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치료하는 동물들 (1)
침팬지 차우시쿠(Chausiku)는 어딘가 앓던 것이 분명합니다. 한창 건강한 나이인 30대의 차우시쿠는 부드러우면서도 자식 사랑이 극진한 엄마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나무 안쪽에 작은 공간을 찾아 한동안 누워만 있는 겁니다. 평소 같으면 늘 곁에 두었을 아들 침팬지 초핀(Chopin)마저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둔 채 차우시쿠는 계속 휴식을 취했습니다. 차우시쿠가 쉬는 동안 무리의 다른 암컷 침팬지가 어린 초핀을 돌봐줬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다가 나무에서 내려온 침팬지 차우시쿠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습니다. 차우시쿠는 곧 과학자 마이클 허프만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허프만은 무리 안에서 나이 든 침팬지들의 사회적 관계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차우시쿠는 연구 대상이 아니었지만, 워낙 평소에 볼 수 없는 행동을 한지라 허프만은 이를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차우시쿠는 잎이 무성한 나무 앞에 앉아서 나뭇가지들을 꺾어 끝부분을 질겅질겅 씹은 뒤 딱딱한 부분은 뱉어내고 수액과 즙만 빨아 먹었습니다.
1987년 탄자니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허프만은 이제 갓 영장류 연구를 시작한 새내기 동물학자였죠. 차우시카가 속한 무리를 관찰한 아홉 달 동안 허프만은 차우시쿠가 즙을 먹었던 그 나무를 다른 침팬지가 먹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허프만은 친구이자 연구를 도와주던 모하메디 세이푸 칼룬데에게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물었습니다. 이 지역 근처에서 나고 자란 통웨족 출신 칼룬데는 마할레 국립 삼림공원의 삼림 경비원으로 일하며 침팬지 연구를 돕고 있었습니다. 칼룬데는 차우시쿠가 씹던 그 나무는 대단히 쓰고, 많이 먹으면 독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아주 훌륭한 약으로도 쓰이는 나무라고 알려줬습니다. 칼룬데는 통웨족도 복통이나 기생충에 감염됐을 때 그 나무를 약으로 먹는다고 덧붙였습니다.
허프만은 기존에 연구하던 침팬지에 대한 관찰을 중단하고 차우시쿠만 집중적으로 살피기 시작합니다. 그 날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든 차우시쿠는 다음 날 아침에도 영 기운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른 암컷 침팬지가 계속해서 초핀을 돌봐주었습니다. 그러다 무리 전체가 함께 휴식을 취하는 낮 시간이 됐을 때 차우시쿠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무리에서 빠져나와 잽싸게 숲으로 달려갔습니다. 허프만과 칼룬데도 헐레벌떡 차우시쿠의 뒤를 밟았습니다. 차우시쿠가 한참 동안 숲을 헤치고 다다른 곳은 숲속 늪지대 끄트머리에 있는 곳으로 즙이 많은 다육성 식물과 무화과 열매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차우시쿠는 이내 허겁지겁 식물과 열매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허프만은 “마치 며칠을 굶은 것처럼 끝없이 먹을 것을 입에 집어넣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말합니다. 칼룬데는 저 식물의 효험이 나타나기까지 대략 2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말해줬습니다. 허프만은 침팬지가 스스로 약을 처방해 먹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습니다.
