒤 여기 저기에서 우는 개구리처럼 전세계 곳곳에 등장한 선동가나 독재자들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위기는 바로 실험실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자유주의는 인간이 가진 자유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쥐나 원숭이와 달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집니다. 바로 이 사실이 우리의 감정이나 선택에 궁극적인 도덕적, 정치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자유주의는 투표권자가 최선의 결과를 알고 있으며, 고객은 언제나 옳고,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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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유의지”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닙니다. 이는 기독교 신학이 만든 신화일 뿐입니다. 신학자들은 어떻게 신이 죄인을 벌하고, 성자에게 상을 줄 권리가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발명했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신이 우리에게 벌을 주거나 상을 줄 이유가 없을 겁니다. 신학자들은 바로 우리의 선택이 어떤 물리적, 생물학적 속박과 무관한 우리 영혼의 자유에 의한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신이 우리를 벌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들에 대해 신학자의 설명과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해 줍니다. 인간은 분명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의지는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욕망을 가질지 결정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내성적일지 외향적일지, 순할지 까칠할지, 동성애자일지 이성애자일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선택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생물학적, 사회적, 개인적 조건에 영향을 받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정할 수 있고, 누구와 결혼할지,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을지 선택할 수 있지만, 이러한 선택은 자신의 유전자, 생화학적 조건, 성별, 가족력, 자신이 속한 문화권 등의 영향을 받습니다. 자신이 어떤 유전자를 가질지, 어떤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날지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는 추상적인 말이 아니며,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당신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한 번 기다려봅시다. 그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무엇을 떠올릴지 당신은 선택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할지에 관해 당신이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무엇을 생각할지, 무엇을 느낄지, 무엇을 원할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될 겁니다.
이 “자유의지”는 비록 항상 신화였지만, 적어도 지난 세기 이 신화는 인류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 덕분에 사람들은 종교재판관 혹은 신으로부터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믿어졌던 국왕, 또는 KGB나 KKK와 싸울 수 있었습니다. 이 신화를 유지하는 데는 큰 비용도 들지 않았습니다. 1776년이나 1945년에는 자신의 감정이나 선택이 생화학, 뇌과학의 결과가 아니라 어떤 “자유의지”의 결과라 믿는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은 이제 위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의식을 해킹하는 데 성공하게 될 경우, 가장 조종하기 쉬운 상대는 바로 이 자유의지를 믿는 이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대로 해킹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바로 생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강력한 컴퓨터 성능입니다. 종교재판관이나 KGB는 생물학 지식도, 컴퓨터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기업과 정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게 될 것이며, 일단 그들이 인간을 해킹하는 데 성공하게 될 경우 당신의 선택만이 아니라 당신의 감정 또한 그들의 조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업과 정부가 당신을 완벽하게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지 당신 자신보다만 당신을 더 잘 알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그렇게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당신이 기존의 자유주의 이념을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이러한 주장을 쉽게 무시하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유전자나 뉴런, 알고리듬보다도 훨씬 더 깊숙한 곳에 진정한 내가 있으며 따라서 누구도 인간의 정신을 해킹할 수 없습니다. 내 선택은 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고, 누구도 내 선택을 예측하거나 조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과학적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믿음을 지닌 당신은 더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되고 말 뿐입니다.
이미 이런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눈에 띄는 기사 제목을 보게 됩니다. “이민자들이 여성을 강간했다.” 당신은 이 기사를 클릭합니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의 이웃은 다른 기사 제목을 보게 됩니다. “트럼프는 이란에 핵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이 기사를 클릭합니다. 이 두 기사는 모두 가짜 뉴스이며 러시아의 트롤, 혹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광고 수익을 올리하는 어느 인터넷 언론이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당신과 당신의 이웃은 그 기사를 자유의지를 따라 클릭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두 사람은 모두 정신을 해킹당한 것입니다.
물론 선전과 조작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선전이 무차별 폭격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정밀한 유도탄처럼 행해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히틀러가 라디오를 통해 연설할 때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출 수 없었고, 따라서 모두가 동의할 최소한의 공통 분모만을 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선전과 조작이 가능해 졌습니다. 알고리듬은 당신이 이민자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의 이웃이 트럼프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며, 바로 이 사실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기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영리한 사람들이 바로 이 작업, 사람들의 뇌를 해킹해 기사를 클릭하고 광고를 보게 만들며, 물건을 사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물건만이 아니라 정치인과 이념 또한 팔고 있습니다.
이는 시작일 뿐입니다. 아직 해커들이 분석하는 신호와 행동은 바깥 세계의 정보로 당신이 무엇을 사고, 어디를 가고, 어떤 단어를 검색하는지 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몇 년 이내에 생체인식 센서는 해커들이 당신의 내적 세계에 접속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당신의 마음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하게 될 것입니다. 자유주의라는 판타지가 애정해 마지 않는, 마음이라는 은유를 가진 심장은 그저 당신의 뇌 활동에 피를 공급하는 근육 펌프로 격하될 것입니다. 해커들은 당신의 심박과 신용카드 사용을 연관지을 것이고, 혈압과 구글 검색 내용의 관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종교재판관이나 KGB가 당신의 기분과 감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생체인식 팔찌를 가질 수 있었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자유주의는 억압적인 정부와 편협한 종교로부터 독립적인 개인을 지킬 수 있는 훌륭한 논리와 제도를 만들어냈지만, 개인의 자유라는 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내부에서 붕괴시키는, 곧 “개인”과 “자유” 두 개념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21세를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대 계몽 시대의 유산일 뿐 아니라 기독교의 유산이기도 한 이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순진한 개념에서 벗어나, 인간은 해킹될 수 있으며 곧 타의에 의해 조종될 수 있는 동물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합니다.
(가디언, Yuval Noah Har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