사실 동물이 스스로 치료하거나 약효가 있는 먹을거리를 찾아 먹는 모습을 관찰한 건 허프만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보다 10년도 더 전에 또 다른 영장류 동물학자 리처드 렝햄과 동료들은 가끔 침팬지들이 나뭇잎을 씹지도 않고 통째로 삼킨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 침팬지들이 기생충 감염을 치료하려고 나뭇잎을 먹는다고 주장한 이들은 마침내 약을 아는 동물이라는 뜻의 “zoopharmacognosy”라는 용어를 만들어 동물들의 이러한 행동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이 주장에 반론이 제기되는데, 우선 침팬지들이 먹은 나뭇잎에 기생충을 퇴치할 만한 화합물이 들었는지부터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또한 이 침팬지들이 과연 아프긴 했던 건지, 아팠다면 나뭇잎을 먹고 나서 병이 나았는지를 입증하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선행 연구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허프만은 차우시쿠가 속한 침팬지 무리의 배설물을 채집해 침팬지가 기생충에 얼마나 시달리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동료 생물화학자는 잎이 넓은 식물(학명 Vernonia amygdalina)의 성분을 분석해 구충 효과가 있는 새로운 화합물 십수 가지를 밝혀냅니다. 허프만은 침팬지들이 이 나무의 즙을 먹고 난 이튿날 채집한 대변 속에서 기생충의 알이 최대 90%까지 줄어든 사실을 발견합니다. 결국, 이 식물은 침팬지들에게 아주 효과적인 구충약이었던 겁니다. 이 식물은 그런데 서아프리카 지방에서 가축으로 기르는 염소를 죽일 수도 있는 식물로도 알려졌습니다. 끊임없이 배를 채우다 목숨을 잃기도 하는 염소와 달리 침팬지들은 이 식물의 적당한 복용량도 알고 있던 겁니다. 즉, 기생충을 박멸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스스로 독성을 제어하지 못해 치사량에 이르지는 않도록 정확한 양만 먹는 거죠. 잘 쓰면 약이요, 못 쓰면 독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사례입니다. 침팬지들은 또한 기생충이 들끓는 우기와 습한 계절에 이 나무를 더 자주 씹었습니다. 가장 약효가 필요할 때 약을 먹어두는 듯한 행동이었습니다. 침팬지들이 물리치려던 기생충은 아주 독한 Oesophagostomum stephanostomum이라는 것으로 장 내벽에 혹을 만들어 복통을 일으키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생충입니다.
교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마이클 허프만은 이후 스스로 치료하는 동물에 관한 최고 전문가로 연구를 계속해 왔습니다. 최근 영장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침팬지가 도구를 쓸 줄 알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며, 다른 침팬지가 지금 겪고 있는 일에 공감하는 능력인 마음이론 이해력(theory of mind ability)도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인 침팬지를 더 자세히 이해하는 데 허프만도 크게 기여한 셈인데, 허프만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침팬지도 몸이 아픈 걸 낫게 하는 약(藥)의 개념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으며 실제로 약을 처방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물론 침팬지가 인간의 언어로 의약 관련 지식을 발전시킬 수는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침팬지들은 그저 서식지 주변에 나는 여러 풀에 어떤 효능이 있는지 충분히 알고, 이 지식을 아픈 걸 낫게 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개미와 나비 등 곤충부터 양과 원숭이 등 거의 모든 동물이 약을 쓴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어떤 애벌레들은 기생파리가 옮기는 균에 감염돼 걸리는 누에쉬파리병에 걸리면 일부러 독이 있는 풀을 먹습니다. 몸 안에 자라는 유충을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서죠. 어떤 개미들은 가문비나무의 송진을 이용해 병균으로부터 개미집을 지킵니다. 우리가 건물의 나무 바닥을 청소할 때 쓰는 세제에 포함된 항균 효과가 있는 테르펜(terpenes)이라는 화합물이 바로 개미의 집을 지켜주는 같은 성분입니다. 앵무새를 비롯한 여러 동물이 배탈이 났을 때 진흙을 먹습니다. 진흙은 몸속에 들어가 독성 물질에 들러붙어 이를 체외로 배출하도록 돕죠. 허프먼은 최근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세상에 있는 살아있는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치료한다고 믿습니다. 삶의 이치와도 같은 것이죠.”
꼬리감는원숭이(capuchin monkeys)는 독이 있는 노래기 같은 벌레나 신 과일을 이용해 벌레를 내쫓습니다. 짖는원숭이(howler monkeys)에게 자가 처방 혹은 자가 치료는 사회적 관계 형성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듀크대학교의 명예교수인 켄 클랜더는 암컷 짖는원숭이가 교미한 뒤 생식기관의 산성(acidity)을 바꾸는 데 필요한 음식을 찾아 먹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산도를 조절해 정자를 가려 받아 암컷보다 수컷이 태어날 확률을 높이는 게 주요 목적으로 보인다고 클랜더 교수는 말했습니다. 자기가 낳은 수컷 원숭이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면 많은 원숭이를 낳게 되고, 그만큼 어미 원숭이의 유전자가 결국 무리 전체에 퍼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뉴욕타임스)